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투모로우랜드] -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세상

쭈니-1 2015. 6. 2. 18:45

 

 

감독 : 브래드 버드

주연 : 브릿 로버트슨, 조지 클루니, 라피 캐시디, 휴 로리

개봉 : 2015년 5월 27일

관람 : 2015년 5월 3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가?

 

어린시절 저는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라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방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장난감들을 움직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물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만화로 그려졌고,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는 소설로 쓰여졌습니다. 그 중 소설은 지금도 제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저는 여전히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구피와 결혼한 후에는 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는 웅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웅이를 볼 때마다 저는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웅이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걱정이 먼저 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웅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해달라는 웅이에게 저는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빠한테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러냐?"라며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화를 내는 대상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웅이가 아닙니다. 스스로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믿었는데, 이젠 웅이에게 해줄 간단한 이야기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어쩌다가 제 상상력은 이토록 메말라 버렸을까요?

 

오랜만에 온가족이 [투모로우랜드]를 보기 위해 주말 극장나들이를 갔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SF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상상력에 의해 채워진 영화들이기 때문입니다. [투모로우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평행우주의 세계에 인류의 유토피아 '투모로우랜드'가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투모로우랜드]는 1889년 프랑스 파라의 에펠탑을 설계한 천재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그리고 SF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과 전기의 아버지 니콜라 테슬라가 함께 결성한 비밀조직 플러스 울트라가 실제로 최첨단 기술을 겸비한 이상적인 미래세계를 직접 계획하고 건설했다고 관객에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투모로우랜드'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투모로우랜드]의 설정이 실제 이야기라면 과연 나는 '투모로우랜드'에 초청될 수 있을까요? 현실에 지쳐 상상하기를 멈추고, 이야기를 해달라는 웅이에게 버럭 화나 내는 저는 '투모로우랜드'에 초청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웅이만큼은 '투모로우랜드'에 초청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플러스 울트라, 그리고 평행우주

 

[투모로우랜드]가 흥미로운 것은 원작소설을 바탕으로한 영화가 아닌, 오로지 상상력에 기댄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의 상상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본다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인 천재들이 결성한 비밀조직 플러스 울트라가 그러합니다.

사실 에펠, 에디슨, 테슬라, 베른이 실제로 플러스 울트라가 결성했는지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에펠이 설계한 건물과 테슬라와 에디슨의 기술력, 그리고 베른의 상상력이 결합된 세계는 어쩌면 정말 우리 인류가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재미있는 가설은 1960년대 들어서 월트 디즈니가 플러스 울트라의 또 다른 멤버로 가세했고, 그로인하여 디즈니랜드 내의 미래형 테마파크 이름이 '투모로우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하지만 그러한 가설 덕분에 [투모로우랜드]는 더욱 풍성한 상상력을 관객 앞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에펠탑이 플러스 울트라의 비밀기지이고, '투모로우랜드'에 가기 위한 정류장이라는 설정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 태권V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영화를 보는 저를 빙긋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플러스 울트라와 함께 [투모로우랜드]에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설정은 바로 평행우주 이론입니다. 평행우주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주에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말고도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입니다. 물론 얼핏 들으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평행우주 이론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니 무턱대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투모로우 랜드]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었던 플러스 울트라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발견한 세계가 '투모로우랜드'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투모로우랜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니고, 다른 행성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지구인 것입니다. 프랭크(조지 클루니) 일행이 현실세계에서 '투모로우랜드'에 가는 장면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된 SF 영화는 시간이 흐르며 영화 속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아직은 아닐지 몰라도 조만간 우리는 인간도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은? 평행우주는? 지금 당장은 "현실이 될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래는 알수가 없는 법이죠. 그렇기에 저는 [투모로우랜드]의 상상력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투모로우랜드'로 가는 초대장

 

[투모로우랜드]는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 장면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스스로 제작한 제트팩을 가지고 박람회장을 찾은 어린 소년 프랭크(토마스 로빈슨)는 날지 못하는 제트팩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냐는 데이빗(휴 로리)의 말에 낙담합니다. 하지만 정체불명이 소녀 아테나(라피 캐시디)가 몰래 건네준 핀 덕분에 '투모로우랜드'에 가게 됩니다.

