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덕혜옹주] - 대한제국 황녀가 아닌, 식민지 여성의 삶

쭈니-1 2016. 8. 14. 21:08



감독 : 허진호

주연 : 손예진, 박해일, 라미란, 윤제문

개봉 : 2016년 8월 3일

관람 : 2016년 8월 1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


길게만 느껴졌더 제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던 8월 11일 목요일. 저는 구피에게 그날만큼은 자유시간을 만끽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예상 외로 국내 흥행이 부진해서 극장 상영이 종료될 위기에 처하자 아직까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지 못한 제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여름휴가의 마지막날에 웅이도 외면하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러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방학 내내 외할아버지의 수술과 입원으로 놀러가지도 못하고 혼자 집을 지켜야했던 웅이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웅이와 함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러갈 수만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구피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또다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포기하고,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인 [덕혜옹주]로 여름휴가의 마지막날을 장식해야만 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포기한 것은 아쉽지만 [덕혜옹주] 역시 제 기대작 중의 한편입니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손예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덕혜옹주'는 1925년 14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매일같이 고국 땅을 그리워했지만, 37년만인 1962년 1월 26일이 되어서야 51세의 나이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덕혜옹주]를 기대한 이유는 많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아픈 멜로영화로 기억되는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그는 [봄날은 간다] 외에도 [8월의 크리스마스],  [행복], [호우시절] 등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은 멜로영화를 연출함으로써 허진호의 멜로는 여운이 짙게 남는다는 믿음을 심어줬습니다. 물론 [덕혜옹주]는 기본적으로 멜로영화는 아니지만, 덕혜를 향한 김장한(박해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여배우인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한때 제게 있어서 우리나라 여배우중 으뜸은 이은주였습니다. 제가 이은주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녀의 폭넓은 연기 때문입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쁘장한 캐릭터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여배우들이 꺼려할만한 강한 캐릭터를 주저없이 연기하던 이은주. 하지만 그녀는 2005년 2월 22일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은주가 떠난 이후 그 뒤를 이은 것이 손예진입니다. 그녀 역시 이은주와 마찬가지로 폭넓은 연기력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덕혜옹주]는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인천상륙작전]과 마찬가지로 웅이와 함께 [덕혜옹주]를 보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대한민국의 아픈 근현대사를 알아야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앞으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조에 대한 거부감이 감동을 막았다.


[덕혜옹주]를 보러 가기 전, 제 블로그의 절친으로부터 [덕혜옹주]를 보고나서 눈물을 너무 많이 흘러 눈을 뜨고 나오지 못했을 정도라는 극찬을 들었습니다. 사실 걱정이 되기는 했습니다. 저 역시 [덕혜옹주]를 보며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면 어쩌나 하는... 웅이 앞에서 눈이 팅팅 부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강한 남자 컴플렉스?) 하지만 웅이는 [덕혜옹주]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덕혜옹주]를 보며 많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영화의 후반부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뜨거워진 눈시울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예상보다 [덕혜옹주]에 덜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어쩌면 조선왕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세종대왕을 제외하고는 조선왕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그들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500년간 왕조를 유지했고, 결국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을 통치하면서 절대적 권력이라는 권리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들의 의무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잘 통치하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에 그들은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에겐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세계의 역사에서도 나라를 빼앗긴 왕과 가족들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절대적 권력이라는 권리를 누린 자들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덕혜옹주'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조선 왕조의 후예이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그녀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는 일제강점기의 치욕이 조선왕조가 나라를 잘못 운영한 탓이고, 그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조선왕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덕혜옹주'의 비극에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릴만큼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황녀가 아닌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강제 일본유학이 아닌 그보다 더한 고역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아픈 사연을 그린 영화 [귀향]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덕혜옹주'보다 [귀향]의 정민(강하나)의 사연이 더 가슴아팠습니다.

하지만 [덕혜옹주]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식민지 여성이 겪어야 했던 삶으로 본다면 [귀향]처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슴아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슬픔을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국에 타의로 인하여 돌아갈 수 없었고, 그로인하여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으니까요.



