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우철
주연 : 안성기, 조진웅, 한예리
개봉 : 2016년 6월 29일
관람 : 2016년 7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액션 스릴러?
7월들어서 본격적으로 영화보기에 돌입한 저는 지난 일요일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에 이어 월요일에 [사냥]을 보며 기분 좋게 7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는 20년전 [인디펜던스 데이]를 봤을 때만큼의 전율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나름 재미있었고, [사냥]은 국민배우 안성기와 대세배우 조진웅의 만남이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사냥]의 내용부터 잠시 살펴보면... 대규모 탄광 붕괴 사고가 일어났던 무진의 외딴 산이 영화의 무대입니다. 탄광 붕괴 사고 이후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 거대한 금맥이 발견됩니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박동근(조진웅)은 동료들을 이끌고 산에 오르지만, 땅의 주인인 노파를 실수로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박동근의 범행을 지켜본 탄광 붕괴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문기성(안성기)은 노파의 손녀딸 김양순(한예리)를 살리기 위해 박동근 일행과 목숨을 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사냥'한다는 설정입니다. 박동근 일행은 금맥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기성과 양순을 뒤쫓습니다. 그와 달리 기성은 양순을 살리기 위해 박동근 일행과 맞서 싸웁니다. 그들의 대결은 외딴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총격전으로 펼쳐집니다.
하지만 저는 [사냥]을 보고나서 그다지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안성기와 조진웅의 카리스마 대결은 영화의 볼거리를 풍부하게 해줬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사냥]은 캐릭터 설정도 얼렁뚱땅이고, 영화가 뒤로 갈수록 스토리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어찌보면 [사냥]을 보기 전에 봤던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와 비슷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의 경우는 원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가 스토리가 빈약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봤기에 '그런가보다'하며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냥]은 다릅니다. [사냥]의 경우는 무작정 때리고 부수는 SF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스토리 라인에 좀 더 신경써야 했고, 캐릭터를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우철 감독은 금맥을 둘러싼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는 기본 설정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은 듯 보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사냥]의 어떤 부분들이 저를 실망시켰는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제 글에는 [사냥]의 전체적인 내용이 모두 언급될 것입니다. 딱히 반전이 없는 영화이고, 내용을 모두 알아도 영화를 관람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가급적 제 글을 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문기성 캐릭터만 있고, 박동근 캐릭터는 없다.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분명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와 깜짝 놀랄 마지막 반전을 가지고 있더라도 캐릭터가 부실하면 영화는 김빠진 콜라처럼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이우철 감독은 주인공인 기성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꽤 공을 들입니다.
대규모 탄광 붕괴 사고와 그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기성. 일단 그러한 설정 자체가 기성의 캐릭터를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여기에 기성이 붕괴된 탄광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것과 사고로 잃은 동료의 딸 양순에 대한 책임감이 덧붙여 집니다. 영화에서 동근은 기성에게 도대체 아무런 관계도 아닌 양순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습니다. 그러한 동근의 물음은 분명 타당합니다. 죽은 동료의 부탁에 의한 책임감이라고 하기에 기성의 행동이 조금 과하긴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냥]은 그렇게 과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양순을 향한 기성의 책임감도 영화의 후반부에 설명해냅니다. 마치 1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 전체가 기성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사냥]은 기성의 캐릭터 구축에 영화의 모든 것을 걸어버립니다.
