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론 하워드
주연 : 크리스 헴스워스, 벤자민 워커, 벤 위쇼, 브렌단 글리슨
개봉 : 2015년 12월 3일
관람 : 2015년 12월 5일
등급 : 12세 관람가
소설 <모비딕>을 읽었다면...
제가 웅이와 함께 볼 영화를 선택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전해주는 즐거움입니다. 그렇기에 SF, 슈퍼히어로 그리고 유쾌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영화가 고전문학을 원작으로 한 경우 웅이에게 고전문학의 재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영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트 오브 더 씨]를 웅이와 함께 보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물론 [하트 오브 더 씨]는 고전문학을 원작으로한 영화는 아닙니다. 단지 1819년 여름에 출항했지만 15개월 뒤 남태평양의 가장 먼 가장 자리에서 성난 고래의 공격을 당하며 침몰한 포경선 에식스호의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에식스호의 비극은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에 의해 1851년 장편소설 <모비딕>으로 재탄생되었고, 제가 웅이와 함께 [하트 오브 더 씨]를 보기로 결심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저도 <모비딕>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꽤 많은 책들을 읽었던 문학소년이었거든요. 그땐 제목이 <모비딕>이 아닌 <백경>으로 출판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매일 집과 회사를 오고가는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책과는 멀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하트 오브 더 씨]를 보기로 결심한 또다른 이유는 문학소년이었던 학창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딕>은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포경선 파쿼드호의 선장 에이햅의 복수극입니다. 그는 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동료들의 충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경'을 찾아 머나먼 바다로 항해를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백경'을 만나게 되고 3일간의 사투를 벌어지만 결국 '백경'과 함께 바다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파쿼드호는 침몰한다는 내용입니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여러모로 <모비딕>과 닮은 구석이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 포경선이 주요 무대라는 점이 그러하고, 신분 때문에 선장이 되지 못했지만, 고래기름을 가득 채워 다음 항해에선 꼭 포경선의 선장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는 에이햅 선장을 연상하게 합니다. <모비딕>에서 파퀴드호의 선원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에이햅과 파쿼드호가 겪은 비극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스마엘은 [하트 오브 더 씨]에서 에식스호의 생존자 중의 한명이며, 멜빌(벤 위쇼)에게 에식스호의 비극을 전하는 토마스 니커슨(브렌단 글리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비딕>이 '백경'을 향한 에이햅 선장의 복수가 주요 내용이라면 [하트 오브 더 씨]는 에식스호의 침몰 이후 3개의 보트에 나눠 타고 무려 94일 동안 망망대해에서 표류를 해야했던 에식스호 선원들의 생존기가 주요 내용입니다.
거대한 고래와의 사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하트 오브 더 씨]는 바로 <모비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합니다. 제 경우는 [하트 오브 더 씨]에 기대한 것은 에식스호의 선원들과 거대한 고래의 사투와 그로인한 스펙타클이었습니다. <모비딕>에서 글로만 읽을 수 있었던 에이햅 선장과 '백경'의 3일간의 사투와 비장한 최후를 [하트 오브 더 씨]에서 스펙타클한 영상으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백경'과의 사투는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실제 238톤에나 나가는 에식스호는 30m에 80톤의 무게를 가진 항유고래와의 충돌로 10분 만에 침몰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하트 오브 더 씨]에서 에식스호의 침몰은 아주 짧게 표현될 뿐입니다. '백경'과의 3일간의 사투는 소설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그 대신 [하트 오브 더 씨]가 담고 있는 것은 침몰한 배에서 살아남은 21명의 선원들의 처절한 생존기입니다. 실제 94일 만에 구조된 에식스호의 선원들은 단 8명뿐 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하트 오브 더 씨]는 <모비딕>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는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고래와의 사투에 의한 스펙타클을 기대하지 않고 [라이프 오브 파이]와 비슷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재난영화로 [하트 오브 더 씨]를 본다면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하트 오브 더 씨]를 재미있게 보려면 이 영화의 캐릭터 간의 대립구조를 먼저 이해해야합니다. 멀빌에게 어렵게 에식스호의 비극을 이야기해주는 니커슨도 "이 이야기는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니커슨이 언급한 두 남자는 오웬 체이스와 조지 폴라드(벤자민 워커)입니다. 일등항해사인 체이스와 선장인 폴라드는 출신성분에서부터 모든 것이 서로 상반된, 그래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사이입니다.
체이스은 이방인 출신입니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고, 어린 체이스는 낸터킷 섬의 어부에게 입양됩니다. 비록 이방인이긴 하지만 그는 포경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입니다. 누구보다도 포경선의 선장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고, 고래잡이에 대해서는 경험과 지식도 풍부합니다. 그러나 선주들은 에식스호의 선장으로 체이스가 아닌 폴라드를 선택합니다.
폴라드는 체이스와는 달리 낸터킷 섬의 지주 아들입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포경산업을 가업으로 삼았고, 그 덕분에 경험이 전무한 폴라드는 체이스 대신 에식스호의 선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의 표현으로 따진다면 체이스는 흙수저, 폴라드는 금수저를 갖고 태어난 셈입니다. 신분은 미천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체이스, 귀한 신분을 타고 났지만 경험과 지식은 전무한 폴라드. 이 두 사람은 에식스호의 출항때부터 서로 대립합니다.
