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석훈
주연 : 손예진, 김남길, 이경영, 김태우, 유해진
개봉 : 2014년 8월 6일
관람 : 2014년 8월 10일
등급 : 12세 관람가
2시간 내내 웃을 수 있는 영화라고 하더라!
올해 여름 극장가는 우리나라 블록버스터가 꽉 잡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군도 : 민란의 시대]가 7월 넷째주에 개봉해서 한국영화의 흥행 분위기를 잡아 놓더니, 그 다음주에는 [명량]이 개봉해서 전무후무한 흥행 돌풍을 기록, 여름 극장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여름 블럭버스터중에서 남은 것은 [해적 : 바다로 간 산적]과 [해무]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른바 빅4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영화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었습니다.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인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철저하게 썸머시즌용 오락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엔 실컷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저는 마구 땡깁니다. 아마 그러한 저의 개인취향 덕분에 예상 외로 웃겼던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나봅니다.
게다가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빅4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입니다. [군도 : 민란의 시대]와 [명량]은 15세 관람가 등급이고, [해무]는 아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아쉽게도 저는 이들 영화를 혼자 보거나, 혼자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12세 관람가 등급인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한국형 썸머시즌 블록버스터라니... 기대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이러한 제 기대도에 맞게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시사회로 공개된 이후 굉장히 웃긴 영화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해진은 특유의 코믹 연기로 영화를 종횡무진한다며 대부분의 관객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습니다.
결국 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일요일 저녁에 구피, 웅이를 이끌고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을 보러 갔습니다. 토요일에 저희 관계 회사가 사업장을 이전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이삿짐 정리를 해야 해서 온 몸이 피곤으로 찌들었지만,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을 보며 실컷 웃고나면 그깟 피로 따위는 싹 물러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기대만큼 웃기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코믹에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분명 2시간 내내 실컷 웃을 수 있는 영화라는 다른 분들의 평가와는 달리 몇몇 장면에서 웃을 수는 있었지만 시종일관 실컷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제겐 유해진의 연기가 그다지 웃기지 않았습니다. 유해진은 [공공의 적]에서 놀랄만한 코믹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조연 배우입니다. 저 역시 [공공의 적]의 유해진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기에 더욱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에서의 유해진을 기대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영화에서 유해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코믹 연기만 선보였습니다.
코믹은 기대이하, 하지만 캐릭터는 기대이상
분명 [해적 : 바다 간 산적]은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웃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영화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웁니다. 하나는 고려말 장수인 장사정(김남길)으로 그는 이성계(이대연)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하자 그러한 결정에 반발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형제와도 같은 모흥갑(김태우)에게 배신을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채 동료들과 빠져나옵니다. 그후 그는 산적이 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은 부모를 여의고 해적이 된 여월(손예진)입니다. 그녀는 소마(이경영) 밑에서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며 부하들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소마가 관군과의 거래로 부하들의 목을 내놓으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소마를 몰아내고 해적선을 장악합니다.
비록 장사정과 여월은 산적과 해적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그들은 비숫한 구석이 많습니다. 장사정은 자신의 사형인 모흥갑을 배신했고, 여월은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소마를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배신은 정의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이성계가 먼저 고려를 배신했고, 모흥갑이 그러한 이성계를 따랐기 때문에 장사정은 모흥갑을 배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월 역시 소마가 가족과도 같은 해적단 부하들을 관군에게 넘기려 했기 때문에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소마를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이렇게 두 주인공 캐릭터를 서로 다른 듯, 같게 구축함으로써 장사정과 여월이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힘을 합치게 되는 후반부의 짜임새를 완성합니다.
물론 '장사정과 여월의 캐릭터가 신선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습니다. 명백히 장사정은 2003년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에서 처음 등장한 후 10년이 넘도록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불멸의 캐릭터 잭 스패로우(조니 뎁)를 베낀 흔적이 있습니다. 장사정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졌지만, 겉보기엔 한 없이 가볍고, 비겁하기까지합니다. 그것은 잭 스패로우의 특징이며 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여월 역시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모건 아담스(지나 데이비스)를 참고한 듯이 보입니다. 레니 할린 감독의 1996년작인 [컷스로트 아일랜드]는 여해적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모건 아담스는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이복형인 악명높은 해적 선장 독 브라운(프랑크 랑겔라)에게 목숨을 잃자 아버지가 남겨준 보물 지도의 보물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해적 선장이 됩니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와 [컷스로트 아일랜드]를 교묘하게 섞은 것처럼 보이는데, [컷스로트 아일랜드]에서 핸섬한 사기꾼 월리엄 쇼(매튜 모딘)는 장사정의 캐릭터와 묘하게 겹치기도 합니다.
비록 장사정과 여월의 캐릭터는 이렇게 신선도에서는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완성도면에서는 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핸섬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짓만 골라서 하는 어리버리 산적 두목 장사정과 여해적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여월이 의외로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모든 것이 2대2 세트이다.
