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봉이 김선달] - 설화에 캐릭터를 입히고, 스케일을 키웠다.

쭈니-1 2016. 7. 18. 17:29

 

 

감독 : 박대민

주연 : 유승호, 고창석, 조재현, 라미란, 시우민

개봉 : 2016년 7월 6일

관람 : 2016년 7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더위 탈출은 극장에서...

 

저는 더위를 굉장히 잘 타는 편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땀이 하도 많아서 여름철만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더워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나서 그러한 제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땀도 그다지 흘리지 않고, 한 여름에도 선풍기 없이 잠도 잘 잤으니까요. 구피가 꾸준히 해준 홍삼원액을 먹어서인가봅니다. (이래서 남자는 장가를 잘 가야합니다. ^^)

그런데 올해 여름은 다시 예전 체질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땀도 땀이지만, 밤마다 잠을 설치니 피곤해서 혓바늘이 났고, 혓바늘이 나니 입맛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하루종일 힘이 없어서 비실거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보니 별일도 아닌 것에 짜증이 나면서 매사가 귀찮아지더군요.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구피가 생활비 부족탓에 한동안 해주지 못했던 홍삼원액을 큰 맘 먹고 구입해줬습니다. 그리고 잠을 설치는 제게 침대에서 혼자 자라며 거실 쇼파에서 쪽잠을 자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토요일에는 혓바늘이 어느정도 가라앉았습니다. 혀의 고통에서 벗어나니 조금은 살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짜증대신 오랜만에 구피, 웅이와 함께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본 이후에는 늦은 밤까지 아이스크림 파티를 했답니다.

 

그날 저희 가족이 선택한 영화는 [봉이 김선달]입니다. 사실 구피는 은근히 [나우 유 씨 미 2]를 기대한 듯했지만, 제가 [봉이 김선달]을 선택한 이유는 웅이와 함께 보는 영화라면 미국산 범죄 스릴러보다는 국내산 역사 코믹물이 더 알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봉이 김선달]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한 역사극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었음직한 조선시대 설화의 주인공 '김선달'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김선달'에 대한 설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김선달'이 대동강에 나가서 물을 길어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주면서 다음 날 그 돈을 돌려 달라고 합니다. 계획한 대로 다음 날 아침 대동강에 나가서 “물값을 주시오.”라고 하면서 미리 뿌려 놓은 밑천을 걷습니다. 외지에서 온 돈 많은 행인이 이 장면을 보고 의아해하며 뭘 하냐고 묻자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욕심이 생긴 행인은 '김선달'에게 큰돈을 주고 대동강 물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산 후, 다음 날 아침 대동강에 나가 물을 긷는 사람에게 물값을 달라고 하지만 아무도 돈을 내지 않자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김선달'은 전형적인 사기꾼입니다. 그렇다면 [봉이 김선달]은 조선시대 사기꾼 '김선달'의 이야기를 어떻게 변형해냈을까요? 그것이 바로 [봉이 김선달]을 관람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코 포인트입니다.

 

 

'김선달'에게 캐릭터를 입히고, 스케일을 키웠다.

 

사실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조선시대 최고의 사기꾼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사실이 없습니다. 그저 평양 출신의 사기꾼이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김선달'은 '홍길동'처럼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도 아니고, 허균의 <홍길동전>처럼 소설로 남겨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이죠. 그렇기에 그의 활약상은 그저 단편적인 이야기 뿐입니다.

그렇기에 [봉이 김선달]은 우선 '김선달'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청나라와의 전쟁에게 패배한 직후입니다. 수 많은 조선의 백성들은 청나라에 끌려가 청나라와 명나라의 전쟁에 화살받이로 이용되던 시절, 김인홍(유승호)과 보원(고창석), 견이(시우민)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보원의 임기웅변으로 죽은척해서 겨우 살아남은 세 사람은 청나라를 탈출해 조선으로 돌아가 덤으로 사는 인생 실컷 즐기자고 다짐합니다.

