감독 : 나현
주연 : 김래원, 한석규, 정웅인, 신성록
개봉 : 2017년 3월 23일
관람 : 2017년 3월 2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각박한 요즘에 알맞은 영화
2017년에 본 한국영화 리스트를 주욱 나열해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권력을 향한 서민의 반란을 소재로한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중산층의 몰락을 소재로한 영화들도 많았습니다. [더 킹], [조작된 도시], [싱글라이더], [재심], [해빙], [여교사]가 그러했습니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한다고들합니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문화장르 자체가 유행에 민감하다보니 관객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소재에 몰릴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엇비슷한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사건과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2016년 말과 2017년 초, 한국영화의 화두는 바로 비열한 권력에 대한 반감입니다. [더 킹]에서는 가진 것이라고는 깡다구밖에 없는 검사 박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비리 검사 한강식(정우성)에게 멋진 한방을 먹이는 내용이고, [조작된 도시]는 권유(지창욱)을 중심으로한 한심해보이는 컴퓨터 게이머들이 국선변호사라는 가면을 쓰고 권력에 빌붙어 사건을 조작하는 민천상(오정세)에게 속시원한 반격을 시도한다는 내용입니다.
[재심]은 못배우고, 못가졌기 때문에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조현우(강하늘)와 나락에 빠질 위기에 처한 3류 변호사 이준영(정우)이 힘을 합쳐 현우 사건에 대한 '재심'을 이뤄낸다는 내용이며, [여교사]는 금수저인 이사장의 딸 혜영(유인영)에 맞선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의 몰락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영화의 추세에 [프리즌]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프리즌]은 교도소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실세역할을 하는 정익호(한석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비선 실세를 비꼬는 영화입니다.
대한민국의 완전범죄를 만들어내는 교도소
일단 [프리즌]의 설정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비선실세들은 가면으로 자기 자신을 감춥니다. [더 킹]의 한강식은 스타 검사라는 스포트라이트 속에 숨었었고, [조작된 도시]의 민천상은 국선변호사의 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은밀하게 대한민국을 주무르며 돈과 권력을 누립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프리즌]의 정익호의 방법이 가장 기발합니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입니다. 하지만 교도소의 권력을 움켜잡고, 교도소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교도소밖의 세상을 주무릅니다.
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와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교도소로 간다는 사실을... 교도소는 그들에게 최고로 안전한 울타리이자,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곳이며, 그들만의 세상이됩니다. 이렇게 정익호의 왕국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검거율 100%를 자랑하던 전직 경찰 송유건(김래원)이 수감됩니다. 그리고 유건은 [더 킹]에서 박태수가 그러했듯이 특유의 깡다구와 다혈질 성격으로 익호의 눈에 띄어 그의 새로운 최측근이됩니다.
[프리즌]의 영화 초반은 익호가 저지르는 은밀한 범죄들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유건이 익호의 최측근이 되는 과정을 꽤 꼼꼼하게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자연스럽게 익호와 유건의 캐릭터를 완성시킵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이 되면서 익호와 유건의 대결로 영화의 전개가 발전됩니다.
구성은 치밀했고, 연기는 대단했다.
제가 [프리즌]의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익호와 유건의 대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캐릭터의 완성도가 중요합니다. 나현 감독은 익호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그가 교도소에서 누르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잔인함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유건의 캐릭터는 영화 중반부터 플래쉬백을 통한 과거 회상씬으로 완성시킵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완성에 의한 치밀한 구성은 [프리즌]의 장점이 됩니다.
그리고 한석규와 김래원의 연기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TV 미니시리즈인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중저음의 목소리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한석규는 [프리즘]에서도 그러한 카리스마를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낭만닥터 김사부>의 카리스마와는 전혀 다른 사악한 카리스마로 정익호라는 인상깊은 악역을 탄생시킵니다. 하긴 대한민국을 주무르겠다는 사악한 야망을 가졌다면 이 정도 카리스마는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겠죠. 그런 면에서 [프리즌]의 최고 성과는 한석규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나현 감독이 익호와 맞서는 유건 역할에 김래원을 캐스팅한 것 역시 적절했습니다. 한때 김래원은 살인미소 김재원과 함께 2000년대 초반 꽃미남 계보를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액션연기에 도전하더니 [해바라기]와 [강남 1970]을 통해 연기변신을 완벽하게 이뤄냈습니다. [프리즌]의 유건은 김래원식 액션연기의 정점이며,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구동혁과 교묘하게 겹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유도했습니다.
익호가 폭주하면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프리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마음에 쏙 드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익호가 자신의 야욕을 방해하는 배국장(이경영)을 살해하면서부터 익호의 폭주를 시작되고, 그와 동시에 영화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익호의 캐릭터가 신선했던 것은 교도소에 숨어서 은밀하게 대한민국을 주무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한 축인 배국장을 죽임으로써 그의 행보는 더이상 은밀하지 못합니다.
익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막무가내식으로 죽이기 시작하는데, 교도소 내에서 자신에게 칼을 휘둘렀던 창길(신성록)은 물론이고, 익호의 막무가내식 폭력은 창길의 반란을 눈감아줬던 자신의 최측근 홍표(조재윤)로 이어지더니, 배국장을 죽임과 동시에 마치 고삐풀린 망나니처럼 날뛰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수사하던 정과장(박원상)을 죽이고, 교도소장인 강소장(정웅인)도 가차없이 처리해버립니다. 이쯤되면 익호의 폭주가 스스로의 몰락을 불러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치밀한 성격의 익호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폭주해서 스스로 몰락한 이유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익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강소장이 익호에게 가석방을 제안한 장면인데, 익호는 마치 자신의 왕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독재자처럼, 어느 순간부터 이성을 잃고 폭주함으로써 몰락을 가속화시킨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영화의 후반부는 익호와 유건의 팽팽한 대결을 스케일로 덮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프리즌] 속 교도소보다 나은 곳이기를...
비록 [프리즌]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 한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작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익호를 잡는데 공을 세운 유건은 교도소에서 벌인 범죄로 인하여 익호를 잡고나서도 교도소에 계속 수감되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한 유건에게 "정말 괜찮겠느냐?"라는고 수사관은 묻습니다. 이에 대해 유건은 "어차피 그곳도 똑같이 사람이 사는 곳인걸요."라고 대답합니다. 처음엔 그러한 유건의 마지막 한마디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그것은 나현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도소는 죄를 지은 사람들은 가두는 곳입니다. 죄수를 가둠으로써 일반인들에게 격리시킴으로써 우리가 사는 곳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유건은 교도소도 똑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우리가 사는 곳 또한 죄소들이 떵떵거리며 활보하는 교도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2017년에는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프리즌]을 보고나니 새로운 대통령은 교도소와 별반다르지 않는 대한민국이 아닌, 최소한 교도소보다 나은, 죄지은 사람은 발 붙일 수 없는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된다면 밝고 화사한 영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반영하게될 것입니다. 부디 제 꿈이 이루어지길...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똑같이 벌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프리즌]의 교도소처럼 죄 지은 사람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떵떵거리며 잘 산다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영화 속의 교도소보다 나은 것이 없다.
나는 그러한 영화와 같은 현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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