솔직히 저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캐릭터 면에서는 [군도 : 민란의 시대]와 [명량]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군도 : 민란의 시대]는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캐릭터 구축은 나래이션에 의한 것으로 영화 스스로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량]은 캐릭터의 영화라기 보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위한 영화이기에 이순신(최민식) 장군을 제외한 영화 속의 캐릭터들을 명량해전을 위해 제대로 구축되기도 전에 단순 소모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장사정과 여월의 캐릭터를 처음부터 절묘하게 완성합니다. 물론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 [컷스로트 아일랜드] 등의 영화에서 베낀 흔적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매력있게 변모시킨 것은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이루어낸 쾌거입니다.
이렇게 장사정과 여월의 캐릭터가 매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조연 캐릭터가 잘 구축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해적이었다가 배멀미 때문에 산적이 된 철봉(유해진)이 산적과 해적 캐릭터들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장사정의 오른팔인 춘섭(김원해), 여월의 오른팔인 용갑(신정근)이 각각 장사정과 여월의 곁에서 좌우 대칭을 맞춰줍니다. 그 외에 산적인 스님(박철민), 산만(조달환), 해적인 흑묘(설리), 참복(이이경) 등 조연 캐릭터들이 각자 제 몫을 충실히 해냅니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주인공 캐릭터와는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악당 캐릭터가 잘 구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캐릭터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장사정과 여월을 악당 캐릭터인 모흥갑과 소마가 더욱 빛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장사정과는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지만 자신의 권력욕으로 인하여 조국을 배신하고, 장사정을 죽이려했던 모흥갑. 여월에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지만 욕심으로 인하여 가족과도 같은 부하들을 관군에게 팔아넘기려 했던 소마. 이 두 악당 캐릭터는 연기력을 갖춘 중견 배우들에 의해서 카리스마 넘치게 완성되었습니다.
영화의 후반, 장사정과 여월 그리고 모흥갑과 소마가 각각 힘을 합쳐 서로 싸우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장사정과 여월이 무인도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과정과 비록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았지만 언제 서로를 배신할지 모를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흥갑과 소마의 모습을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잘 포착해냅니다. 이렇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잘 구축된 캐릭터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주인공 캐릭터 두명과 이에 맞서는 악당 캐릭터 두명이라는 2대2 세트를 통해 영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완성시킨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선택이 돋보였습니다.
감동은 고래에게...
요즘 한국영화의 추세라면 아무리 웃기는 코미디 영화라고 할지라도 감동 코드만큼은 꼭 삽입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것을 저 역시 알고 있었기에 장사정과 여월이 갑자기 관객에게 감동을 전해 준다며 낯뜨겁게 변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장사정과 여월은 각자의 캐릭터를 마지막까지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감동코드를 포기하고 그저 웃기는 것에 만족하는 오락 영화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영화에서 제3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래를 통해 영화의 감동을 완성해냅니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고래는 CG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래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으며, 고래와 여월의 인연, 새끼 고래를 지키기 위한 어미 고래의 몸부림, 그리고 어미 고래의 마지막 눈빛 등은 인간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그 어떤 감동보다 뜨거운 울림을 전해줍니다.
이렇듯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장사정, 여월이라는 주인공과 모흥갑, 소마라는 악당, 게다가 CG로 완성된 고래까지... 그 어떤 캐릭터도 소홀히 하지 않은, 캐릭터를 맘껏 활용한 오락 영화의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물론 캐릭터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캐릭터가 좋은 영화는 영화적 재미, 감동을 아무래도 손쉽게 관객에게 안겨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해서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에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유해진은 더 웃겼었야 했습니다. 유해진이라면 분명 그럴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석훈 감독은 유해진이 너무 튀는 것을 우려했는지, 유해진에 의한 코믹을 조금 자제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의 전개가 너무 우연에 치우친 감도 있습니다. 여월의 해적선과 소마의 해적선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장사정의 배가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장면이라던가, 장사정과 여월이 무인도에 갇혀 있을 때, 스님을 태운 배가 우연히 무인도에 도착하는 장면 등은 지나친 우연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차라리 장사정의 배에게 설명하기 힘든 신기한 기(氣)가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장서정의 배에게 캐릭터를 부여했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사정이 이성계에게 올바른 말을 하는 장면과 조선의 국새가 10년간 없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며 영화의 여운을 살며시 느끼게 하는 장면도 꽤 좋았습니다. 그러한 마지막 부분은 [군도 : 민란의 시대], [명량]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권력을 쥔 이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속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듯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아무 생각없이 실컷 웃기 위해 보러 갔다가 의외로 잘 구축된 캐릭터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마지막 아련한 여운까지 느끼며 극장 밖을 나섰습니다. 이렇게 [군도 : 민란의 시대], [명량]에 이어 [해적 : 바다로 간 산적]마저 재미있게 보고나니 이젠 [해무]가 너무 기대됩니다. 올 여름 한국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박입니다. ^^
참 신기하다.
이 영화에 코믹에 너무 기대를 걸었더니 오히려 코믹함은 실망스러웠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캐릭터가 매력적이더라.
역시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것의 가장 큰 적은 과도한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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