[봉이 김선달]은 인홍 일행이 어떻게 청나라를 탈출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홍이 청나라의 볼모로 끌려가 화살받이로 이용되었다는 설정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는 목적은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봉이 김선달]은 인홍과 보원의 사기행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며 인홍의 활약을 통해 그가 '김선달'이라 불리우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은근슬쩍 인홍 일행의 사기행각의 스케일을 키우는데, 영화 초반 인홍 일행이 왕의 금고를 터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예고된 사항입니다. 이야기속 '김선달'은 그저 돈 많은 상인이나 양반에게 사기를 치는 사기꾼에 불과하지만, 영화 속의 '김선달'은 왕의 금고를 털정도로 사기행각이 좀 더 대담해집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대동강의 물을 파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속 '김선달'은 그저 외지에서온 돈 많은 행인에게 대동강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 것에 불과하지만, 영화속 인홍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성대련(조재현)에게 맞서며 복수를 계획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김선달'의 사기 스케일을 키우고, 보원과 견이, 윤보살(라미란)이라는 인홍의 동료들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코믹한 조연 캐릭터를 내세우는 등 [봉이 김선달]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공들인 부분이 여러군데 보입니다. 특히 견이의 죽음을 통해 인홍이 목숨을 걸고 성대련에게 복수를 해야하는 당위성을 제공하고, 청나라의 권력을 등에 업고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성대련에 대한 효종(연우진)의 견제를 이용해서 마지막 반전을 완성하는 장면 등, [봉이 김선달]은 '김선달'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짜임새를 완성해냅니다.

 

 

[조선마술사]와 비슷하지만 단점을 보완했다.

 

[봉이 김선달]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2015년 12월에 개봉했던 [조선마술사]가 떠올랐습니다. 실제 두 영화는 상당히 흡사합니다. 유승호가 사극연기에 도전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시대적 배경이 병자호란 직후 조선시대라는 것과 주인공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조선으로 탈출을 했다는 설정도 비슷합니다.  [조선마슬사]의 환희(유승호)의 직업이 남의 눈을 속이는 마술사라면, [봉이 김선달]의 인홍은 남의 마음을 속이는 사기꾼입니다.

두 영화의 여성 캐릭터도 비슷한데, [조선마술사]에서 청나라의 11번째 왕자빈으로 팔려가듯 끌려가는 청명(고아라)이 있다면 [봉이 김선달]에는 성대련이 청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후궁으로 준비시킨 규영(서예지)이 있습니다. 청명과 규영은 영화 속 주인공인 환희, 인홍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도 같습니다. 

이렇게 분명 [봉이 김선달]과 [조선마술사]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단순 비교를 한다면 저는 [조선마술사]보다는 [봉이 김선달]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마술사]에서 실망스러웠던 부분이 [봉이 김선달]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선마술사]는 악역인 귀몰(곽도원)의 무리한 폭주로 영화 후반부가 억지스러워졌지만, [봉이 김선달]은 성대련이 욕심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무리없이 표현해냅니다.

 

[조선마술사]에서는 환희와 청명의 사랑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었고,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끔은 오글거리는 장면들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봉이 김선달]에서 규영의 첫 등장과 규영을 바라보는 인홍의 눈빛에서 이 영화도 [조선마술사]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봉이 김선달]은 인홍과 규영의 사랑을 잠시 접어두고, 성대련을 향한 인홍의 복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 걱정을 기우로 만들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조선마술사]보다 [봉이 김선달]이 영화적 재미가 뛰어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승호가 당분간은 사극연기를 피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배우이긴 한데, 너무 한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배우로써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승호의 조선 시대 꽃미남 선비는 [봉이 김선달]까지만...

대체적으로 [봉이 김선달]을 만족하며 관람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쉬웠던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영화 후반의 반전은 아무리 영화 초반 인홍이 왕의 금고를 터는 장면을 통해 어느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따지고보면 솔직히 무리수이긴 했습니다. 아무리 청나라에 반감을 가진 효종이라고할지라도 말입니다.

 

 

조금 대충 넘어가긴 했다.

 

그 외에도 [봉이 김선달]은 영화의 상당 부분을 대충 넘어갑니다. 예를 들어서 인홍과 보원, 견이가 어떻게 청나라에서 탈출했는지에 대한 과정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그 부분은 앞서 언급한대로 인홍의 캐릭터를 설명한 것으로 임무가 완수되었기에 대충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성종익(김영필)이 어떻게 인홍과 윤보살의 관계를 알아챘는지 생략한 것은 조금 심했습니다.

윤보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인홍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보살이 어떻게 들통이 났는지도 중요합니다. 가령 담파고 사건에서 이미 인홍 일행을 팔아넘긴 적이 있는 장물아비(이준혁)가 성종익에게 윤보살을 또다시 팔아넘기는 장면 정도는 영화에서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분명 100%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무더운 여름밤, 극장에서 2시간 동안 웃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습니다. 설화로만 내려오는 '김선달'에게 캐릭터를 붙이고, 스케일을 키움으로써 한편의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완성해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역시 여름엔 이렇게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딱이죠. ^^

 

'김선달' 이야기도 재미있는 케이퍼 무비로 재탄생한 만큼

'방랑시인 김삿갓'도 영화로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도 풍부한 볼거리가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