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형곤
주연 : 주현, 박준규, 하정우, 박시연, 고주연
개봉 : 2006년 9월 28일
관람 : 2006년 10월 2일
등급 : 15세 이상
황금의 9일 연휴를 맞이하여 영화를 3편이상 보겠다는 제 다짐은 어느덧 연휴가 절반이나 지나버린 지금은 이룰수없는 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편도 보지 못하고 이 황금 연휴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독한 맘을 먹고 지난 월요일 [구미호 가족]을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월요일은 정말 우울했습니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구피는 회사에서 야유회를 간다며 새벽같이 나가버리고, 늦잠도 자지 못한채 웅이를 꾸벅꾸벅 졸며 보다가 밤이 다 되어서야 웅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프로야구 4강 결정전이 있는 날. 영화만큼이나 야구도 좋아하는 저는 제가 응원하는 두산이 4강에 올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길 바랬지만 한화에게 부질없이 지는 바람에 4강 진출은 결국 좌절되었습니다. 위로해줄 구피도 없고, 혼자 힘없이 TV 드라마 [주몽]을 보다가 그냥 충동적으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기분이 꿀꿀해서인지 아무 생각이 필요없는 코미디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바로 [구미호 가족]입니다. 한 밤중에 혼자 영화를 보고 있자니 제 자신이 너무 처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구미호 가족]이 이런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날려주기만을 바랬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봅니다.
[구미호 가족]을 보고나서 들었던 첫번째 단어가 바로 '함량미달'입니다. 코미디이면서 웃음코드도 부족했고, 뮤지컬이면서 음악도 맘에 안들었으며, 배우들의 연기력도 모두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제게 다시 기회가 있다면 [구미호 가족]을 반품하고 성룡의 [BB 프로젝트]나 [타짜]를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구미호 가족]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뮤지컬이라는 이 영화의 장르 때문입니다. 우리 영화에 계속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이 영화의 새로운 시도에 일단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던 겁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이자 최후의 우리 뮤지컬 영화는 [남자는 괴로워]였습니다. 안성기, 박상민, 김혜수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던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는 흥행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겐 꽤 신선한 시도로 오랜 세월동안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답니다.
그리고 10년만에 뮤지컬 영화가 3편이나 연달아 개봉하는 군요. 그 첫번째 영화는 [다세포 소녀]입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본격 뮤지컬 영화는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다세포 소녀] 역시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외면속에서 철저하게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영화가 [구미호 가족]이고, 마지막 영화가 [삼거리 극장]입니다. [삼거리 극장]은 아직 개봉전이지만 [다세포 소녀], [구미호 가족]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네요.
암튼 아쉽게도 [구미호 가족]은 뮤지컬 영화로써는 실패작입니다. 제가 감히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로는 실패작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귀에 쏘옥 들어오는 음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뮤지컬의 명작이라 불리우는 영화들은 한결같이 영화보다 더 정겨운 좋은 음악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미호 가족]에는 없습니다. 음악들이 뮤지컬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기 보다는 코미디 영화를 위한 음악처럼 느껴졌을 뿐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가창력도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주현, 박준규, 박시연 등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형곤 감독은 뮤지컬 영화를 너무 우습게 봤나봅니다. 배우들이 노래를 부른다고 모두 좋은 뮤지컬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음악과 그 음악을 뒷받침해주는 가창력있는 배우들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구미호 가족]은 이 모든 것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코미디 영화로써의 [구미호 가족]은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전혀 웃기지 않는 이상한 코미디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영화의 코믹 코드는 어벙한 구미호 가족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간이 되겠다고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입니다. 하지만 어벙한 구미호들도 안웃겼고, 그들의 소동극도 밋밋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여기에 3류 사기꾼 기동(박준규)과 발정기에 접어든 밝히는 첫째딸 구미호(박시연)의 느닷없는 사랑 이야기가 끼어들며 코믹 코드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갑니다.
먼저 어벙한 구미호들의 인간세상 적응하기의 웃음코드는 영화 초반 꽤 그 힘을 발휘하는 듯이 보입니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서커스장을 개장하여 사람들을 모아보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엽기 서커스 장면으로 한바탕 웃음을 안깁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입니다. 기동이 얼떨결에 이 서커스 단에 합류하고 구미호의 몰카를 찍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구미호 가족의 음모에 동참하며 영화는 점점 억지스럽게 변해갑니다.
구미호의 희생양을 구하기 위해 뽑은 서커스의 새 단원들은 모두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인생의 실패자들이고, 거사를 위해 그들을 한달간 돌봐야하는 구미호 가족은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영화를 점점 훈훈한척 합니다.
기동과 첫째딸 구미호의 이룰수 없는 사랑에 인생의 실패자들과 그들을 따뚯하게 감싸주는 구미호 가족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영화는 점점 코미디 보다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되고 있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노골적으로 감동 드라마는 표명하지 못했기에 결국 이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려습니다.
물론 노골적으로 슬픈 코미디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소심하게 살픈 코미디만 살짝 건드리느라 코믹 코드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결국 코미디 영화면서 웃음이라는 요소가 현저하게 함량이 미달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구미호라는 소재에서 오는 공포는 어떨까요? 모두들 예상은 하시겠지만 그 부분은 함량 미달이 아니라 아예 함량 제로입니다. 제가 구피도 없이 한밤중에 그것도 그날 혼자 자야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무사히 봤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죠. ^^;
배우들의 연기력도 함량미달입니다. 물론 그들의 연기력이 안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그들 모두 뮤지컬 영화이면서 노래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연기력이 좋지 못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으며, 기동과 첫째딸 구미호의 안타까운 사랑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못했기에 박준규와 박시연의 연기도 그리 좋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기력이 있다는 하정우는 전혀 막무가내 장남 구미호 역에 전혀 안어울렸고, 주현과 그 외 배우들도 그리 썩 마음에 드는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전부 싫었던 것은 아닙니다. 몰랐는데 박시연은 정말 섹시하더군요. 그녀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섹시한 포즈를 취할때 나도 모르게 '예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영화 막판 기동과의 러브 스토리만 없었더라면 이 섹시한 구미호에게 합격 점수를 주고도 남았을 겁니다.
막내 구미호인 고주연은 이 영화 출연진중 가장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가장 잘 들어맞는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결국 가장 구미호다웠죠. 특히 네발로 기는 듯한 포즈로 화면에 등장할땐 이 어린 배우가 정말 구미호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알수없는 카리스마. 다른 배우들이 어벙한 구미호 연기를 위해 최선을 다할때 왠지 뭔가 있는 듯한 그녀의 눈빛은 영화의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낭만자객]이후 꽤 오랜만의 영화 출연이던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더군요.
결국 [구미호 가족]은 전체적으로 함량이 많이 미달되는 영화였습니다. 제 우울한 하루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버린... 이것이 우리 뮤지컬 영화의 한계일까요? 아무래도 [삼거리 극장]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을 듯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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