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재용
주연 : 강동원, 송혜교, 조성목
개봉 : 2014년 9월 3일
관람 : 2014년 9월 10일
등급 : 12세 관람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 웅이와 함께 이 영화를 본 이유
5일 간의 추석 연휴 마지막날. 사장님의 땡깡으로 대체 휴무없이 9월 10일 출근을 해야 했던 구피를 늦잠 자느라 배웅조차 못한 저와 웅이는 결국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잠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저는 전날 1년만에 중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 술마시고, 당구치며 노느라 늦게 잤고, 웅이는 그런 저를 기다리느라 늦게 자는 바람에 아침엔 코피마저 흘린 상황. 이렇게 저와 웅이의 컨디션이 최악이니 마지막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두근두근 내 인생]이었습니다. 솔직히 추석 연휴동안 웅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는 없었습니다. 그마나 [두근두근 내 인생]이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라서 웅이와 볼 수 있는 영화였지만, 판타지, SF, 애니메이션 위주로 영화를 보아온 웅이에게 잔잔한 드라마인 [두근두근 내 인생]이 어떻게 받아들여질런지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에게 항상 즐겁고 신나는 영화만 보여줬잖아. 하지만 영화에는 무서운 영화도 있고, 슬픈 영화도 있는거야. 영화란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니까. 내가 너에게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여주는 이유는 이렇게 슬픈 인생도 있고, 이렇게 슬픈 영화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러 가며 웅이에게 제가 했던 말입니다.
드디어 [두근두근 내 인생]이 시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저는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슬픈 영화를 본 웅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을 계속 뒤척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영화는 어땠어?"라며 웅이에게 물었지만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역시 아무래도 웅이에게 아직 슬픈 영화는 무리였던 듯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와 단둘이 외식도 하고, 아이스크림 와플도 먹고, 교보문고에 가서 책도 읽은 후에야 웅이와의 추석 연휴 마지막날 데이트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웅이에겐 지루했을 [두근두근 내 인생]을 극장까지 끌고가서 보여준 것이 미안해서 이대로 연휴 마지막날을 마무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구피가 야근하는 틈을 타서 저녁에 웅이와 함께 hoppin에서 다운로드받은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까지 보고나서야 저와 웅이의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 끝났습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구피는 제게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라고 웅이까지 끌고 극장에 갔다오다니..."라며 눈을 흘깁니다. 저는 "웅이에게 슬픈 영화를 체험시켜주고 싶어서..."라며 변명을 했지만 내 스스로 그것은 나를 위한 말도 안되는 변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 전 어쩔 수 없는 철없는 아빠인 모양입니다.
나도 대수처럼 철 없는 아빠가 되고 싶다.
제가 아빠이기 때문일까요? 저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대수(강동원)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체고의 태권도 유망주이지만, 자신이 태권도를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던 열일곱 소년 대수. 그는 자신과 동갑내기 소녀 미라(송혜교)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를 갖게 되었고, 때이르게 아빠, 엄마가 된 것입니다.
사실 지나고나니 저 역시 열일곱살땐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학교에 다녔고,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노는 것이 좋았을 뿐입니다. 제 사춘기 시절의 반항은 술을 마시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나면 내가 마치 어른이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지고는 했습니다.
아마 대수도 그랬을 것입니다. 열일곱, 분명 부모가 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하지만 대수의 옆집 할아버지인 장씨(백일섭)는 이렇게 말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몽룡과 성춘향도 그 나이때 사랑에 빠졌단다." 그렇습니다. 분명 부모가 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지만, 사랑에 빠지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나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수와 미라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온 버거운 부모의 짐을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비록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 아름(조성목)이가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지만, 대수와 미라는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고, 희망도 내려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그들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부모가 됩니다.
어쩌면 대수는 철 없는 아빠일지도 모릅니다. TV에 나오는 걸그룹을 보면 정신을 못차리고, 금식인 아름이 앞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맛나게 뜯어 먹고, 아름이 앞으로 온 선물인 게임기에 눈독을 들입니다. 그러한 대수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웃습니다.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었기에 대수는 아름이에게 근엄한 아빠이기보다는 철없는 친구처럼 행동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철없는 아빠인 대수가 대견했습니다. 열일곱 나이에 아빠가 되었던 대수입니다. 아빠가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둬야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채 아빠라는 버거운 삶을 살아야 했던 대수입니다.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에게 힘든 기색 한번 내지 않은 대수입니다. 가수의 꿈을 버리고 억척같이 살아간 미라도 대견했지만, 아름이 앞에 철없는 친구처럼 행동하는 대수도 저는 대견했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고온 날 저녁 TV 뉴스에서 생활고 때문에 가족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LA에 거주하는 한인 남성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수는 그 누구보다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해맑게 웃으며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며 나도 대수와 같은 철없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맑게 웃으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웅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수 있는 그런 철없는 아빠가...
이건 헛발 왕자와 씨발 공주의 사랑 이야기이다.
