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팀 스토리
주연 : 이안 그루퍼드, 마이클 쉬크리, 제시카 알바, 크리스 에반스
개봉 : 2005년 8월 11일
관람 : 2005년 8월 12일
이 글을 쓰기전 한가지 밝혀둘 사실은 저는 코믹스 영웅들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입니다. 코흘리개 어린시절 처음으로 보고 싶었던 영화가 바로 [슈퍼맨]이었으며, 영화를 이제 막 좋아하기 사작했던 고등학교 시절 제가 마르고 닳도록 봤던 영화는 [배트맨 1, 2]였습니다.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는 [스파이더맨 1, 2]이 상위권에 함께 자리잡고 있으며, 아직도 저는 [엑스맨 3]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코믹스의 영웅들이라고해서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트맨 포에버], [배트맨 앤 로빈]은 아직도 제 기억속에 최악의 영화로 남아 있으며, [스폰], [데어데블]처럼 겉모습만 코믹스인척 하는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캣우먼], [엘렉트라]처럼 원조 코믹스 영웅들에게 폐만 끼치는 영화들 역시 싫어하고요.
이렇듯 제가 코믹스의 영웅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현란한 특수효과와 거대한 액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코믹스의 영웅들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점차 영웅으로써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흥미진진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백만장자이지만 부모님의 죽음으로인해 언제나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헤매는 [엑스맨]의 울버린, 영웅이 가져야할 책임감에 괴로워하는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 이들은 영웅은 단지 악당을 때려잡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천하무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제게 올 여름은 꽤 특별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깊은 수렁에 빠진 '배트맨'을 수렁에서 건져냈으며, 코믹스의 또다른 영웅인 [판타스틱 4]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판타스틱 4]가 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이유는 코믹스의 영웅들이라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영웅 캐릭터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나온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엑스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 [엑스맨 3]가 개봉하려면 1년이나 기다려야하는 제게 [판타스틱 4]는 화려한 진수성찬과도 같았던 겁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컸습니다. [판타스틱 4]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진수성찬이지만 막상 맛은 싸구려 패스트푸드같은 느낌의 영화입니다. 결국 [판타스틱 4]는 [스폰]과 [데어데블]처럼 겉모습만 코믹스 영화인척 하는 정말 기분 나쁜 영화였던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 실망한데에는 영화의 캐릭터들이 너무 평면적이라는데에 있습니다. 우주에서 방사선에 노출되어 원하지도 않은 초능력을 가지게된 이들은 처음엔 자신에게 부여된 초능력에 잠시 혼란을 겪습니다. 특히 온 몸이 돌처럼 변형되어버린 벤자민(마이클 쉬크리)은 자신의 흉칙한 몰골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사람들에게도 오해를 당하며 괴로워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철없는 자니(크리스 에반스)는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하여 대중의 스타로 우뚝 서며 영웅 놀이를 즐깁니다. 이렇듯 각각 개성이 다른 4명의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얻음으로써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이 영화엔 많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영웅들의 내적인 갈등은 영화의 초반에 잠시 나올뿐 후반에 싸그리 사라져버립니다.
벤자민의 우왁스러운 모습을 본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별을 선언하는 벤자민의 아내를 보며 '정말 아주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벤자민의 아내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그런 식입니다. 떠난 아내 때문에 잠시 괴로워하다가 어느새 철없는 자니와 함께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관객을 웃기는 벤자민의 모습을 보며 초능력을 가지게된 이들의 아픔을 보려했던 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벤자민의 아픔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던 리드(이안 그루퍼드)는 수잔(제시카 알바)과의 사랑게임에 푹 빠져버리고, 처음부터 아무 생각없어보였던 자니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초지일관 철없는 행동들로 일관합니다. 이 영화의 악당인 빅터(줄리안 맥마흔) 역시 [스파이더맨]의 노만 오스본(월렘 데포)을 연상케하는 흔하디흔한 악당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줄 뿐입니다. 결국 [판타스틱 4]는 이렇듯 골치아픈 영웅의 고민 따위는 금새 벗어던지고 활기찬 영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블럭버스터로써의 영화적 재미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캐릭터들을 설명하기위해 영화의 초반은 너무 지루하게 질질 끌었고, 다른 액션 영화들과 별로 차별화되지 못한 이 영화의 특수효과와 액션씬은 언제나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채 평범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판타스틱 4]의 오락 영화로써의 최대 약점은 바로 스타의 부재입니다.
