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타짜 : 신의 손] - 배신만 난무하는 깔끔하지 못한 복수극

쭈니-1 2014. 9. 5. 13:07

 

 

감독 : 강형철

주연 : 최승현, 신세경, 곽도원, 아하늬, 유해진, 김윤석

개봉 : 2014년 9월 3일

관람 : 2014년 9월 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8년만에 나온 속편

 

2006년 10월 8일, 추석연휴 마지막날 [타짜]를 봤습니다. 솔직히 저는 [타짜]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은 날 개봉했던 하정우, 박시연 주연의 코미디 뮤지컬 호러영화 [구미호 가족]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석 극장가를 [타짜]가 휩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타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극장으로 향한 것입니다.

이렇게 별 기대없이 [타짜]를 보기 시작했지만, [타짜]를 보고나서는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기대했던 [구미호 가족]은 제게 실망만 가득 안겨줬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타짜]는 추석 연휴(당시 추석 연휴는 개천절이 포함된 최대 9일간의 연휴였습니다.)가 끝나간다는 아쉬움을 달랠만큼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타짜]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명품 배우들의 명품 연기 덕분입니다. 당시 주연을 맡았던 조승우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섹시미를 폭발시킨 김혜수와 명품 조연 유해진, 김상호, 그리고 조승우의 스승 역으로 중후한 멋을 보여준 백윤식의 연기는 배우의 연기력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김윤석.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타짜]에서 김윤석의 악역 카리스마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대단했습니다.

 

[타짜]는 그러한 명품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더불어 도박판에 뛰어든 고니(조승우)의 힘겨운 여정과 마지막 복수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아귀(김윤석)에게 스승인 평경장(백윤식)의 목숨과 동료인 고광렬(유해진)의 한쪽 팔목을 잃은 고니는 아귀와의 마지막 승부에서 멋진 복수를 해낸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타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박 영화의 함정이라 할 수 있는, 도박사를 멋진 영웅처럼 그려내지 않앗다는 점입니다. 비록 고니는 아귀에게 복수를 해내지만, 그는 가족의 곁으로 갈수 없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잃고 유령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타짜]가 지니고 있는 진정한 매력입니다. 도박에 목숨을 건 캐릭터들의 비극적 최후는 주인공인 고니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8년 만에 돌아온 [타짜]의 속편 [타짜 : 신의 손]은 어떨까요? 우선 [도둑들]을 통해 천만 감독으로 우뚝 선 최동훈 감독이 빠지고 [과속 스캔들], [써니]의 흥행 감독 강형철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주연배우도 대폭 교체되었는데, 유령처럼 사라진 고니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내몰수 없는 만큼 고니의 조카인 대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가. 그럼으로써 최승현, 신세경 등 젊은 배우들이 새롭게 영입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해진, 김윤석이 조연으로 출연함으로써 [타짜]의 추억을 안고 [타짜 : 신의 손]을 보는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해진 캐릭터만큼 흥미진진한 초, 중반

 

그렇다면 [타짜 : 신의 손]은 8년전 [타짜]의 영화적 재미를 다시금 제게 안겨줬을까요? 안타깝게도 대답은 'NO!'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제 대답은 8년전보다 높아진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속편 영화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전편으로 인하여 높아진 기대감은 속편의 특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히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죠.

일단 확실한 것은 [타짜 : 신의 손]은 최소한 제겐 전편으로 인하여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켜야한다는 숙제를 전혀 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타짜 : 신의 손]의 초, 중반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으니까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타짜 : 신의 손]은 전편의 주인공인 고니를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고니의 조카인 대길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전편과 비교해서 젊어졌고, 영화가 젊어진 만큼 분위기도 밝아졌습니다. 새로운 주인공인 대길을 연기한 최승현은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대길을 무리없이 연기해 냅니다.

대길의 첫사랑인 미나를 연기한 신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초반, 그녀가 당돌하게 들이대는 대길을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편과는 다른 영화적 재미를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대길이 고향에서 사고친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꼬장(이경영)을 만나고 강남 하우스에서 승승장구는 장면은 한층 밝아진 영화의 분위기를 대변해줍니다.

 

하지만 [타짜 : 신의 손]은 밝은 분위기로 영화를 끝까지 이어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타짜 : 신의 손]이 화려한 도박 세계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대길은 전편의 고니처럼 도박 세계의 비열함을 맛보게 될 것이며,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복수를 꿈꾸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중반까지 [타짜 : 신의 손]은 완벽했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채업자 장동식(곽도원)에게 붙잡혀 장기마저 적출당한 대길. 그는 만화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남이 먹다 남긴 라면 국물을 탐낼만큼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복수심만 안겨주면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는 셈입니다.

대길이 나락에 떨어진 상황에서 적절하게 등장하는 고광렬. 그는 [타짜 : 신의 손]과 [타짜]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타짜]의 평경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타짜]의 고니가 평경장의 죽음으로 복수심에 불타듯이 대길은 고광렬의 죽음 이후 스승의 복수를 위해 팀을 모읍니다. 이제 [타짜]의 고니가 아귀에게 그랬듯이, 대길은 장동식에게 마지막 복수를 완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갖춰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타짜 : 신의 한수]는 갑자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은 영화를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배신만 난무할 뿐이다.

