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우민호
주연 :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김홍파
개봉 : 2015년 11월 19일
관람 : 2015년 11월 2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모두가 추천하던 바로 그 영화!!!
요즘 저는 영화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회사에서 바쁜 일이 모두 마무리된 상황이고, 프로야구 시즌도 끝난터라 영화 보기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시기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것이 그냥 귀찮습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도 귀찮고,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쇼파에 벌러덩 누워 보는 것도 귀찮습니다. 아마도 저는 지금 가을을 지독하게 타고 있나봅니다.
11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제가 극장에서 본 영화는 [검은 사제들], [스파이 브릿지], [007 스펙터]뿐입니다. 그나마 가을을 지독하게 타는 와중에 이렇게 세편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은 구피가 함께 극장을 동행해줬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하루 휴가를 내고 세편의 영화를 몰아서 한꺼번에 봤던 10월 14일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가면 그냥 쇼파에서 멍하니 TV를 보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들어서 "이 영화 아직 안 봤어요?"라는 블로그 이웃분들의 댓글이 자주 눈에 띕니다. 그 중에서 특히 [내부자들]의 관람을 추천하는 분들이 제 주위에 뿌쩍 늘었습니다. 지난 11월 19일 개봉한 영화 중에서 [헝거게임 : 더 파이널]과 함께 기대작으로 선정되었던 [내부자들]. 하지만 제 가을타기때문에 개봉한지 1주일이 지나도록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영화를 저는 주위 분들의 추천으로 기대작 1순위였던 [헝거게임 : 더 파이널]보다 먼저, 그것도 혼자 보고 왔습니다.
사실 저는 [내부자들]의 흥행을 부정적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병헌의 개인 사생활에 의한 스캔들로 개봉일이 차일피일 늦춰졌던 [내부자들]. 이 영화가 지난 8월 개봉했던 [협녀, 칼의 기억]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협녀, 칼의 기억]은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주연의 무협 액션영화로 개봉전부터 화제가 되었지만, 이병헌 스캔들에 직격탄을 맞으며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협녀, 칼의 기억]의 흥행 실패를 고스란히 이병헌 스캔들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병헌 스캔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개봉 첫주만큼은 관객이 호기심에 극장을 찾았을 것입니다. 결국 [협녀, 칼의 기억]의 개봉 첫주 성적은 24만명으로 박스오피스 순위는 고작 6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영화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지며 개봉 2주차만에 박스오피스 TOP10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내부자들]이 [협녀, 칼의 기억]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흥행성적을 올리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예상과는 달리 [내부자들]은 개봉 첫주부터 [검은 사제들]을 밀어내고, [헝거게임 : 더 파이널]을 제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흥행에 있어서 불리한 조건인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7일 만에 누적관객 226만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중입니다. 분명 이병헌 스캔들이라는 같은 악재를 가지고 개봉한 영화인데 [협녀, 칼의 기억]은 흥행에 실패했고, [내부자들]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협녀, 칼의 기억]은 안되고, [내부자들]은 되는 이유
[내부자들]의 영화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이병헌 이야기를 먼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내부자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월드스타입니다. 하지만 인지도가 크면 클수록 대중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을 기대합니다. 이병헌이 법적 피해자인 이번 스캔들에서 오히려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도덕성이 대중을 실망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병헌은 스타이기에 앞서 배우입니다. 배우는 결국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협녀, 칼의 기억]과 [내부자들]에서 보여준 이병헌의 연기력은 그의 도덕성이 대중을 실망시켰다고 하더라도 배우로써의 능력은 여전히 톱클래스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문제는 [내부자들]은 이병헌의 연기력을 잘 활용하고 있지만, [협녀, 칼의 기억]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영화에서 이병헌은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권력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연인 월소(전도연)와 형제와도 같은 풍천(배수빈)을 배신하지만, 결국 월소와 홍이(김고은)의 복수에 쓰러지는 유백을 연기했습니다. [내부자들]에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의 배신에 폐인이 되어 복수를 꿈꾸는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를 연기했습니다.