탐욕이 부른 참극
이렇게 신분 때문에 선장이 되지 못한 체이스는 더욱 신분상승에 목매게 됩니다. 그리고 미천한 신분의 그를 포경선의 선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에식스호에 가득 실을 고래기름 뿐이었습니다. 고래기름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19세기의 상황을 이해해야합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이후 미국으로 확산됩니다. 산업혁명이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공업화입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되면서 생산량은 늘어났고, 늘어난 생산량만큼이나 벌어들이는 돈은 쌓여만 갑니다. 그렇기에 기계를 쉬지 않고 돌릴 수 있는 공업원료의 중요성은 산업혁명의 핵심이 됩니다. 석유가 아직 발견되기 전이었던 19세기 당시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고래기름은 거의 유일한 공업원료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경산업은 미국을 자본주의 강국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됩니다. 요즘 석유을 둘러싼 각국의 이권다툼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태풍으로 인하여 에식스호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폴라드는 낸터킷 섬으로 돌아가 에식스호를 수리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체이스는 고래기름을 가득 채우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며 폴라드를 설득합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폴라드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며 폴라드의 핸디캡을 건드리면서 말입니다. 그만큼 고래기름으로 신분상승을 이루겠다는 체이스의 탐욕은 이미 그를 눈멀게 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면에서 체이스는 <모비딕>의 에이햅 선장과 많이 닮았습니다. 비록 에이햅은 체이스가 결코 되지 못했던 포경선의 선장이지만, '백경'에 대한 눈먼 탐욕은 서로 같습니다. 에이햅은 '백경'에 대한 복수심으로, 체이스는 신분상승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과 포경선의 선원들을 참극의 현장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탐욕과 함께 바다밑으로 수장된 에이햅 선장과는 달리 체이스는 94일간의 표류로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하트 오브 더 씨]는 탐욕에 눈이 먼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며 깊은 깨달음을 얻게되는 체이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절망과 고독, 그리고 양심과 싸워야 했습니다. 처음 에식스호를 타고 낸터킷 섬을 떠날 때의 자신만만하던 체이스는 94일간의 표류로 달라졌습니다. 살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선택까지 해야 했던 체이스. 그는 극적으로 살아서 낸터킷 섬에 돌아오고 나서 탐욕이 자신이 어떻게 눈 멀게 했는지 반성하고, 여전히 포경산업의 탐욕에 눈이 먼 낸터킷 섬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트 오브 더 씨]는 인간의 탐욕이 어떤 참극을 불러 일으키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체이스는 에이햅 선장과는 달리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어이는 것이 아닌, 탐욕에 눈이 먼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했던 것입니다.
대립구조가 조금 아쉽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에식스호의 비극이라는 실화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그로인한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19세가 포경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현재도 우리 인간의 탐욕은 끊임없는 비극으로 되돌아오고 있으니까요. 최근의 끔찍한 테러가 석유이권다툼에서 시작된 비극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의미를 떠나 영화의 재미만 놓고본다면 [하트 오브 더 씨]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에이햅 선장 VS '백경'이라는 단순명료한 대립구조를 가졌던 <모비딕>과는 달리 [하트 오브 더 씨]에는 별다른 대립구조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심심하게 만듭니다. 영화의 초반만 하더라도 오웬 체이스 VS 조지 폴라드로 흥미로운 대립구조를 세울 것 같았지만, 영화 초반만 서로 대립할 뿐, 이후에는 니커슨의 나래이션으로 서로간의 대립을 간접 설명할 따름입니다.
에식스호가 침몰하고 표류하면서부터는 아예 체이스와 폴라드의 대립구조는 사라져 버립니다.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체이스와 폴라드는 대립보다는 상생을 선택합니다. 이쯤되면 니커슨이 멜빌에게 "이건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라고 운을 뗀 것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비록 영화적 재미는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저와 웅이에겐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웅이는 [하트 오브 더 씨]를 본 후 거실 책장에서 <모비딕>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비딕>의 캐릭터와 [하트 오브 더 씨]의 캐릭터를 서로 비교하면서 흥미를 갖더군요. 웅이에게 고전문학의 재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하트 오브 더 씨]를 선택한 제 의도가 성공한 셈입니다.
웅이가 <모비딕>을 읽고나면 저도 웅이의 뒤를 이어 <모비딕>을 다시한번 읽기로 했습니다. 학창시절 틈만 나면 책을 읽었던 그 시절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영상이 아닌 활자를 통해 제 문화생활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선택 역시 제가 [하트 오브 더 씨]를 선택한 의도와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입니다. 결국 웅이와 저는 [하트 오브 더 씨]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입니다.
인간은 탐욕의 동물입니다. 그러한 탐욕이 인간의 문명을 일으켜세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처럼 그저 먹고 자고 싸는 것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인간 문명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탐욕이 너무 과하면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이햅 선장과 파퀴드호처럼... 오웬 체이스와 에식스호처럼...
스스로를 눈 멀게한 탐욕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반성한 오웬 체이스
그의 선택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오웬 체이스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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