대한제국 황녀가 아닌, 식민지 여성의 삶


'덕혜옹주'에게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것을 제거하고 식민지 여성으로써의 삶을 측면으로 영화를 다시한번 바라보겟습니다. 덕혜는 8살의 나이로 아버지인 고종(백윤식)을 잃었습니다. 늦둥이 딸인 그녀를 너무나도 귀여워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에게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독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제가 여전히 다른 가족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녀로써는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덕혜는 14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땅, 일본에 강제로 보내집니다. 만약 그녀가 그것을 거부했다면 그녀의 오빠인 순종(안상우), 그녀의 어머니 양귀인(박주미)이 아버지처럼 일제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당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녀는 참아냅니다. 가족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도, 돌아가셔도, 일제는 그녀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창살없는 감옥, 그것이 바로 일본에서의 그녀 삶이었습니다.

[덕혜옹주]는 일제의 만행을 한택수(윤제문)라는 캐릭터 하나로 응축해냅니다. 한택수는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덕혜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덕혜는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식민지의 힘없는 여성에 불과하고, 한택수는 일본에 빌붙어 권력을 누리고 있는 친일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한택수를 증오하지만, 그를 어찌할 수 있는 힘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덕혜에게 유일하게 희망이 되어준 이는 김장한입니다. 고종이 애초에 덕혜의 짝으로 김장한을 점찍어주었지만, 고종의 죽음으로 그와의 결혼은 이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일본에 건너와서야 덕혜는 김장한을 다시 만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덕혜와 김장한이 다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덕혜는 누구보다 김장한에게 의지하지만 한택수는 덕혜를 다케유키(김재욱)라는 일본의 귀족에게 강제 결혼을 시켜버립니다. 

이렇듯 덕혜의 삶은 아무 것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무기력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어찌할 수도 없고, 자신이 있을 곳도 스스로 정하지 못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김장한과 사랑하지만 다케유키와 강제로 결혼을 해야합니다. 그녀가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한택수에게 반항을 해보기도 하고, 영친왕(박수영)과 함께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하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상하이로의 망명이 실패하고 김장한이 한택수의 총에 쓰러지자 덕혜는 모든 희망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이것이 그녀의 삶입니다. 그 무엇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삶. 처음 그녀는 그것이 나라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항복을 하고 조선이 해방이 되어도 그녀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그녀의 신분이 조선 해방 후에도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것이 그녀가 정신병을 앓게된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덕혜의 삶보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모습이 더 아팠다.


영화의 후반, 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은 일본의 항복 이후의 광경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후 조선왕조의 부활을 염려해서 일본에 강금되어 있다시피한 대한제국 황족들의 귀국을 불허합니다. 조선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나라를 이끌어갔듯이 이승만 정권은 처음부터 미국에 의존해서 정권을 탄생시켰고, 그 불안한 정권은 작은 바람도 무서워하는 나약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조선인들이 덕혜처럼 고국으로의 귀국이 불허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덕혜의 귀국이 불허되는 장면에서 그녀는 비웃는 한택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친일파에게 권력을 나눠주었던 이승만 정권의 횡포가 지금 우리나라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니 영화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고, 한심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고, 그것은 [덕혜옹주]에서 덕혜의 귀국이 불허되고, 한택수는 오히려 금의환향하는 장면으로 연출됩니다.

덕혜가 다시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입니다. 이제 더이상 조선왕조의 부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이벤트로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귀국을 추진합니다. 이렇게 덕혜의 삶은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어 군사독재정권에 이용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를 두루 관통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구피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조선의 마지막 왕족들의 삶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왕조의 잘못된 정치로 조선의 국민들은 식민지라는 치욕을 맛보았으니 오히려 불쌍한 것은 조선의 마지막 왕족이 아닌 조선의 국민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구피는 그러한 제 주장이 너무 과하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찌되었던 조선왕조는 우리의 500년 역사를 이끌어간 주역들이니까요.

예전에 <궁>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영국처럼 조선의 왕실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라면 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한 드라마로 2006년에 방영되어서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드라마들을 보면 가끔 우리나라 국민들이 조선왕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분제가 확실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신분제가 사라진 요즘 세상에 왕족이라는 신분주의 사회의 금수저가 굳이 필요할까요? 그러지 않아도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금수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분명 덕혜의 삶은 아픈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저는 그녀에 대한 동정보다는 반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덕혜옹주]는 제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지만, 작은 울림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덕혜옹주]를 보며 우리는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동정보다는

나라를 잃은 국민의 아픔을 먼저 느껴야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 많은 사람들이 '덕혜옹주'보다 더 아픈 삶을 살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