2015년, 플로리다의 NASA 케네디 우주센터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의 딸 케이시(브릿 로버트슨)는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우주왕복선 발사장의 철거를 막기 위해 몰래 우주센터의 담장을 넘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아버지 덕분에 겨우 풀려난 케이시. 그런데 경찰에게 건네받은 그녀의 소지품 중에는 그녀의 것이 아닌 정체불명의 핀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T자가 새겨진 핀은 '투모로우랜드'로 가는 티켓입니다. 그리고 아테나는 '투모로우랜드'에 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초대하는 임무를 지닌 소녀입니다. 아테나는 수 많은 사람들을 '투모로우랜드'로 초대했지만 [투모로우랜드]에 나오는 것은 프랭크와 케이시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꿈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프랭크는 "그런 고철 덩어리를 왜 만드느냐?"라는 아버지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제트팩을 만듭니다. 물론 그 제트팩은 날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프랭크의 엉뚱한 패기를 데이빗은 못마땅해 했지만, 아테나는 높이 산 것입니다.

케이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주왕복선 발사장의 철거를 막겠다는 케이시의 의지는 어찌보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우주센터의 담장을 넘어 철거장비를 고장낸다고해도 새로운 철거장비를 가져오면 될 일입니다. 케이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발사장의 철거는 조금 늦춰질뿐, 백지화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프랭크가 그러했듯이 케이시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프랭크와 케이시는 엉뚱한 문제아에 불과합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날지도 못하는 제트팩을 만들겠다면 시간을 보내는 프랭크와 발사장의 철거를 막겠다며 공공시설을 파손시키는 케이시. 하지만 아테나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투모로우랜드'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테나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브래드 버드 감독의 메시지와도 같습니다. 어른의 입장으로 프랭크와 케이시를 보지 말고, 순수한 아이의 입장에서 그들을 봐달라는...

 

 

왜 아무나 '투모로우랜드'에 가면 안될까?

 

하지만 순수한 아이의 입장에서 [투모로우랜드]를 보다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프랭크를 '투모로우랜드'에서 쫓아내고, 더이상 사람들이 '투모로우랜드'에 올 수 없도록한 데이빗의 조치입니다. 이렇게 멋지고 좋은 곳이 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투모로우랜드'에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면 될텐데 왜 데이빗은 그것을 막으려 할까요?

'투모로우랜드'에는 빛보다 빠른 입자라고 하는 타키온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이 예측에 의하면 인류는 자연재해, 금융위기, 시위와 폭동, 그리고 전쟁등으로 인하여 점점 멸망의 길을 걷고 있으며 조만간 실제로 멸망에 처할 것이라고 합니다. 케이시는 이러한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하지만 데이빗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미 여러차례 인류에게 경고를 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오락거리로 재생산할 뿐, 멸망을 막으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멸명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가 미래가 현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데이빗은 말합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대로가면 지구는 병들고 결국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SF, 재난영화를 통해 그러한 우리의 미래를 오락거리로 즐기기만 할 뿐입니다.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문제는 당장 닥친 오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케이시는 "그러면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사람들을 '투모로우랜드'로 데려오면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데이빗은 만약 그렇게 했다간 '투모로우랜드'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재해로 병들게 될것이라 말합니다. 이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 모두가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많은 우리는 좀 더 많이 차지하려 하고 그것이 각종 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모로우랜드]는 관객에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물론 [투모로우랜드]를 본다고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지구를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가와 평화주의자가 될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투모로우랜드'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왜 그곳에 가면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깨닫고 반성하게 만듭니다.

결국 '투모로우랜드'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세계입니다. 어쩌면 '투모로우랜드'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나 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준비된 자만을 위한 공간인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스스로가 '투모로우랜드'에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투모로우랜드]를 보고나서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투모로우랜드]는 성공한 영화가 아닐까요?

 

모두가 유토피아를 원한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

나는 과연 유토피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

나는 과연 현실이라는 핑계를 대며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나?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동안 내 자신을 뒤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