썸머시즌 블럭버스터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스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는 그로인해 관객들에게 가장 큰 볼꺼리를 빼앗았습니다.([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보더라도 스타 캐스팅이 이런 류의 오락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한 50% 이상입니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진 제시카 알바는 자신의 매력을 1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허니]라는 흔하디 흔한 청춘물에서도 그녀는 돋보였고, [씬 시티]에서 스트립댄서로 아주 잠시 출연했을때도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는데, 슈퍼 히어로가된 이 영화에선 오히려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투명인간에 보호막을 칠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옛 애인 리드와의 연애라니... 리드와의 키스씬으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수잔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액션 히어로인지 아니면 본드걸같은 눈요깃거리에 불과한지 헷갈리더군요.
제시카 알바의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은 이 영화가 오락 영화로써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 대변해줍니다. 스타를 캐스팅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캐스팅된 스타만이라도 최대한 돋보이게하는 것이 오락 영화의 감독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미덕입니다. 이 영화의 특수효과와 액션씬이 부족한 제작비때문이라고 하더라도(제작비가 얼마나 투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에 캐스팅된 유일한 스타인 제시카 알바의 매력마저도 돋보이게하지 못한 팀 스토리 감독의 무능력이 영화를 보는내내 절 짜증나게 했답니다.([씬 시티]이후로 저는 제시카 알바의 열렬팬이 되었답니다. ^^;)
어느 영화 사이트에서 [판타스틱 4]에 대해서 '코믹스 팬들에게만 '판타스틱' 할텐데?!'라는 어처구니없는 한마디를 달아놓았더군요. 코믹스 팬이라면 이 영화에 오히려 분노할텐데... 그저 코믹스팬이라면 유치한 만화책의 매니아쯤으로 판단해버리는 그들의 잣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한마디를 달게끔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의 리뷰를 읽으니 '어차피 이 영화가 어린 아이들을 타켓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들의 눈높이에서 감상해야한다'라고 쓰여있더군요. 그 분이 보기엔 코믹스 영화들은 그저 어린 아이들이 즐길만한 영화라고 여겨졌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물론 예전의 [슈퍼맨]이나,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의 경우는 분명 성인을 타켓으로한 영화라기보다는 어린 아이들이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만 이들 영화를 제외하고는 코믹스 영화들 대부분 화려한 액션 보다는 캐릭터의 심리적 갈등에 촛점을 맞췄기에 아직 어린 관객들이 충분히 웃고 즐길수 있을런지 의문이듭니다.
하지만 분명 [판타스틱 4]는 어린 아이들이 웃고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제 옆 좌석에 중학생으로 보이는(혹은 초등학생??? 요즘 아이들은 왜그리 덩치가 큰지...) 어린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내내 자기네끼리 수근거리며 너무나도 재미있게 영화를 보더군요.(그 덕분에 저는 시끄러워서 짜증이 났었습니다만...)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너무 낮은 눈높이에 어이없어하며 또한편의 망가진 코믹스 영화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분노를 삭히고 있었습니다.
[판타스틱 4]가 정말로 어린 아이들을 타켓으로 잡은 영화라면 최소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영화적인 재미를 안겨줬으니 너그러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저는 너무나도 코믹스의 영웅들을 사랑하였으며, 코믹스 영화들이 저같은 성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판타스틱 4]에 전혀 너그러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가 최소한 어린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었다고하더라도 제겐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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