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영은
주연 : 이범수, 변주연, 강성연, 손현주, 최성국
개봉 : 2005년 8월 18일
관람 : 2005년 8월 3일
이제 어느새 입추가 지나버리고 기나긴 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기세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극장가엔 여름내내 기세를 부리던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 틈새 시장을 노리는 공포 영화들보다는 [친절한 금자씨], [웰컴 투 동막골]같은 여름 극장가와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우리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휘어잡고 있네요.
다음주에 개봉할 [이대로, 죽을 순 없다]도 이러한 우리 영화의 강세에 끼어들 듯합니다. 이범수라는 코믹 연기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하는던 배우를 중심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최성국, 손현주라는 든든한 조연 배우들로 이범수의 뒤를 받치게 합니다. 오랜만에 강성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이렇듯 꽤 매력적인 캐스팅을 구축한 이 영화는 영화의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관객들을 웃기려 덤벼듭니다. 전형적인 뺀질 형사 이대로를 연기한 이범수는 역시 물만난 고기마냥 종횡무진 활약합니다. [몽정기], [안녕! 유에프오]에서 보여줬던 서민적인 코믹연기와 [오! 브라더스]에서 보여줬던 코믹 오버 연기의 중간쯤되는 지점에서 이범수는 관객의 웃음보따리를 쥐었다 놓았다 자유자재로 조정합니다.
여기에 코믹 연기라면 결코 이범수에 뒤지지않는 최성국도 웃음의 향연에 뛰어듭니다. 의협심만이 가득한, 왠지 어벙한 초보 경찰 차진철역을 맡은 그는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보여줬던 폼만 가득 잡다가 결국 망가져버리는 연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기함으로써 멜로적인 외모를 완벽히 배신하며 관객들을 웃깁니다.
이대로를 감싸주는 강종태 형사역의 손현주는 역시나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연기로 이범수의 뒤를 든든하게 받춰줬으며, 노란 가발을 쓰고 껌을 질근질근 씹는 강성연의 연기도 너무 뻔하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저는 이대로의 당돌한 딸인 현지를 연기한 아역배우 변주연의 연기가 정말 좋았답니다. 예전 아역 배우들은 왠지 모르게 어색했는데 요즘 아역 배우들은 성인 배우보다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니... 영화를 보기위해 집에 두고온 제 어린 아들을 보는 것같아 정말 귀엽더군요. ^^
이처럼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로 영화의 초반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 영화는 후반으로 흐르며 갑자기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관객들을 웃기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듯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슬픈 코미디(초반엔 웃기다가 후반엔 울리는 코미디 영화를 저는 그렇게 부릅니다.)로 급선회하기 시작한겁니다.
이 영화가 감독 데뷔작인 이영은 감독은 분명 안전한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 영화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데뷔 장르로 선택함으로써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어느정도 줄였습니다. 아무래도 적은 제작비로 많은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장르는 우리나라엔 코미디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범수와 최성국 등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을 불러모음으로써 전형적인 신인 감독 흥행 성공기에 근접해나갔습니다. 솔직히 영화의 스토리는 어디에서 많이 봤음직한(TV 코미디프로에 몇번 나온 스토리인것 같습니다만...) 그리 신선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코미디 영화라는 것이 관객을 웃긴다면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니...
그러나 이영은 감독은 확실한 흥행으로 어렵게 잡은 감독 데뷔의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려는듯 보입니다. 그는 우리 코미디 영화의 추세인 슬픈 코미디로의 변신을 영화의 후반에 시도한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후반 대변신이 아쉬웠던 것은 슬픈 코미디를 싫어하는 제 개인적인 영화 취향이 큰 몫을 합니다만... 굳이 부담없이 웃고 즐겼던 영화에서 갑자기 울라고 재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생뚱맞은 것 같네요.
물론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이 영화의 슬픈 코미디로의 운명은 미리 결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대로가 3개월의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이상 이 모든 것이 그냥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바에야(알고보니 오진이었다는 식의...) 주인공이 죽은 슬픈 운명을 이 영화는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슬픈 운명의 뒤에 귀여운 딸 현지와 현지를 버리고 떠나간 영숙(강성연)의 사연, 그리고 대로와 영숙의 젊었을때의 사랑등이 펼쳐지는 것은 조금 낯뜨거워 보이네요. 그냥 쿨하게 코미디 영화답게 웃음으로 마무리했다면 영화를 보고나오며 '오랜만에 엔돌핀이 팍팍 생성되는 영화였어'라고 웃었을텐데...
슬픈 코미디의 창조자는 제 기억엔 윤제균 감독이 아니었나싶네요. 조폭 코미디의 라스트를 슬프게 꾸며 '조폭 코미디는 한물 갔다'라던 당시 영화 관계자들을 비웃으며 흥행에 대성공한 [두사부일체]를 비롯하여 [색즉시공], [낭만자객]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관되게 코미디 영화의 라스트를 슬프게 꾸몄었죠. 사실 처음엔 저도 그런 슬픈 코미디 영화들을 좋아했답니다. 특히 [색즉시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의 슬픔 때문에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슬픈 코미디가 너무 난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미디라는 것이 웃기면 되는 것을 굳이 관객들에게 감동까지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슬픈 코미디라는 이상한 장르를 탄생시킨 것은 아닌지... 물론 관객들 역시 코미디 영화를 보고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다라고 투덜거리다가도 약간이라도 감동스러운 장면이 나오면 감동스러운 영화라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움으로써 코미디 영화들에게 감동까지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씌워버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쯤에서 순수하게 관객들을 웃기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런 진정한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싶네요. 이대로, 웃기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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