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홈] -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지구 침략자

쭈니-1 2015. 5. 28. 15:26

 

 

감독 : 팀 존슨

더빙 : 짐 파슨스, 리한나, 제니퍼 로페즈, 스티브 마틴

개봉 : 2015년 5월 21일

관람 : 2015년 5월 23일

등급 : 전체 관람가

 

 

가끔 나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고 싶다.

 

지난 금요일, 저희 회사에서 20년을 근무한 A직원의 환송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환송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기엔 조금은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냥 A직원과 친했던 몇몇 직원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술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A직원과 가까운 사이였기에 열심히 아끼고 모아둔 용돈의 거의 대부분을 술값에 보탰습니다.

20년이나 저희 회사에서 일했지만 이렇게 환송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A직원이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까닭은 금전적인 문제때문입니다. A직원의 아버지가 건설사업을 하며 A직원 이름으로 사채를 끌어다썼고, 그로인하여 회사로 하루에도 몇차례나 사채업자의 독촉전화를 받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A직원은 스스로 퇴사를 결심한 것입니다. 

회사의 월급은 사채이자로 거의 빠져 나가고,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 급전이 필요한 A직원은 퇴직금이 필요했나봅니다. 그러한 A직원의 금전적 사정을 감안하여 공식적인 환송회 대신 환송회에 들어갈 비용을 현금으로 A직원에게 전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술자리 한번 안가지고 A직원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워 이렇게 친한 직원들끼리 돈을 모아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것입니다.

 

A직원의 사정을 듣고 있으면 정말 한숨만이 나옵니다. 세상 사는 것이 참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저희 회사에 입사해서 청춘을 바처 일했던 곳. 하지만 퇴사를 결정한 A직원의 표정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사채문제 때문에 회사에서 짤릴까봐 전전긍긍했던 그는 막상 사직서를 제출하고 새출발을 결심하고나니 홀가분하다고 말합니다.

금요일 저녁의 술자리는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졌고,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돌아온 저는 씁쓸한 마음을 움켜잡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숙취로 인하여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제게 해맑은 얼굴로 웅이는 놀아달라며 매달립니다. 그러고보니 그날은 웅이와 [홈]을 보러 극장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습니다. 좀 더 자고 싶지만 웅이와의 약속을 깰 수가 없어서 쓰린 속을 달래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웅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전날밤 A직원의 고달픈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A직원도 어렸을 적에는 아무런 걱정없이 저렇게 해맑게 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는 A직원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웅이도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고, 입시전쟁에 뛰어들며 삶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할텐데, 잠시만이라도 웅이의 해맑은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지구 침략자

 

[홈]은 외계종족인 부브가 지구를 침략하면서 시작됩니다. 외계종족의 지구침략. 사실 SF 영화에서 많이 써먹는 흔한 소재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만간 속편이 개봉된다는 [인디펜던스 데이]입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한결같습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과학지식을 가진 외계종족이 지구를 침략하고, 인류는 위기를 맞이하지만 서로 힘을 합쳐 외계종족을 무찌른다는 것이 대부분의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홈]은 어떨까요? 이런 류의 영화에서 대부분의 외계종족은 흉측한 외모를 과시합니다. 이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종족에 대한 관객의 공포심을 증폭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홈]은 이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선택합니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종족 부브는 흉측하기 보다는 귀엽습니다. 그들이 지구를 침략하는 방법도 과격한 전쟁에 의한 것이 아닌, 흥겨운 음악과 함께 삶에 지친 인간을 놀이동산 같은 곳으로 휴가를 보내주는 것처럼 처리됩니다.

물론 저와 같은 어른 관객들은 잘 압니다. [홈]의 설정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만약 실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부브와 인간의 전쟁으로 지구를 황폐화되었을 것이며, 강제이주를 당한 인간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순진한 어린이 관객들에겐 [홈]의 설정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유쾌하게 영화를 즐길 뿐입니다.

