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지미 헤이워드
더빙 : 오웬 윌슨(남도형), 우디 해럴슨(최한), 에이미 포엘러(김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
웅이에게 위대한 고전의 향취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찰스 디킨스의 동명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한 [크리스마스 캐롤]을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가난한 밥(게리 올드만)이 크리스마스 이브날 칠면조를 살 돈이 없어서 대신 거위를 온 가족과 함께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혼령과 함께 여행을 한 스쿠루지(짐 캐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커다란 칠면조 고기를 사서 밥의 집에 보냅니다. 칠면조 고기에 익숙하지 않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참 낯선 장면이죠.
이렇게 [크리스마스 캐롤]을 보고나니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터키]입니다. [터키]는 추수감사절 요리 메뉴에서 칠면조 고기를 없애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최초의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시절로 여행을 떠나는 괴짜 칠면조 레지(오웬 윌슨)와 제이크(우디 해럴슨)의 모험을 담은 어린이 애니메이션입니다.
북미에서는 2013년 11월에 개봉해서 5천5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7월에 개봉해서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었습니다. 한마디로 흥행작은 아닌 셈이죠. 그래도 [크리스마스 캐롤]을 본 이후 어쩌다가 서양에서는 명절에 칠면조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지 그 시초가 궁금해져서 일요일 오후 웅이와 함께 [터키]를 봤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칠면조 레지, 제이크
[터키]는 칠면조 농장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칠면조와는 다른 개성을 가진 레지의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레지는 우연히 사람들이 칠면조 고기를 먹기 위해 칠면조를 사육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다른 칠면조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왕따를 시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칠면조 살리기 행사에 뽑힌 레지는 백악관에서 편안하게 먹고 놀면서 팔자가 핍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괴짜 칠면조 제이크가 납치한 것이죠. 과거로 가서 모든 칠면조 요리를 없애야 한다며...
일단 시작은 평범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졌기에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에서 흔히 써먹는 캐릭터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이크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제 궁금증을 자극시킵니다. [치킨 런], [꼬마 돼지 베이브], [샬롯의 거미줄]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는 달리 [터키]는 타임머신이라는 공상과학적 소재를 끌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애초에 [터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추수감사절의 유래인 만큼 레지와 제이크가 우여곡절 끝에 추수감사절이 처음 열린 1621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저는 영화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
실제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621년 인디언들과 청교도 사이에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이후 청교도들은 인디언들로부터 옥수수와 밀 경작법등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청교도들이 양식이 부족할 때 인디언들은 짐승들을 잡아다주기도 했는데, 가을이 되어 청교도들이 심은 옥수수와 보리, 밀 등이 풍작을 이루자 이를 기억하기 위해 청교도 지도자 브래드포드는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드를 초청하여 추수감사절 행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청교도들은 마사소이드 추장과 인디언들을 대접하기 위해 들새를 잡으러 나갔는데 그때 많이 잡힌 것이 바로 칠면조라고 하네요. 그 이유로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요리를 먹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한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터키]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인디언과의 추수감사절 행사를 위해 음식을 창고에 비축하자, 청교도들이 배고프다며 항의를 하고, 이에 청교도 지도자는 사냥꾼들을 기용해서 청교도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짐승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결국 레지와 제이크는 목표는 하나로 모아집니다. 사냥꾼들이 칠면조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 칠면조를 잡지 못하면 추수 감사절에 다른 음식을 먹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칠면조의 수난은 끝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터키]는 실제 역사와 영화 속의 가상의 역사를 절묘하게 뒤섞어 놓음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완성합니다.
칠면조의 모습에서 보는 인간의 역사
실제 역사와 가상의 역사를 절묘하게 뒤섞은 [터키]는 칠면조의 모습에서 인간의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색다른 재미도 연출합니다. 제이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칠면조 공장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수용소처럼 보입니다. 엄마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어린 제이크. 그의 그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불타는 사명감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1621년 칠면조 마을의 풍경은 인디언의 상황을 보는 듯했습니다. 실제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은 청교도의 침략으로 고향을 잃고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내쫓기다시피 했습니다. 숲에서 자유롭게 살던 칠면조들이 사냥꾼의 추격을 피해 감옥처럼 여겨지던 지하에 숨어 사는 장면은 인디언의 현 상황을 보는 듯 했습니다.
타임머신이라는 소재 덕분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데 엮을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던 [터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 영화는 억지스러운 설정을 풀어넣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의 음식은 아직 칠면조이다.
[터키]는 추수감사절 음식 메뉴에서 칠면조 요리를 없애기 위한 칠면조들의 모험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 설정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아직 여전히 서양의 추수감사절 요리는 칠면조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물론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모든 설정이 논리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어이없게 느껴지지는 않아야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해야하죠. 그러나 [터키]는 그러한 수준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추수감사절 요리로 칠면조 대신 레지가 내놓은 요리의 정체부터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과연 이 영화를 본 후 '그래,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대신 이걸 먹자.'라는 식의 유쾌한 상상이 허용이 안된다는 점에서 [터키]의 마지막 장면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아쉬운 결말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양에서는 여전히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먹는 이상 [터키]의 결말은 어색해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터키]는 그저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가볍게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밖에 없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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