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지 밀러
주연 : 톰 하디, 샤를리즈 테른, 니콜라스 홀트, 휴 키스-번
개봉 : 2015년 5월 14일
관람 : 2015년 5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어린 시절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드맥스]의 추억
한동안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어서 극장 나들이를 못했더니 온 몸이 근질거리네요. 저 역시 열광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장악해버린 극장가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제가 극장으로 당장 달려가 볼만한 새로운 개봉작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기다렸던 영화를 만났습니다. 그것도 한편이 아닌 두편이나...
그 중 한편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이고, 또다른 한편은 [악의 연대기]입니다. 당연히 저는 지체하지 않고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개봉 당일 보고 왔고, [악의 연대기]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본 다음날 곧바로 관람을 했답니다. 이로써 5월 내내 저를 괴롭혔던 영화에 대한 갈증이 어느정도는 해소되었습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매드맥스]의 4편입니다. 2편이 1981년에, 3편이 1985년에 만들어졌으니 3편 이후 무려 30년만에 4편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 사이 [매드맥스]로 데뷔한 배우 멜 깁슨은 [리쎌웨폰] 시리즈를 거치면서 세계적은 스타가 되었고, 조지 밀러 감독은 [꼬마돼지 베이브], [로렌조 오일], [해피 피트] 등으로 세계적인 명감독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만큼 3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셈입니다.
사실 제게 [매드맥스] 시리즈에 대한 추억은 많지않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가 국내 개봉했던 1980년대 초반의 저는 고작 10살 안팎의 나이였고, [매드맥스]와 같은 영화보다는 만화영화에 더 열광을 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TV에서 방영해주던 [매드맥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언제였는지, 제가 본 것이 몇편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말이죠.
이렇게 [매드맥스] 시리즈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게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후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황량한 사막에서의 자동차 추격전, 그리고 가죽 캐킷을 입은 반항적인 캐릭터 맥스(멜 깁슨)의 강렬함까지... 그 중에서 제가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장면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자동차를 자랑하던 부잣집 도련님이 오토바이 폭주족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린 나이였기에 TV에서 흔치 않았던 그러한 폭행 장면이 제겐 조금은 충격적이었나봅니다.
암튼 이렇게 [매드맥스] 시리즈에 대한 추억은 어렴풋하게만 남아 있지만, 30년만에 부활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대한 기대만큼은 제가 좋아하던 다른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와 비교해서도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봉당일 부랴부랴 보러간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보며, 그러한 제 기대감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디스토피아의 지옥도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핵전쟁으로 인류 문화가 멸망한 22세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는 30년 전에는 충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흔하디 흔한 설정에 불과합니다. 조지 밀러 감독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조지 밀러 감독은 얼마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독차지한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번)을 내세워 좀더 강화된 디스토피아의 지옥도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의 지옥도는 어떤 풍경일까요? 인류의 문명은 원시시대를 연상하게 합니다. 단지 원시시대와 다른 점은 자동차와 총을 비롯한 무기가 있다는 점 뿐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인 물과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는 기름, 그리고 무기가 권력의 상징이 됩니다.
임모탄은 이 모든 것을 장악한 독재자입니다. 그는 황폐화된 지구의 환경 탓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난 신인류들을 자신의 부하들로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는데, 건장한 남자들은 기형적인 신인류에게 피를 수혈해주는 피주머니로, 젊은 여인들은 임모탄의 아기를 낳는 존재들로 전락합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맥스(톰 하디)는 임모탄에게 붙잡혀 피주머니 노예 신세가 됩니다. 그가 신인류 눅스(니콜라스 홀트)의 피주머니가 되어 차에 매달리는 모습은 끔찍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상황은 비단 맥스 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여성들은 젖을 짜는 젖소 신세로 전락하고, 어떤 여성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 사육될 뿐입니다. 임모탄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신인류들은 임모탄을 위한 총알받이일 뿐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독재자를 위한 가축이나 소모품으로 전락한 시대. 이것이 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의 지옥도 풍경입니다. 분명 30년전의 [매드백스]보다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지옥도인 셈입니다.
