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테리 길리엄
주연 : 크리스토퍼 왈츠, 멜라니 티에리, 맷 데이먼, 틸다 스윈튼
개봉 : 2014년 8월 14일
관람 : 2015년 1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극단적 SF의 장인 테리 길리엄 감독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일단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는 [피셔 킹], [12 몽키스],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과 같은 잘 빠진 상업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몬티 파이튼 시리즈], [브라질](국내 개봉명은 [여인의 음모]), [바론의 대모험] 등 독특한 SF 영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의 성향은 2009년 개봉한 히스 레저의 유작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히스 레저를 중심으로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파렐 등 초호화 캐스팅이 돋보이는 판타지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하지만 보통의 판타지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분들에겐 큰 당혹감을 안겨줬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 전 백수시절, [12 몽키스]를 너무나도 감명깊게 본 이후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예전 영화들을 찾아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충분히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에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는 그의 독특한 영화에 내성이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사색적 SF이다.
작년 여름에 개봉한 [제로법칙의 비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크리스토퍼 왈츠가 주연을 맡았고, 맷 데이먼, 틸다 스윈튼, 벤 위쇼, 멜라니 티에리 등 조연 배우도 빵빵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연산 시스템 회사인 맨컴에서 일하는 컴퓨터 천재 코언 레스(크리스토퍼 왈츠)가 맨컴 회장(맷 데이먼)에게 미스터리한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제안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기엔 꽤 재미있는 SF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감독이 테리 길리엄임을... 실제 저처럼 SF영화를 좋아하는 구피와 [제로법칙의 비밀]을 함께 봤는데, 영화 중간중간 꾸벅꾸벅 졸던 구피는 결국 영화가 끝나고나서 "도대체 이건 무슨 영화야?"라며 제게 묻더군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의문일 것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를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영화 시작부터 [제로법칙의 비밀]이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봤기에 무방비 상태로 당한 구피보다는 이 영화를 조금 더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그에게 인생의 허무함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주다.
[제로법칙의 비밀]에서 중요한 것은 코언이 집착하는 특별한 전화와 맨컴 회장이 집착하는 제로법칙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는 서로 상반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았지만, 실수로 전화를 끊어버린 코언은 그 전화가 인생의 의미를 알려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맨컴 회장이 집착하는 제로법칙 포로젝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무(無)로 돌아간다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특별한 전화를 받기 위해 재택 근무를 해야하는 코언과, 코언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서 아무도 완성하지 못한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완성하려한 맨컴 회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입니다. 하지만 제로법칙 프로젝트는 코언에게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결국 맨컴 회장은 코언을 콘트롤하기 위해 매력적인 여성 베인슬리(멜라 티에리)와 자신의 천재 아들을 코언의 집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인생의 허무함을 밝혀야하는 코언은 오히려 맨컴 회장이 보내준 사람들로 인하여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베인슬리와의 사랑과 맨컴 회장의 아들과의 우정을 통해 말입니다.
통제된 미래 사회, 단절된 인간 관계
결국 [제로법칙의 비밀]은 코언이 인생의 허무함을 증명하는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오히려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맨컴 회장의 감시 카메라를 전부 부숴버리고 베인슬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가상현실 속의 해변가로 가는 장면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코언은 특별한 전화가 자신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특별한 전화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자신의 집에 가둡니다. 코언의 집이 큰 화재가 났던 수도원이라는 점은 코언의 상황에 교묘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누군가가 전화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사람들, 그리고 직원들을 감시하는 맨컴 회장 등, [브라질]에서부터 이어져온 테리 길리엄 감독의 미래 사회의 풍경이 [제로법칙의 비밀]에는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영화가 가장 테리 길리엄 감독다운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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