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태곤
주연 : 김혜수, 마동석, 김현수, 김용건, 곽시양
개봉 : 2016년 6월 29일
관람 : 2016년 7월 7일
등급 : 15세 관람가
구피가 선택한 영화
지난 주말에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를 봤고, 월요일에는 [사냥]을 봤으며, 이번 주말에는 [도리를 찾아서]를 볼 계획입니다. 뭐 이정도면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매주 주말에 영화 한편, 주중에 영화 한편만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을 만큼 저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플러스 알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피가 목요일에 [굿바이 싱글]을 보자고 제게 먼저 이야기를 해준 것입니다.
지난 6개월동안 제 극장 나들이는 이상하게 지지부진했었는데 2016년의 반환점을 돌고 시작한 7월부터 갑자기 운이 트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암튼 구피가 먼저 이 영화가 보고 싶다고 콕 짚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만큼 저는 구피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굿바이 싱글]을 예매했고, 목요일 밤 의외로 북적였던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구피와의 단란한 극장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굿바이 싱글]은 김혜수의 원맨, 아니 원우먼쇼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이지만 점차 내려가는 인기 때문에 고민하고, 연하의 남자친구의 공개적 배신 때문에 망신당하는 국민진상 고주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1986년 [깜보]로 데뷔이후 30년동안 국내 톱여배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혜수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피가 [굿바이 싱글]을 보고 싶어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김혜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얼굴없는 미녀], [분홍신]에서 호러퀸으로 변신하기도 했고, [바람 피기 좋은 날],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푼수끼 가득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도둑들], [관상]과 같은 흥행작에서 존재감을 뽑내더니, [차이나타운]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 연기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었습니다.
[굿바이 싱글]은 이렇게 출연한 영화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김혜수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굿바이 싱글]은 개봉 첫주 주말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레전드 오브 타잔],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와 안성기와 조진웅의 남성미가 가득 넘치는 액션 스릴러 [사냥]과의 경쟁에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굿바이 싱글]에 과연 저는 만족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제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슬픈 코미디 영화입니다. 초반에는 웃겼다가, 후반에는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혜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었다가 설득력있는 영화 후반의 내용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김혜수, 마동석은 이렇게 웃길줄도 아는 배우이다.
[굿바이 싱글]의 초반 분위기는 완벽한 코미디입니다. 특히 김혜수의 코믹 연기는 일취월장합니다. 톱스타 여배우라는 화려한 겉모습과 푼수끼 가득한 내면을 맘껏 보여주는 그녀는 김혜수가 고주연인지, 고주연이 김혜수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특히 영원한 내 편을 만들겠다며 엉뚱하게도 임신을 선언하는 주연의 모습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아직 싱글인 김혜수의 실제 상황과 교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지금껏 꽁꽁 숨겨놨던 김혜수의 코믹 연기가 물만난 고기처럼 맘껏 발휘되며 [굿바이 싱글]은 부담없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김혜수 혼자 웃긴다고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죠. 김혜수의 뒤를 받쳐줄 조연 캐릭터가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마동석의 캐스팅은 [굿바이 싱글]에서 신의 한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커다란 덩치에 우락부락한 외모를 가진 마동석은 [더 파이브], [군도], 개봉 예정작인 [부산행] 등의 영화에서 힘을 내세운 듬직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인기를 쌓아올렸습니다. 하지만 절세미녀 우크라이나 신부 비카(구잘)에게 쩔쩔 매는 순수한 꽃집 새신랑 건호를 연기한 [결혼전야]에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연기를 선보이더니, 우정출연한 [베테랑]에서 아트박스 사장으로 잠깐 출연하면서 마요미, 마블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굿바이 싱글]은 그러한 마동석의 가치를 정확하게 캐치해냅니다. 마동석이 연기한 평구는 주연의 스타일리스트이자, 그녀의 불알(!) 친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해외 유학파인 그에게 왜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지 않고 국민 진상녀 주연에게 얽매여 있냐고 의아해하지만 그는 결코 주연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주연을 외면할때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진정한 친구인 셈입니다.
하는 짓마다 사고만 치는 주연의 뒷치닥거리를 맡아 하면서도 불평불만보다는 주연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평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멋지다'와 '귀엽다'라는 찬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실제 [굿바이 싱글]을 보고나서 구피가 한 첫마디는 "마동석 귀엽다."였습니다. 저렇게 커다란 덩치에,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로 귀여운 연기를 펼칠 수 있다니... [굿바이 싱글]은 김혜수의 원우먼쇼 영화임과 동시에 마동석의 재발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출연 분량은 크지 않지만 그래도 나올때마다 강력한 웃음 폭탄을 안겨준 산부인과 의사 덕수(안재홍)와 손석희를 연상시키는 주연이 짝사랑하는 뉴스 아나운서 주민호(이성민), 주연의 소속사 사장 김대표(김용건), 평구의 아내이자 영화 후반에 자신밖에 모르는 주연에게 강력한 한방을 먹이는 상미(서현진) 등 출연 배우마다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굿바이 싱글]의 영화적 재미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슬픈 후반을 차곡차곡 준비해나가다.
