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히구치 신지
주연 : 쿠사나기 츠요시, 시바사키 코우, 도요카와 에츠시
개봉 : 2006년 8월 31일
관람 : 2006년 9월 1일
등급 : 12세 이상
요즘 인생의 쓴 맛을 아주 처절하게 맛보고 있습니다. 가끔가다가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이 드는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낙천적인 성격이라 자부했었지만 어느새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너무 두려워 새벽엔 눈을 감은채 잠을 들지도 못하고 아침을 맞이합니다. (잠들면 아침이 금방 와버리니까요.)
하지만 제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전 구피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특히 그 지옥같은 아침에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진 천사같은 구피의 얼굴을 보면 나도모르게 지옥은 천당이 되어버립니다.
어느새 부쩍 커버린 웅이는 저만보면 다리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하죠. '놀아줘!' 저는 매일 꿈꿉니다. 웅이와 하루종일 놀아줄 수 있는 날을... 지금은 웅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막상 해주지도 못한채 웅이를 위해 돈을 벌겠다며 아둥바둥거리지만 언젠가는 저도 돈걱정없이 웅이와 하루종일 놀아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저희 어머니는 요즘 거의 매일 병원에 다니십니다. 젊으셨을때부터 고생만하셔도 나이가 드신 지금은 병을 몸에 달고 사십니다. 그래도 병원비가 아까워 병원에 못가시더니만 요즘 회사에서 병원비가 지원되니 '니 덕분이다'라시며 병원에 꾸준히 다니시고 계십니다. 저는 그 병원비를 회사에 청구하기 위해 온갖 눈치를 봐야하지만 어머니가 건강해지신다면 그깟 눈치 얼마든지 볼수 있습니다.
요즘 저는 힘이 듭니다. 영화보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저녁이 되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버려 집에가서 잠자고 싶은 생각밖에 안듭니다.(영화 이야기가 뜸한 변명. ^^;) 하지만 아직 저는 행복합니다. 구피가 내 곁에 있어주고, 웅이가 예쁘게 커주고 있으며, 어머니는 못난 이 아들이 최고인줄 알며 자랑스러워하시는한 전 영원히 행복할겁니다.
[일본침몰]을 봤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이 들어 영화조차 보기를 거부한지 꼬박 20일만에 본겁니다. 난생 처음보는 일본 블럭버스터는 어떤지 궁금했으며, 일본이 침몰한다는 소재도 왠지 통쾌할것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요즘의 제 사정과 맞물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봤답니다. 다른 분들의 평은 거의 최악수준이던데... ^^;
일단 이 영화 통쾌할것이라는 제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갑니다. 이 영화가 통쾌할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법한 반일 감정때문입니다. 과거문제도 그렇고, 요즘 일본의 행보도 그렇고,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지만 감정적으로는 가장 멀기도한 이상한 나라 일본. 그러한 일본이 침몰하면 통쾌할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영화속 일본 총리가 말합니다. '우리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다.'라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바다에 가라앉는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해외로 도피할 수 없는 소시민들은 살기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들은 물론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이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들도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으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밉지만 우리와 똑같은 그들마저 미워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비규환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추억이 있고, 꿈이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만약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전 작은 희망이라도 놓치지않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일본침몰]은 재난 영화입니다. 재난 영화에 필연적으로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이 거대한 재난에서부터 사람들을 구할 난세의 영웅. 이 영화엔 오노데라(쿠사나기 츠요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잠수정 파일럿이었던 그는 침몰하고 있는 일본을 떠날 기회를 잡지만 사랑하는 아베(시바사키 코우)를 위해 일본에 남습니다. 아베 역시 오노데라가 함께 영국으로 가자는 청을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힘겹게 거절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일본에 남으면 죽을 것이 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없이 사는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지막 희망을 놓지않고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이 더 행복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사랑때문에'라는 오노데라의 선택은 영웅 만들기의 너무 뻔한 공식을 따라가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오노데라는 결국 선택을 합니다.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기로. 구식 잠수정을 타고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는 오노데라의 그 표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결연한 표정이 비췄습니다.
[일본침몰]. 솔직히 뻔합니다. 특수효과는 우리 블럭버스터인 [괴물]보다도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다 더 거대한 영화 시장을 갖추고, 헐리우드의 영화사도 자본력으로 장악한 그들이 아직도 스크린쿼터제에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협소한 우리 영화보다도 기술력이 떨어지다니... 왠지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스토리는 뻔합니다. [아마겟돈]을 연상케하는 영웅의 희생은 재난 영화의 너무 뻔한 공식만 되풀이해 보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가 재미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오노데라의 모습을 보며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삶대신 선택한 희생.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겁니다. 자신의 희생이 사랑하는 사람의 희망이 될것을 알기에... 오노데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저는 일주일중 겨우 5일만을 희생하는기에 전 오노데라보다 더욱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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