문제는 [사냥]이 기성의 캐릭터 구축에 집착하는 사이 동근의 캐릭터는 버려졌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기성과 동근의 대결을 축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기성의 캐릭터가 중요한 만큼 동근의 캐릭터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근이 금맥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까지 벌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동근에 대한 캐릭터 설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 초반 로또 번호를 맞추는 장면에서 그가 한탕주의에 빠져 있음을 암시했고, 동근이 도박빚이 있음도 언급되었으며, 동근의 동료 중 다른 엽사들과는 달리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등장한 맹준호(권율)를 통해 그가 회장이라 일컫는 자에게 거액의 도박빚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왜 굳이 동근을 쌍둥이로 설정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동근이 단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살인도 불사한다는 설정은 기성이 단지 죽은 동료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양순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설정 만큼이나 과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기성이 양순에게 그렇게 헌신했던 이유가 설명되었듯이, 쌍둥이 형제인 동근과 명근이 금맥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마와 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기성은 미치광이 람보 할배?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대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명량]의 천만배우 최민식이 주연을 맡았으며, CG로 완성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지리산 산군의 위용이 대단하는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입니다. 당연히 흥행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같은 날 개봉한 [히말라야]가 대박 흥행을 거두는 것을 [대호]는 멀찌감치에서 바라만봐야 했습니다.
왜 [대호]는 흥행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저는 지리산 산군에 대한 과한 설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몸무게 400kg, 길이 3m 80cm의 위용을 자랑하는 지리산 산군은 SF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괴물처럼 설정되어 있습니다. 수십명의 포수들은 물론 막강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 군대까지도 휩쓸어 버리는 산군의 활약은 뛰어난 CG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현실적이라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 [대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냥]의 기성을 보고 있으면 마치 [대호]의 지리산 산군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기성은 늙은 할배에 불과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동근 일행을 하나씩 처치해나갑니다. 그렇다고 그가 게릴라 전법으로 하나씩 죽이는 것도 아닙니다. 동근 일행에게 여러번 붙잡히고,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기성은 다시 살아납니다.
영화 후반 폭포수 밑에서 기성에게 죽임을 당한 위기에 처한 동근은 기성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났냐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동근이 직접 기성을 쐈기에 동근 입장에서는 기성이 다시 살아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전에는 기성이 위기에서 벗어날 작은 틈이라도 있었지만 동근이 직접 기성을 쐈을 때는 그러한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성은 도대체 어떻게 되살아난 것일까요?
동근이 기성에게 왜 양순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 [사냥]은 그에게 대한 대답을 영화 후반에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동근이 기성에게 어떻게 살아났냐고 물었을 때는 그에 대한 대답을 끝내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이겠죠. 왜냐하면 관객을 납득시킬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을테니까요.
기성이 혼자 총으로 무장한 동근 일행에 맞서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산이라는 지형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이라면 산에서 잔뼈가 굵은 기성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번 붙잡히고, 총에 맞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동근 일행을 공격하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무슨 '람보'도 아니고... [대호]도 그렇고, [사냥]도 그렇고, 너무 과한 설정은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손반장 캐릭터를 좀 더 이용했더라면...
동근 일행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기성에게도 마지막 희망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손반장(손현주)입니다. 동근의 상사이며, 탄광 붕괴 사건의 담당 형사이기도 했던 손반장은 기성과 양순을 살릴 수 잇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기성은 손반장에게 보낼 메모를 적어 양순에게 산 밑으로 내려가 경찰서로 뛰어 가라고 하지만 동근 일행이 길목을 차단하고 있어서 좌절됩니다.
그러나 산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제보를 받은 손반장이 팀을 꾸려 산으로 수색을 시작하며 수세에 몰린 기성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하지만 손반장은 영화 속 경찰이 항상 그러하듯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현장에 도착합니다. 물론 뒤늦게 도착한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러한 손반장의 활약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만약 손반장 캐릭터를 좀 더 이용했다면 기성이 굳이 '람보'가 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좌석에서 일어나며 제 머릿 속에는 공허한 총성만이 가득 남았습니다. 안성기, 조진웅, 한예리라는 연기력 하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을 데리고 공허한 총성만이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다니... [사냥]이 영화 포스터의 광고 카피처럼 재미있는 추적 스릴러가 되려면 기성과 동근의 단순한 대결 외에도 좀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기대가 컸는데, 제게 [사냥]은 그저 아쉬움만 남는 영화였습니다.
스릴러는 판타지가 아니다.
어느정도 관객이 납득할만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비현실적인 스릴러는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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