[굿바이 싱글]의 코믹했던 영화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것은 단지(김현수)가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부모없이 언니와 함께 사는 단지는 생활력이 강한 중딩이지만, 국가대표 골프선수인 남자친구와의 하룻밤 실수로 임신을 하게된 미혼모입니다. 아기를 갖고 싶지만 폐경이 되어버린 주연과 아기를 가졌지만 아기가 필요없는 단지는 결국 은밀한 거래를 합니다. 단지가 아기를 낳으면 주연이 키우기로...
솔직히 이러한 설정은 결코 코미디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임신을 한 여중생인 단지의 캐릭터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 한 단편인데, 아기를 사고 파는 행위라니. [굿바이 싱글]에서는 그들의 거래를 철없는 여배우의 엉뚱한 행동으로 코믹하게 표현했지만 실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중대한 범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굿바이 싱글]은 주연과 단지가 은밀한 거래를 하지는 시점에서부터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나갑니다.
제가 슬픈 코미디를 싫어하는 이유는 초반에 열심히 웃기다가 후반에 개연성도 없이 갑자기 관객을 울리려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굿바이 싱글]은 다릅니다. 비록 초반엔 푼수끼 가득한 톱스타 주연의 엉뚱한 행동으로 웃겼지만, 중딩 미혼모 단지가 등장하며 영화는 분위기가 급반전될 후반을 차곡차곡 준비해나갑니다.
주연과 단지의 은밀한 거래, 그리고 배신한 남자친구 강지훈(곽시양)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짜 임신쇼를 태연스럽게 벌이는 주연의 사기극은 영화 후반을 예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연과 단지는 자신들이 벌이는 일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지만, 저는 그들의 행동이 영화 후반에 가져올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연이 민호와 데이트를 위해 정신없을 때에도 저는 영화 초반에서처럼 맘껏 웃지 못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면서 [굿바이 싱글]의 코믹은 후반부터 말끔히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그러한 후반부의 전개가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영화의 마지막까지 가벼운 코미디로 일관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이죠.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벌어져야할 것들이 벌어지며, 주연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루며 [굿바이 싱글]은 자연스럽게 슬픈 코미디로 완성이 됩니다.
제가 이 영화의 후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단지를 옹호하는 주연의 항변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단지를 임신시킨 남학생은 아무런 일도 없듯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주연은 무슨 죄인처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조차 안되는 상황. 단지에게 창피한줄 알라고 나무라는 어른들에게 주연은 조금 이른 것 뿐이라며 단지를 감쌉니다.
그녀들의 행복한 선언 '굿바이 싱글!!!'
어찌보면 주연과 단지를 상당히 많이 닮은 캐릭터입니다. 둘 다 부모를 일찍 잃었고, 어린 나이에 혼자 세상을 해쳐나가야 한다는 짐을 떠안았습니다. 주연에게는 평구를 비롯한 소속사 식구들이 있지만, 주연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생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지 않을 것임을... 단지에겐 친 언니가 있지만, 단지의 친 언니는 합의금만 챙기고 단지를 버립니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영화 후반 임신한 몸으로 혼자 두려움에 떨었을 단지의 심정을 주연은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도 그녀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연에게 국민 진상녀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단지에게는 몸을 함부러 굴린 문제아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인기가 떨어진 늙은 여배우로 사는 것과, 아빠가 없는 아기를 가진 어린 미혼모로 사는 것. 주연과 단지에게 세상은 혼자이고, 두려운 곳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배우 인생을 포기하고 단지를 위해 어른들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주연의 모습은 그래서 너무 멋졌고, 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들의 마지막 모습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녀들에게 세상은 아직도 맞서 싸워야하는 만만한 곳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이제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굿바이 싱글!!!'
우리는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연예인을 욕하고,
자세한 사연도 모르고 미혼모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미혼모라는 이유로,
겪어야할 일들은 관심조차 없으면서...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이 김선달] - 설화에 캐릭터를 입히고, 스케일을 키웠다. (0) | 2016.07.18 |
---|---|
[도리를 찾아서] - 너무 착하고 아름다워서 감동이 밀려온다. (0) | 2016.07.13 |
[사냥] - 재미있는 추적 스릴러가 되기엔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0) | 2016.07.07 |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 거대해지고 풍성해졌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0) | 2016.07.05 |
[정글북] -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 그 이상의 볼거리를 갖추다.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