 

지구를 침략한 부브종족이 귀여워야 하는 이유는 [홈]의 주인공이 부브종족의 사고뭉치 오(짐 파슨스)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다른 부브들과는 달리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고, 함께 파티를 하며 놀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오의 개성은 결국 말썽을 일으키는데, 파티초대 메일이 부브의 천적인 고그종족에게 배달된 것입니다.

부브종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죄로 인하여 쫓기는 신세가 된 오. 그러던 와중에 인간소녀인 팁(리한나)과 만나게 됩니다. 부브종족의 지구침략으로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된 팁. 그녀는 엄마를 찾아야 하고,  오는 외진 곳으로 도망을 가야 합니다. 결국 오와 팁은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고, 불편한 동행을 시작합니다.

[홈]의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이후부터 뻔합니다. 오와 팁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결국 우정을 쌓게 될 것이고, 오를 뒤쫓는 부브종족과, 오의 실수로 지구에 오게된 고그종족의 등장으로 둘의 관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팁이 엄마인 루시(제니퍼 로페즈)와 만나게 되면서 마지막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을 맺을 것입니다.

 

 

동심을 대변하는 하늘을 나는 슬러시

 

자! 삶에 찌들은 어른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홈]을 본다면 [홈]은 귀여운 외계종족 부브의 인형을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큰 장점은 없어 보입니다. 설정은 너무 낙천적이고, 스토리 전개는 너무 뻔합니다. 다른 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고뭉치 오와  애어른 팁이라는 캐릭터도 그다지 새롭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깐깐한 어른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동심 가득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홈]을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외계종족의 지구침략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서 긴장감을 느낄만한 그 어떤 요소도 찾기 힘듭니다.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편안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린이 관객 입장에서는 1시간 30분 동안 하하호호 신나게 웃다가 극장밖을 나설 수 있습니다.

[홈]의 유일한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캡틴 스멕(스티브 마틴)은 드림웍스의 히트작 [마다가스카]에서 꼬리여우원숭이 왕인 줄리안(사챠 바론 코헨)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다시말해 악당 캡틴 스멕마저 귀엽다는 것이죠. 영화 후반 고그종족의 비밀까지 벗겨지고나면 [홈]은 '귀여워'를 연발하면서 영화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됩니다.

 

[홈]의 이러한 동심 가득한 귀여운 재미를 대변하는 것은 오와 팁이 함께 타고다니는 하늘을 날으는 자동차 슬러시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슬러시카는 슬러시를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입니다. 슬러시는 특히 여름이면 어린이들을 유혹하는 군것질거리입니다. [홈]을 보면서 웅이 또한 '슬러시 먹고 싶다.'를 연발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말도 안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슬러시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니...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어린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만 있다면 슬러시가 아닌, 아이스크림, 초콜릿으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어도 됩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며, 삶에 찌든 어른인 저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전날 씁쓸했던 술자리의 기억을 [홈]을 보는 동안만큼은 싹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외계종족이 지구를 침략하고, 종족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기고, 엄마와 생이별을 했어도 별것 아니라며 웃을 수 있는 [홈]의 주인공들. 현실도 저렇게 낙천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의 깨달음

 

[홈]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항상 그러하듯 교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담겨져 있는 교훈은 오의 깨달음입니다.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부브종족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족간의 사랑은 이해가 되지 않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는 팁과 함께 루시를 찾아 모험을 하며 가족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남에게 무엇인가를 빼앗는 행위에서 '착한 빼앗음'은 없다라는 것도 [홈]이 주는 교훈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과학기술이 발달한 부브종족이 인간에게 지구를 빼앗는 것이나, 문명이 발전했던 유럽인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 다른 대륙을 침략하는 것이나, 다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을 침략하며 그들의 미개한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폈지만(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부브종족이 인간을 강제이주시켜 놓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가 자신의 종족이 '빼앗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빼앗은 것을 인간과 고그종족에게 되돌려주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렇게 [홈]은 오의 깨달음으로 어린이 관객을 위한 교훈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인 웅이와 함께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고 싶어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웅이도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유치하다며 안볼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때 난 누구와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까?

아직 내겐 아무런 걱정이 없는 해맑은 동심의 세계가 간절하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