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토마스 맥카시
주연 : 아담 샌들러, 스티브 부세미, 더스틴 호프만
개봉 : 2015년 4월 8일
관람 : 2015년 5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웅이도 궁금해하던 이 영화의 정체
한달에 한번 정도는 웅이와 영화의 개봉 일정과 예고편을 보며 함께 봐야할 영화를 정하고는 합니다. 웅이와 함께 보는 영화는 대부분 12세 관람가 등급의 판타지, SF,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 영화를 웅이와 함께 봐도 될지 안될지 분간이 안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직 상영등급이 확정되지 않은 영화들과 예고편만으로는 영화의 정체를 도저히 알길이 없는 영화들입니다.
지난 4월 8일 개봉한 [코블러]가 그러했습니다. 판타지 코미디라는 이 영화의 장르는 분명 웅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을 들게 했지만, 구두를 신으면 구두주인으로 모습이 변한다는 영화의 내용은 그러한 설정만으로 어떤 판타지 코미디를 만들 수 있을런지 제 단순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코블러]의 상영등급이 15세 관람가로 정해지면서 웅이와의 극장 관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블러]가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도 제 고민은 계속되었고, 결국 저는 제가 먼저 [코블러]를 본 후, 웅이가 볼만한 영화인지 판단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코블러]를 보고나니 웅이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세 관람가 등급이 맞나?
제가 [코블러]를 본 후 웅이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지만 영화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꽤 쎈 편입니다. 구두수선공인 맥스(아담 샌들러)가 이웃집 훈남의 구두를 신고 그의 모습으로 변한 후, 훈남의 집에 들어가 그의 애인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는 장면은 주요 부위를 살짝 가리긴 했지만 15세 관람가 등급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정적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여러 장면 나오고, 폭력과 욕설 등 아직은 열세살에 불과한 웅이에게 보여줘서는 안될 장면들이 [코블러]엔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갈팡질팡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상해진다는 점입니다.
[코블러]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웅이에게 [코블러]의 내용을 압축해서 이야기로 들려줬습니다. 제 이야기가 끝난 후의 웅이 반응은... '이게 뭐야? 끝이야?'라는 표정입니다. 하긴 영화를 본 저도 허무했는데, 짧게 압축한 제 이야기를 들은 웅이가 재미있을리가 없죠.
구두주인으로 변한다고 인생까지 달라질까?
[코블러]는 신발 사이즈만 맞다면 신발을 신는 순간 자신이 그 신발 주인공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마법의 구두수선 기계를 대대손손 물러 받은 구두수선공 맥스의 이야기입니다. 마법의 구두수선 기계를 발견하기 전까지 맥스의 인생은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하루가 똑같았고, 연애조차 제대로 해 본적이 없습니다.
집을 나간 아버지 아브라함(더스틴 호프만)에 대한 원망과 그러한 아버지를 하염없이 가디리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매일을 버텨나가는 그에게 유일한 친구라면 이웃 이발사인 지미(스티브 부세미) 뿐입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부터 발생됩니다.
맥스의 능력은 신발 주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뿐입니다. 완벽하게 그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보니 막상 모습이 변한다고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변한 모습을 신발 주인에게 들키는 경우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맥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 뿐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으려 했던 것이 문제.
물론 구두주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이 특별할 때도 있습니다. 집나간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서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이젠 늙어버린 더스틴 호프만의 기품있는 연기까지 더해져 [코블러]에서 유일하게 코 끝이 찡해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맥스가 루들로(메소드 맨)의 구두를 신고 그의 집에 숨어 들어가 값비싼 시계를 훔치려하는 장면에서부터 [코블러]는 이상한 범죄 스릴러 영화가 되더니 재개발업자인 일레인(엘렌 바킨)의 등장으로 영화는 더욱 이상해져버립니다. 맥스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마을의 구건물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빌딩을 지으려는 일레인의 계획을 막지만 맥스의 계획이 워낙 뻔해서 역시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코블러]는 초반에는 판타지 코미디로 시작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범죄 코미디가 되어 버립니다. 구두주인으로 변한다는 특별하지 않은 능력을 특별하게 꾸미려하다보니 루들로, 일레인과 같은 악역이 필요했고, 결국 영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결말 공개)
[코블러]의 영화 마지막 부분의 반전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사실 지미가 아브라함이었다는 설정은 꽤 신선한 반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모습을 바꾸고 아내와 아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내 능력으로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어서라고 설명하지만 도대체 왜 위험해진다는 것인지는 결코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설명하지 않는 것이 아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구두주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단순하게 구두주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으로 그다지 특별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위험해질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아브라함의 변명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위한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악수일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아브라함의 지하실 장면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연상시켰습니다. 영화의 속편까지 은근히 암시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지하실에 진열해놓은 유명인사들의 구두만으로 [코블러]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코블러]에는 그럴만한 '매너'가 없기 때문이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던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영화 자체도 끝까지 매너를 지켰지만, [코블러]는 우왕좌왕하다가 이상하게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아담 샌들러라는 스타를 캐스팅했지만 북미에서는 개봉조차 못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그 이유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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