 

[타짜 : 신의 손]은 전편과 비교해서 캐릭터가 대폭적으로 늘어난만큼 [타짜]처럼 단 한방에 복수를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낮은 단계부터 차근 차근 복수를 해내가는 것이죠. 마치 [신의 한수]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송마담(고수희)를 꺾고, 그 뒤에 서실장(오정세)과 작은마담(박효주)를 무너뜨리고, 마지막엔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장동식에게 복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송마담, 서실장, 작은마담의 복수를 마치고 본격적인 복수전인 장동식에 도달한 이후 영화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대길과 미나가 우사장(이하늬)을 이용하여 너무 쉽게 장동식의 돈을 빼앗으며 복수가 싱겁게 끝날 위기에 처한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타짜 : 신의 손]은 욕심을 부립니다.

장동식의 돈가방에 대한 배신과 배신이 난무합니다. 어차피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불나방같은 존재들이기에 돈 때문에 배신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러한 배신이 너무 난무해버리니 나중엔 실소가 터져 나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아귀를 등장시켜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완성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아귀는 누가 뭐래도 [타짜]의 흥행을 이끈 장본인입니다. [타짜 : 신의 손]이 아귀를 탐낸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미 이 영화엔 장동식이라는 아귀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악역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아귀가 이 영화에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아귀를 억지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삽입시키려니 무리수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생뚱맞게 장동식의 돈가방이 아귀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고, 돈가방을 쫓아 대길과 장동식이 아귀의 집에 모이는 것이죠. 이제 장동식은 돈가방을 되찾기 위해, 대길과 미나는 장동식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마지막 한판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한판에 아귀가 뛰어듭니다. 도대체 왜? 대길과 장동식은 모든 것을 건 마지막 승부에 뛰어들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귀는 무엇을 위해 그러한 현장에 있는 것일까요? 재미삼아? 아니면 도박판의 정의를 위해? 이렇게 어거지로 아귀를 출연시켰으니 마지막 하이라이트도 어거지가 되어 버립니다.

[타짜 : 신의 손]은 마지막 하이라이트의 재미를 위해 글래머 배우인 이하늬와 신세경의 옷을 벗깁니다. 속옷 차림으로 게임에 임하는 멤버들. 비록 장동식은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타짜]가 김혜수의 노출 마케팅으로 흥행에서 재미를 보았듯이 [타짜 : 신의 한수] 역시 신세경과 아하늬의 노출로 관객에게 눈요기를 제공하려는 흥행 전략일 뿐입니다. 그러나 김혜수의 노출은 분명 영화에서 필요한 부분이지만 [타짜 : 신의 손]의 노출은 눈요기 그 이상의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배신만 난무하는 깔끔하지 못한 복수극

 

영화의 후반 미나가 "나는 뒤태가 예뻐"라는 명언을 남기며 팬티마저 벗어버리는 장면은 [타짜 : 신의 손]이 엉성한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여배우들의 노출로 커버하려한 안타까운 몸부림이었습니다. 결국 대길의 복수는 도박에 의한 것이 아닌 엉뚱하게도 어둠 속의 총성에 의한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럴려면 뭐하러 모든 것을 건 마지막 도박 승부를 시작했는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개인적으로 [타짜 : 신의 손]은 전편과 비교해서 많은 부분이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물론 좋았던 부분도 있습니다. 최승현과 신세경을 내세운 전편과 차별화된 분위기가 좋았고, 곽도원, 이하늬, 이경영, 김인권, 오정세. 고수희, 박효주 등 전편보다 다양해진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도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이하늬와 신세경으로 김혜수의 빈자리를 메꾸게 한 선택도 좋았고, 장기 밀매까지 손을 대는 악당 장동식도 아귀의 뒤를 잇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전편과 비교한다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선 고광렬의 경우는 [타짜]처럼 웃음을 안겨주는 명품 조연 연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타짜]에서 고광렬은 고니의 동료에 불과했지만, [타짜 : 신의 손]에서는 대길의 스승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무게를 잡아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촐싹거리며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해주던 [타짜]의 고광렬이 살짝 그리워지는 순간입니다. 갑자기 대길과 미나 커플에게 질투심을 폭발시키는 이해안되는 우사장의 마지막 모습도 정마담(김혜수)의 매력을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캐릭터는 많아 졌지만 전편의 캐릭터와 비교해서 매력과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아귀를 등장시키는 무리수를 둔 영화의 후반부는 [타짜 : 신의 손]에 대한 제 실망감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영화의 복수전과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들도 저는 큰 감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인권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캐스팅했으면서도 허광철이라는 캐릭터를 저렇게 밖에 써먹지 못하나 싶더군요. 게다가 억지 해피엔딩이라니... 더러운 돈으로 시작된 새출발이 과연 새출발로써 의미가 있을까요? 

[타짜]에서 고니는 복수를 완성했지만 결코 행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도박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선 댓가를 복수를 끝낸 이후 톡톡히 치룰 것입니다. 그렇기에 [타짜]는 해피엔딩이 아니었고, 도박사를 멋있게 묘사한 영화 또한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타짜 : 신의 손]은 주인공에게 기여코 해피엔딩을 안겨주고 싶었나봅니다. 허광철에게 낯뜨거운 감동의 장면을 남발시켜서라도...

이 영화의 부제인 '신의 손'은 도박만 하면 승리하는 대박손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 질 수 없는 패를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없이 도박판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신의 손'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부제와는 달리 대길은 거액의 돈을 거머쥔 후에야 화투를 던져 버립니다. 그건 욕심입니다. 이렇듯 [타짜 : 신의 손]은 전편이 만들어 놓은 미덕을 깨버린 결말이 제겐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절대 질 수 없는 패를 쥐고 있으면서도 도박판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타짜]에겐 있지만, [타짜 : 신의 손]에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