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특별한 추억

카레와 천체망원경

쭈니-1 2014. 9. 4. 09:07

오늘은 웅이의 11번째 생일입니다.

2003년 9월 4일에 태어난 웅이.

어느덧 정확히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11년 전의 그날을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구피가 진통을 느낀 것은 9월 3일 아침이었습니다.

결국 구피는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산부인과 병원에서 진통을 느낀 끝에 어렵게 웅이를 낳은 것이죠.

9월 3일 아침에 구피와 함께 병원에 도착한 저는 9월 4일 새벽이 되자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구피는 병실에서 진통을 느끼고 있는데 자꾸 잠이 쏟아지니...

결국 장모님께 "아내가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데 잠이 오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틈만 나면 병원 구석에서 쪽잠을 자곤 했습니다. (잠탱이 쭈니)

2014년 9월 3일.

퇴근하고 돌아온 집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구피는 야근을 한다고 하고, 웅이는 태권도장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득 카레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3분 카레를 사서 먹을까 하다가...

11년전 웅이를 낳으려고 고생한 구피와, 11년전 세상에 나오려고 고생한 웅이를 위해 직접 카레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카레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동네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 등심, 감자, 당근과 카레 가루를 샀습니다.

감자와 당근을 썰어서 먼저 후라이팬에 볶고, 나중에 돼지고기 등심도 함께 넣어 볶았는데 양조절 실패로 후라이팬이 넘쳐나 버린...

그 결과 이런 비주얼이 나왔답습니다.

 

 

볶은 감자, 당근, 돼지고기 등심을 저희 집에서 가장 큰(!) 냄비로 옮긴 후 카레 가루와 물을 넣고 마구 휘저어 줬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추석 선물로 들어온 사과를 잘라 카레에 투척.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그랬더니 이번주 내내 먹고도 남을 푸짐한 양의 카레가...

어떻게 4인분 카레 가루로 이렇게 많은 양의 카레가...

이건 기적이야. 털썩~

 

 

구피는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맛난(?) 카레 라이스를 먹었습니다.

당근이 잘 익지 않아 딱딱했지만 나름 먹을만 했다는...

 

 

태권도장에 갔다온 웅이도 저녁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카레를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웅이는 학교에서 점심 때 카레가 나왔었다고 하면서... 아빠가 만든 카레가 훨씬 맛있다며 두 그릇을 해치우던...

그러고나서 한마디... "그런데 아빠, 당근이 너무 딱딱해요."

이렇게 웅이 생일 전날 제가 만든 카레가 저희 집의 화제 중심에 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려던 그 순간...

구피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웅이의 생일 선물인 천체 망원경이 집에 도착하는 바람에 제 카레는 뒷전으로 밀려난...

 

 

구피와 함께 이거 조립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조립 설명서가 영어로 되어 있던...

이렇게 제가 만든 카레와 웅이의 소원이었던 천체 망원경으로 웅이의 해피버스데이 이브는 행복하게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는 내내 카레 라이스를 먹으며, 밤마다 별 관찰하러 동네 공원으로 출동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