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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자이언트] -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동화

쭈니-1 2016. 8. 16. 16:37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 루비 반힐, 마크 라이런스, 페네로프 윌튼

개봉 : 2016년 8월 10일

관람 : 2016년 8월 14일

등급 : 전체관람가

 

 

내가 CGV에 정이 떨어져나간 이유

 

한때 저는 CGV의 VIP 중에서도 VIP였습니다. 2007년에는 CGV의 제1기 서포터즈로 활동하기도 했고, 서포터즈 활동 기간 동안에는 CGV 프리패스 카드를 받아 1년 동안 CGV에서 영화를 무한대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CGV를 더이상 이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의 10년동안 유지되었던 CGV VIP회원도 2016년에는 선정되지 않았을 정도로 저는 CGV에 발길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CGV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집 근처에 메가박스가 새롭게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가지 CGV에 정이 떨어져나간 사건이 있었기 때문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CGV 영화 포인트 개편이었습니다. CGV는 영화 포인트와 CJ 계열사의 포인트를 CJONE 포인트로 통합했는데, 문제는 개편하면서 CGV 영화 포인트의 적립률이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CGV는 그것에 대한 어떤 양해의 말이 없이 강제로 CGV 영화 포인트를 개편해버렸고, 오랫동안 CGV를 이용한 저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두번째 사건은 영화 관람료의 변칙적 인상입니다. 시간대별로 영화 관람료가 다른 것은 어느정도 이해를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도 좌석별로 영화 관람료를 차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CGV는 영화 관람료를 실질적으로 인상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영화 관람료가 인하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음으로써 남아있던 정마저 뚝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 저는 정말 오랜만에 CGV에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CGV에 영화를 예매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와 웅이가 오랫동안 기대했던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CGV에서만 상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예매하면서 저는 다시한번 CGV의 만행에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CGV에서는 이 영화를 더빙버전으로 상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긴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판타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인 [마이 리틀 자이언트]에 더빙이라니... 애니메이션도 웬만하면 더빙버전을 피하는 제게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더빙상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더빙버전이 아닌 자막버전으로 상영하는 곳을 찾아야 했고, 일요일 밤 10시 25분가 되어서야 저희 가족의 [마이 리틀 자이언트] 관람은 어렵게 성사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어쩌다가 흥행의 마술사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어린이 관객 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도 좋아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판타지 영화를 더빙으로 상영할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CGV에 다시한번 정나미가 뚝 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쩌다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가...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제작 소식을 듣자마자 이 영화의 국내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저로써는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처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북미 개봉일인 2016년 7월 1일에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개봉 첫주에 4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박스오피스에 데뷔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미에서 [마이 리틀 자이언트]와 같은 날 개봉한 영화는 [레전드 오브 타잔]과 저예산 공포영화 [더 퍼지 : 일렉션 이어]입니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배급사인 디즈니 입장에서는 이미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도리를 찾아서]의 바통을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이어주길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도리를 찾아서]의 바통을 잇기는 커녕, [레전드 오브 타잔]은 물론 [더 퍼지 : 일렉션 이어]에도 뒤쳐지는 최악의 흥행성적을 냈고, 이후 빠르게 박스오피스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현재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기록한 북미 박스오피스의 성적은 5천3백만 달러. 1억4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성적입니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 중에서 흥행성적이 23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마이 리틀 자이언트]보다 안좋은 성적을 낸 영화는 [뮌헨]. [아미스타드], [태양의 제국] 등 흥행이 아닌 아카데미를 노린 영화들 뿐입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흥행의 마술사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판타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관객의 외면을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요? 어렵게 어렵게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예매했고, 구피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무더운 일요일 밤에 온 가족이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관객들이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외면한 이유를 저는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런던의 어느 고아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10살 소녀 소피(루비 반할)는 우연히 인간 세상에 나온 거인(마크 라이런스)을 보게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인 나라로 납치됩니다. 처음에 소피는 무시무시한 거인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착한 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BFG(크고 친절한 거인)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됩니다.

문제는 거인 나라에는 BFG 처럼 착한 거인이 아닌, 인간 아이를 잡아 먹는 못된 거인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거인 나라에서는 왜소한 몸집에 불과한 BFG가 못된 거인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못된 거인들은 소피의 존재를 눈치채고 소피를 잡아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소피는 못된 거인들을 막기 위한 묘책을 생각해냅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여왕(페네로프 윌튼)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죠. 과연 소피의 엉뚱한 계획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일단 너무 아름답다.

 

우선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굉장히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입니다. BFG는 꿈을 채집하는 일을 하는데, 동료 거인들이 인간 아이를 잡아먹자, 그에 대한 속죄로 인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나눠줍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거인나라에서 소피가 겪는 위험천만한 모험 대신 소피와 BFG의 아름다운 우정에 영화의 초점을 맞춥니다.

BFG가 자신이 채집한 꿈들을 소피에게 보여주는 장면과 꿈을 채집하는 곳에 소피를 데려가는 장면은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라니... 과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도 BFG가 그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숨는 장면들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영화를 처음 좋아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제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소피가 못된 거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영국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부터는 약간의 어색함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영화의 후반부에 소피와 BFG가 힘을 합쳐 못된 거인들을 혼내주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될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영국여왕이 등장하더니 영국 군대가 단숨에  못된 거인들을 제압합니다. 아무리 원작의 내용이 그렇다고해도 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후반 어색함은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로알드 달의 <내 친구 꼬마 거인>은 영국 동화이고, 영국 어린이들에게 영국 여왕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임을 생각한다면 <내 친구 꼬마 거인>은 영국 어린이들의 눈 높이에 맞춰져 있고, 영화 또한 이를 거스르지 않은 셈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내 친구 꼬마 거인>을 좀 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맞게 각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영국 영화가 아닌 미국 영화이니까요.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뚝심있게 원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영화 속에 재현해놓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뚝심이 북미에서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의 외면을 받게된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뚝심이 좋았습니다. 처음엔 느닷없이 등장하는 영국 여왕을 보며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못된 거인들에 대한 영국 여왕의 대처를 보며 너무나도 순수한 아름다운 감성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인간의 아이를 잡아 먹는 못된 거인이지만,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채소를 먹으며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하다니... 과연 도알드 달의 동화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여름 밤의 아름다운 동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보고나니 저는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책을 읽은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 착하고, 너무 순진하고, 너무 아름다운 이 동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술에 의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탄생했고, 로알드 달의 동화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상미는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 밤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가는 관객들 중에서 어느 중년 남성은 하품을 하며 "졸았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하긴 동화를 읽은 것이 까마득한 옛날 일인 어른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피와 BFG, 그리고 영국 군대가 못된 거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못된 거인들을 잔인하게 죽여야 영화적 재미를 느낄텐데, 이렇게 착한 결말이라니... 분명 자극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 영화가 그들은 지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린시절 꿨던 아름다운 꿈을... 비록 제 몸은 어른이 되어 매일같이 정글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보는 동안에는 착하고 순진한 어린 아이가 되어 동심을 마음껏 누리는 아름다운 꿈을 꾼 것입니다. 비록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대 흥행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테지만, 최소한 제겐, 그리고 저희 가족에겐 한 여름 밤의 아름다운 동화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멋진 모험을 하는 판타지한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니 로또에 당첨되는 속물같은 상상만 한다.

이런 한심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처럼 착한 영화를 보며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린 나의 동심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