[협녀, 칼의 기억]의 유백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악역이라면, [내부자들]의 안상구는 정의로운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패한 사회 지도층에 비하면 깨끗한 편에 속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작은 차이는 이병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를 움직였습니다. 도덕성에 타격을 받으며 대중의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이병헌.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이병헌이 미운데 [협녀, 칼의 기억]에서 악역을 연기하다보니 더욱 미워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도덕적 타격을 받은 이병헌의 이미지를 오히려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안상구는 부패한 정치인 장필우의 뒤를 봐주는 정치 깡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강희(백윤식)와의 의리를 굳게 믿는 순진한 면도 있습니다. 그는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복수를 위해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달게 받습니다. 그러한 안상구의 캐릭터는 영화를 보는 제게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와 맞물려 이병헌은 [내부자들]의 제작 발표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며 대중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물론 [협녀, 칼의 기억]과 [내부자들]의 이병헌 캐릭터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영화는 이병헌 스캔들 이전에 촬영된 영화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부자들]을 보다보면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그렇게 미워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병헌이 맡은 캐릭터가 우장훈(조승우)이었다면 오히려 반감이 갔을텐데,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안상구였기에,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인간 이병헌과 교묘하게 겹쳐 보였나봅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이후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안상구라는 캐릭터 덕분에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이병헌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내부자들]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추악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치 깡패인 안상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부패는 너무나도 역겹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의 설정이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와 장필우의 자금줄인 대기업 총수 오회장(감홍파). 그리고 유력 일간지의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로 이루어진 [내부자들]의 악의 축은 제 아무리 강력한 정의의 사도가 오더라도 쉽게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견고해 보입니다. 권력과 돈, 그리고 여론 조작까지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빽도 족보도 없는 우장훈 검사와 정치 깡패 안상구가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아닙니다. 우장훈은 성공을 위해서, 안상구는 복수를 위해서 물불 안가리고 달려든 것입니다. 하지만 일개 검사와 정치 깡패 따위가 상대하기엔 권력, 돈, 여론으로 똘똘 뭉친 그들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상처 하나 낼 수가 없죠. 영화의 제목이 '내부자들'인 이유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호랑이굴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우장훈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강희가 여론을 조작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기가 막힙니다. 비자금 파일 폭로로 장필우와 오회장, 이강희를 무너뜨리려는 안상구. 그런데 이강희는 안상구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며 대중이 안상구의 말을 믿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만약 [내부자들]의 상황이 현실이라면 저는 과연 정치 깡패의 말을 믿을까요? 아니면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리고 언론인의 말을 믿을까요?
이강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대중은 개, 돼지와 같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진다.' 그러한 이강희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바쁜 우리와 같은 대중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힘듭니다. 당장 우리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적당히 분노했다가 적당한 수준에서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의 심리를 이강희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2015년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 선 [베테랑]도 그렇고, 이병헌 스캔들의 악재를 가뿐하게 넘어선 [내부자들]도 그렇고, 이들 영화의 특징은 사회 부조리를 파헤친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 속 사회 부조리를 깨부수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현실에서 우리는 그럴수가 없으니... 부끄럽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내부자들]이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얻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이 영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지 못하는 이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내부자들]이 비슷한 느와르 분위기의 영화인 [신세계]보다는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계]를 봤을 당시에는 영화에 매료되어 시간가는줄 몰랐지만, [내부자들]을 보면서는 약간 지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10분으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조금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세계]의 러닝타임도 2시간 15분이었습니다.
제가 [내부자들]에 약간의 지루함을 느낀 이유는 이 영화의 결말이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장면과 상황 반복이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죠. [내부자들]에서 사회 지도층의 더러운 부패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오회장의 성접대 장면입니다. 처음 오회장과 이강희, 그리고 장필우의 성접대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충격적인 성접대 장면을 똑같은 방식으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이용함으로써 처음의 충격을 반감시킵니다.
성접대 장면을 이용해서 복수를 하려는 안상구의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성접대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인 탓에 대중의 호기심을 쉽게 유도할 수가 있습니다. 안상구는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고, 한때 자신의 소속사 가수였던 주은혜(이엘)를 이용해서 성접대 장면을 몰래 촬영해서 복수에 이용하려합니다. 다시말해 성접대는 이강희 일당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약점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약점을 이강희가 몰랐을까요? 대중의 심리를 가장 잘 아는 이강희가 그것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은밀하고 철저하게 그들의 쾌락 탐닉은 이뤄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은혜에게 당할뻔 했듯이 똑같이 우장훈에게 당합니다. 견고해보이던 권력과 돈, 언론의 집합이 고작 쾌락 하나때문에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치밀한 복수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장훈의 마지막 복수는 반전이라 하기엔 너무 뻔했습니다. 영화 후반부 내부 폭로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어머, 내부자가 우장훈이었어?"라며 깜짝 놀래야 하는데, 이미 우장훈이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이고, 카메라는 어디에 숨겼는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마지막 반전의 순간이 미지근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내부자들]은 이강희 일당의 부패 중 가장 자극적인 성접대를 너무 과도하게 이용한 탓에 오히려 영화의 치밀함이 부족해진 셈입니다.
마지막 이강희와 우장훈의 복수 장면은 미지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자들]은 흥행 1위 영화답게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성공을 위해, 복수를 위해 지옥길에 들어섰음에도 되돌아 도망치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우장훈과 안상구. 그들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오늘도 어제와 같이 권력과 돈, 언론의 부패를 모르는척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내부자들]은 [베테랑]이 그러했듯이 소시민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비록 먹고 사는 것이 버거워 사회적 문제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선거날이 오면 내 소중한 한표로 내 목소리를 낸다.
선거날에도 먹고 사는 것이 버겁다며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자격조차 없다.
'영화이야기 > 2015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림슨 피크] - 마음에 깃든 유령 (0) | 2015.12.04 |
---|---|
[헝거게임 : 더 파이널] - 내겐 조금 아쉬웠던 전사의 퇴장 (0) | 2015.12.02 |
[007 스펙터] - 내겐 너무 매력적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0) | 2015.11.23 |
[스파이 브릿지] - 누가 뭐래도 사람이 먼저다. (0) | 2015.11.11 |
[검은 사제들] - 현실과 판타지의 오묘한 경계를 넘나들다. (0) | 201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