영화는 임모탄의 폭정에 반발하여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 임모탄에게 도망치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른)와 눅스의 피주머니 신세였지만 탈출하여 퓨리오사를 도와 임모탄과 맞서는 맥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상당히 간단합니다. 도망자인 맥스와 퓨리오사, 그들을 뒤쫓는 임모탄 일당의 단순한 대결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막을 달리는 온갖 다양한 모습의 자동차 액션으로 볼거리를 완성해 냈고, 맥스, 퓨리오사, 눅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2시간 동안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눅스가 임모탄을 신이라고 믿는 이유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액션에 대한 찬사는 관두겠습니다. 굳이 제가 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저는 결코 매력적인 이 영화 속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해 보이는 액션 영화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캐릭터만큼은 굉장히 복잡하고 매력적입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맥스가 가족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솔직히 맥스의 트라우마는 다른 캐릭터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단순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요즘 영웅들은 웬만하면 트라우마 하나쯤은 가지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저는 맥스보다 눅스라는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눅스는 임모탄의 군대인 워보이 중 하나입니다. 대개 이런 캐릭터들은 별 개성없는 소모성 악당 캐릭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눅스도 처음엔 그렇게 보였습니다. 임모탄을 위해 퓨리오사를 잡겠다며 굳이 추격에 끼어든 그는 임모탄이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에 눅스는 임모탄과 맞서 싸우는 퓨리오사의 편이 됩니다. 그 사이 눅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임모탄에 대한 눅스의 믿음은 마치 우리 사회의 종교와도 같습니다. 인류 문화가 태동한 이래 종교는 인류 문화와 뗄래야 뗄수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게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포식자의 공격, 자연재해, 죽음에 대한 공포 등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인간은 전지전능한 존재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눅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인류는 황폐화된 지구의 환경 때문에 기형적인 육체로 태어났고, 눅스 역시 태어날 때부터 암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암으로 인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눅스. 그러한 신인류의 선천적인 기형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 것이 임모탄의 신격화입니다. 임모탄은 신인류에게 자신이 천국으로 인도하겠다는 헛된 믿음을 심어줬고, 그러한 믿음을 통해 그들을 자신의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믿음은 눅스의 배신으로 이어집니다. 임모탄을 위해 용맹하게 죽어서 천국으로 가겠다는 눅스의 희망은 그의 임무 실패로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그가 퓨리오사의 거대한 트럭에 숨어 아기처럼 울고 있었던 것은 사라진 희망에 대한 절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눅스가 다시 일어서 임모탄에 맞서 싸운 것은 새로운 희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희망은 어머니의 존재로 이어집니다.
세상을 망가뜨린 아버지와 세상을 재건할 어머니의 싸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눅스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은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임모탈 군대에서 사령관을 맡을 정도로 임모탈의 총애하던 부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임모탈의 아내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땅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퓨리오사를 비롯하여 임모탈의 아내들까지 도망자들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여성은 남성보다 힘이 약합니다. 그렇기에 힘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여성은 남성의 노리개 내지는 나약한 희생자 밖에 되지 못합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임모탈이라는 독재자의 세계에서 여성은 그저 임모탈의 아기를 낳는 존재일 뿐입니다. 퓨리오사는 임모탈 군대의 유일한 여성이지만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임모탈에게 납치된 희생자입니다.
퓨리오사는 임모탈의 아내들과 어머니의 땅으로 향합니다. 사막인 지구에서 아직 녹색의 생명체가 남아 있는 곳, 퓨리오사는 맥스에게 어머니의 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파괴적인 아버지 임모탈과 새로운 생명, 희망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싸움이 됩니다. 맥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하지만 그가 이 싸움의 주역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퓨리오사가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탈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임모탈이 아내들의 거처에 달려갑니다. 그곳에는 임모탈과 같은 남성 독재자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음을 질책하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퓨리오사가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의 땅에 도착하자 그곳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성 무사족 아마조네스 전사들처럼 여성들로만 이뤄졌습니다.
임모탈은 무기, 자동차 등에 집착하고, 어머니의 땅의 여성들은 씨앗을 소중히합니다. 결국 영화의 후반부는 임모탈을 중심으로한 남성과 퓨리오사를 중심으로한 여성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과 여의 대결 구도는 남성 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액션 영화에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만의 독특한 개성이 됩니다.
2시간 동안 흙먼지 휘날리며 강렬한 액션을 보고나면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약간의 희망을 관객에게 안겨줍니다. 과연 이 척박한 땅에서 퓨리오사가 지켜낸 씨앗들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시도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마지막 부분 퓨리오사와 맥스의 눈빛 교환이 특별해 보였습니다. 맥스는 시타델을 떠납니다. 다른 곳에서 맥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맥스는 이 디스토피아의 지옥도의 주역은 아니지만, 퓨리오사의 씨앗처럼 가느다란 희망의 존재가 됩니다. 맥스의 다음 모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여성과 남성의 대결로만 보는 것 또한 실수이다.
분명한 것은 희망과 파괴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파괴만이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의 끔찍한 지옥도에서의 가느다란 희망.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가 단순한 액션영화를 넘어 여운을 안겨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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