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일리야 나이슐러
주연 : 샬토 코플리, 헤일리 베넷, 다닐라 코즐로브스키
개봉 : 2016년 5월 19일
관람 : 2016년 6월 1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어지럼증
결혼 전, 우연히 조카가 플레이 스테이션을 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건물을 돌아다니며 총으로 적을 제거하는 게임이었는데, 몇분 정도 구경하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구경하기를 포기했었습니다. 저는 조카에게 "어지럽지 않니?"라고 물었지만, 조카는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재미만 있는대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이후 제가 어지럼증을 느낀 것은 8년전 [클로버필드]를 볼 때였습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된 [클로버필드]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캠코더로 찍은 조잡한 영상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화면을 보며 저는 어지럼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차멀미를 심하게 했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한 정거장만 가도 차멀미를 해서 먹을 것을 모두 토해냈고, 그래서 제 주머니엔 항상 비닐 봉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던 고등학생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차멀미가 사라졌었습니다. 그런데 조카의 플레이 스테이션을 구경하다가, 극장에서 [클로버필드]를 보다가 어린 시절의 차멀미와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 [하드코어 헨리]도 제게 어지럼증을 안겨줬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1인칭 액션영화
사실 [하드코어 헨리]의 내용은 너무 평범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심각환 부상을 당한 헨리는 기억이 지워진채 강력한 힘을 가진 사이보그로 부활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살게된 그에게 세계 지배를 꿈꾸는 아칸(다닐라 코즐로브스키)이 나타나 아내인 에스텔(헤일리 베넷)을 납치하고, 헨리는 정체불명의 괴짜 과학자 지미(샬토 코플리)와 함께 아칸과의 최후 전쟁을 시작합니다.
분명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모든 것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헨리의 눈이 되어 그가 보는 것만 보게되는데, 문제는 이 영화가 액션영화라는 점입니다.
만약 이 영화의 장르가 액션이 아닌 멜로나, 코미디라면 어쩌면 어지럼증이 덜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헨리는 에스텔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아칸과 맞서 싸우기 위해 뛰어 또 뜁니다. 그럴 때마다 영화의 화면은 심하게 흔들리는데, 1인칭으로 진행되는 플레이 스테이션의 게임 화면과 심하게 흔들리는 조잡한 캠코더 화면들로 이루어진 [클로버필드]를 반쯤 섞어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플레이 스테이션과 [클로버필드]를 보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던 저는 [하드코어 헨리]를 보면서도 극한의 어지럼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토요일 아침에 [하드코어 헨리]를 보면서 저는 예상하지 못한 어지럼증으로 불쾌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관람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만 다행히 영화의 러닝타임이 1시간 36분으로 짧았기에 참고 볼만했습니다.
영화는 마치 게임을 하듯이 진행되는데, 헨리는 지미의 지시대로 한단계씩 깨기시작합니다. 당연히 단계가 진행될 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고, 마지막 아칸과의 대결은 게임 속 최종 보스 대결처럼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하드코어 헨리]는 지미의 정체와 에스텔의 비밀 등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반전을 제공하는데, 솔직히 그러한 반전에 의한 영화적 재미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특히 에스텔의 비밀은 조금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하드코어 헨리]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지러웠고, 영화의 내용도 평범했고, 반전은 억지스러웠기 떄문입니다. 단지 1인 다역을 연기한 샬토 코플리의 능청스러운 연기만이 제게 [하드코어 헨리]를 보는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플레이 스테이션을 재미있게 하는 관객이라면...
하지만 플레이 스테이션을 재미있게 즐기던 제 조카와 같은 관객이라면 [하드코어 헨리]에게 색다른 재미를 느끼며 열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건 [하드코어 헨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1인칭 시점의 액션영화니까요.
[하드코어 헨리]는 러시아 출신의 일라야 나이슐러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연출한 '배드 마더퍼커'라는 뮤직 비디오로 전세계적 명성을 얻었다고 하는데, '배드 마더퍼커' 또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고 하네요. '배드 마더파커'의 성공으로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눈에 들었고, 그의 지지아래 [하드코어 헨리]를 연출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드코어 헨리]는 제4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거머쥐며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드코어 헨리]의 새로움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같은 관객들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영화를 즐길 수 없었으니까요. 완벽한 새로움을 얻으려면 저와 같은 고나객들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즐길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요? 기대해봅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6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그리스식 웨딩 2] -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것. (0) | 2016.06.27 |
---|---|
[룸] - 보이지 않는 세상의 '룸'을 깨고 나오다. (0) | 2016.06.24 |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 고풍적인 로맨스에 좀비를 끼워넣으면? (0) | 2016.06.09 |
[빅터 프랑켄슈타인] - 괴물이 아닌, 괴물의 창조자에 관심을 기울이다. (0) | 2016.06.08 |
[맨 프롬 UNCLE] - 복고와 최신 트랜드가 결합된 흥미로운 첩보영화 (0) | 2016.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