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레니 에이브로햄슨
주연 : 브리 라슨, 제이콥 트렘블레이, 조안 알렌
개봉 : 2016년 3월 3일
관람 : 2016년 6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을 이제서야 본 이유
지난 2월에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룸]의 브리 라슨에게 돌아갔습니다. 비록 남우주연상을 결국 거머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화제성에 살짝 묻힌 감이 있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운 브리 라슨은 [캐롤]의 케이트 블란쳇, [조이]의 제니퍼 로렌스, [브루클린]의 시얼샤 로넌, [45년 후]의 샬롯 램플링을 제치고 당당하게 아카데미의 꽃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카데미 수상작을 모두 꼼꼼히 챙겨본 저는 당연히 [룸] 역시 브라 라슨의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꼭 봐야할 영화 1순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룸]의 관람을 자꾸 뒤로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내용 때문입니다.
[룸]은 나이 열일곱에 불과했던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작은 방에 갇히게된 조이(브리 라슨)와 조이가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다 출산한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엄마와 아들은 서로 의지하며 감옥같은 작은 방에서 살아가지만 다섯살 생일을 맞이한 잭을 위해 조이는 탈출을 결심합니다. 일단 저는 납치라는 소재가 꺼려졌고, 납치의 피해자 조이와 그의 어린 아들 잭이 겪어야 했던 상황을 지켜보기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뒤로 미뤄둘 수는 없죠. 결국 프로야구 중계조차 없는 월요일 저녁에 [룸]을 봤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저는 납치되어 감금된 조이와 잭이 당해야만 했던 폭력을 지켜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영화 초반 조이와 잭의 일상은 행복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비록 두 사람은 좁은 창고와 같은 방에 갇혀 지내야만 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밝은 미소를 보이기까지합니다.
7년전 조이를 납치한 닉도 예상보다 굉장히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저는 우락부락하고, 지저분하고, 혐상굳은 남자를 예상하며 닉의 첫 등장에 긴장했는데, 오히려 닉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실직한 닉에게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거냐고 묻는 조이의 모습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조이는 닉이 잭을 만지는 것에 히스테릭한 행동을 보이다 닉에게 폭행을 당하지만, 조이에 대한 닉의 폭력은 딱 그 장면 뿐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조이를 7년동안 작은 방에 가둬놓을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닉이 조이에게 매일같이 폭력을 행사했다면 조이는 어떻게든 이 지옥과도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해보이기까지한 일상과 잭에 의한 행복으로 조이는 갇혀지내는 생활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던 것이죠.
조이가 용기내어 탈출을 결심한 이유
만약 조이에게 잭이 없었다면 아마 조이는 7년간의 감금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조이가 감금 생활을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잭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잭의 존재는 조이에게 삶에 대한 희망이 됩니다. 그리고 조이는 이제 잭을 위해 용기있는 결심을 합니다. 바로 탈출을 계획한 것이죠. 잭을 이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평생 가둬놓고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용기를 준 것입니다.
잭에게 세상은 엄마와 작은 '룸'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조이는 잭에게 벽을 넘으면 더 큰 세상이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처음 그러한 조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하는 잭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잭이 아닌 그 누구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벽을 깨고 나가라고 한다면 겁부터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조이가 그러했듯이 잭도 용기를 냅니다. 엄마를 위해서... 다섯살 꼬마 잭의 용기는 영화를 보는 제게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잭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은 영화가 시작된지 1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저는 [룸]이 조이와 잭의 탈출기를 담은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절반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조이와 잭은 탈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1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것일까요?
조이와 잭... 보이지 않는 '룸'에 갇히다.
[룸]이 놀라운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이 영화의 흥행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작은 창고와도 같은 방에 감금된 조이와 잭의 지옥과도 같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며, 조이와 잭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되었을 것입니다. 탈출 후에도 조이와 잭을 끝까지 위협하는 닉의 무시무시함을 강조한다면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영화를 관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애초부터 그러한 것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론 조이와 잭의 탈출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은 것은 탈출 그 이후 조이와 잭이 마주해야하는 삶입니다. 여기에 더이상 닉은 없습니다. 오히려 조이와 잭을 위협하는 것은 닉이 아닌 그녀의 주변 사람들입니다.
7년만에 돌아온 딸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 로버트(윌리암 H. 머시). 하지만 그는 잭의 시선을 피합니다. 납치된 딸과 납치범인 닉 사이에서 태어난 잭을 로버트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감금된지 7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조이에 대한 주변의 과도한 관심은 조이와 잭을 어머니인 낸시(조안 알렌)의 집에 가두고, 언론의 인터뷰는 잔인한 질문으로 조이를 괴롭힙니다. 비록 조이와 잭은 닉의 '룸'에서 탈출했지만, 세상 사람들로 인하여 보이지 않은 커다란 '룸'에 다시 갇혀 버립니다.
짙은 여운과 희망을 안긴 그들의 마지막 모습
7년만에 닉의 '룸'에서 탈출했지만, 또다시 세상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룸' 에 갇히게되는 조이는 서서히 무너집니다. 아마 잭은 그러한 조이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 엄마와 자신 뿐이었던 갇혀 지내던 나날이 오히려 그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너지는 조이를 끝까지 부여잡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잭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보이지 않은 '룸'에서 탈출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갇혀 지냈던 닉의 '룸'을 다시 방문하고 안녕을 고하는 조이와 잭의 모습은 그렇기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조이와 잭은 과거로 인하여 스스로를 '룸'에 가두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엔 [룸]에 관심을 갖지 않던 구피는 조이와 잭이 닉의 '룸'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부터 [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룸]에 집중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그만큼 [룸]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감동적으로 풀어놓은 레니 에이브러햄스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고, 브리 라슨과 더불어 아역인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이 영화의 소재에 편견을 가졌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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