제가 대수에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두근두근 내 사랑]은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조로증에 걸린 아들을 둔 헛발왕자 대수와 씨발공주 미라의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분명 어린 나이에 늙어 죽어가는 병에 걸린 아름이도 힘들었을 테지만, 그런 아름이를 바라봐야 하는 대수와 미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재용 감독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두근두근 내 인생]은 아름이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만약 아름이의 아픔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했다면 대수나 미라, 혹은 제 3자의 시선으로 아름이를 바라보게 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열여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든살의 몸을 가진 아름이의 아픔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테니까요.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영화의 화자를 아름이로 정합니다. 아름이는 아빠, 엄마를 위한 선물로 아빠,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봐야 하는 아빠, 엄마의 아픔을 바라보며 오히려 어른스럽게 부모의 아픔을 쓰다듬어줍니다. 물론 서하의 이메일 사건으로 인하여 아름이도 잠깐동안이지만 어른스러움을 잃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다시금 아름이는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위해 젊음의 자유로움을 포기한 부모의 아픔을 어루만져줍니다.
제가 [두근두근 내 사랑]을 보며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그러한 아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뻤기 때문입니다. 대수는 말합니다. "아름아, 네가 내 아들이라는게 너무너무 좋다." 그러한 대수의 고백은 내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식을 가진 모든 이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내 자식이 아프다고 해서 다른 자식의 아버지, 어머니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근두근 내 인생]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년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시키는 그런 뻔한 영화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영화라면 영화 속에 카메오로 잠시 출연했던 소녀시대의 태티서(태연, 티파니, 서연)가 아름이를 위해 병실을 방문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런 뻔한 전개를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아름이를 통해 눈물샘을 자극시키려고 마음 먹었다면 아름이와 서하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개 되었어야 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년, 소녀의 사랑이라니 그것만큼 아주 오래된 그리고 효과적인 슬픈 소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이의 병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못된 어른들의 슬픈 자화상만이 펼쳐질 뿐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름이를 통한 슬픔보다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식을 둔 부모의 슬픔. 사람들 앞에서는 씩씩한 척, 철없는척 행동하지만 결국 혼자 흐느껴 울어야 하는 그들의 슬픔.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렇게 제게 부모가 된다는 것의 공감대를 형성시켰습니다.
열일곱, 그들의 인생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우리는 흔히 꽃다운 나이를 이팔청춘이라고 말합니다. 이팔청춘이란 열여섯살을 이야기합니다. 대수와 미라가 사랑에 빠진 나이, 그리고 아름이의 현재 나이가 바로 이팔청춘인 열여섯입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팔청춘을 보낸 그들은 열일곱이 되며 인생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대수와 미라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아름이는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열일곱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기구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열일곱에 부모가 된 대수와 미라. 게다가 그들이 낳은 아기는 삼천만명 중에서 한명이 걸린다는 조로증 환자이니 대수와 미라의 열일곱은 기구합니다. 아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당 의사에서 길어야 2개월, 짧으면 1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름이. 그의 열일곱은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기구함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열일곱이 두근거렸습니다. 비록 희귀병에 걸린 아기를 낳았지만,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기적과도 같은 경험을 한 대수와 미라는 열여섯살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그리고 용기있는 내적 성장을 겪게 됩니다. 죽기전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던 아름이는 아빠, 엄마에게 그동안 힘겹게 써내려갔던 헛발 왕자와 씨발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그렇게 열일곱이 되던 바로 그날 아름이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다시 아버지가 묻는다. 이 세상에 좋은 것도 많은데 왜 하필 내가 되고 싶으냐고. 나는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아버지로 태어나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솔직히 이 영화는 뻔한 신파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름이를 중심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시키려는 뻔한 신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부모가 된 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파인 것을요. 내 자식이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우리 부모들은 신파와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걸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서며 자꾸만 웅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웅이의 아빠라서 너무 너무 좋다.'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웅이도 그 마음을 알까요? 영화를 보고 난후 웅이가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웅이 아이스크림 와플에서 와플은 빼놓고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는 모습을 보고, 교보문고에서 마닥에 털썩 주저 앉아 우주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계속 웅이의 모습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을 웅이는 알까요? 웅이와 제가 처음 만난 내 나이 서른 하나. 그날의 두근거림을 저는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주연 여배우의 탈세 혐의로 묻히기엔
이 영화의 두근거림이 나를 눈물짓게도 하고, 나를 웃음짓게도 한다.
나도 아빠이기에 웅이로 인하여 내 인생이 얼마나 두근거렸음을
이 영화를 통해 느끼게 된다.
'영화이야기 > 201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긴 어게인] - 진정성이 담긴 음악은 우리 모두를 치유한다. (0) | 2014.09.16 |
---|---|
[루시] - 뤽 베송 감독이 원한 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좀 더 거대한 그림이었다. (0) | 2014.09.12 |
[타짜 : 신의 손] - 배신만 난무하는 깔끔하지 못한 복수극 (0) | 2014.09.05 |
[닌자 터틀] - 24년만에 만끽하는 돌연변이 거북이의 유쾌하고 짜릿한 액션. (0) | 2014.09.01 |
[인투 더 스톰] - 재난 영화로는 실망, 오락 영화로는 만족. (0) | 2014.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