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렛 래트너
주연 : 드웨인 존슨, 존 허트, 레베카 퍼거슨
개봉 : 2014년 8월 6일
관람 : 2014년 8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올해에만 두번째 찾아온 '헤라클레스'
지난 4월 10일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를 봤었습니다. 제가 신화속 영웅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를 개봉하자마자 큰 기대를 안고 봤지만 솔직히 영화에 대한 실망이 꽤 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망감은 많은 분들이 느껴셨었나봅니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국내 흥행은 물론 북미 흥행에서도 참패를 당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리고 4개월이 지나자 이번엔 [허큘리스]가 개봉하였습니다. 제목은 비록 [허큘리스]이지만, 우리에겐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와 같은 소재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실망했지만, 그래도 저는 [허큘리스]에 큰 기대를 안고 역시 개봉하자마자 곧바로 극장에서 보고 왔습니다.
이 두 영화는 비교하자면... 우선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가 켈란 루츠라는 할리우드의 신성을 내세운것과는 달리 [허큘리스]는 드웨인 존슨이라는 이젠 할리우드의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한 관록의 배우를 선택했습니다. 켈란 루츠가 1985년생이고, 드웨인 존슨이 1972년생이니 나이차이만 13년 차이입니다. 그런만큼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20대의 '헤라클레스'를, [허큘리스]는 40대의 '헤라클레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헤라클레스'를 소재로 했다고해도 [헤라클레스 : 레전드 비긴즈]와 [허큘리스]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보다 [허큘리스]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헤라클레스'에 검투사라는 익숙한 소재를 끼워맞춘 영화입니다. '헤라클레스'를 새롭게 해석한 면이 있긴 하지만, 검투사라는 익숙한 소재 탓에 새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이 강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허큘리스]는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와 비교해서 '헤라클레스'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헤라클레스'를 신화와 분리시켜 새로움을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가 검투사라는 안전한, 그러나 새롭지는 않은 소재를 이용하여 젊은 '헤라클레스'가 영웅으로 각성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반면, [허큘리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헤라클레스'의 내면적 고통을 좀 더 집중적으로 파고듭니다. 그러한 면이 저는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허큘리스]는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와 비교해서는 재미있었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본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내면적 고통에 집중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에서는 부실함을 면치 못했고, '헤라클레스'(이후 허큘리스로 표기)가 내면의 고통을 벗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상황이 그다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러한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을 상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인반신 '허큘리스'? 아니, 그도 사람이다.
[허큘리스]는 이올라우스(리스 리치)가 도적떼들에게 '허큘리스'(드웨인 존슨)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헤라의 시기를 받은 이야기부터 그 유명한 12개의 과업까지 신화속 '허큘리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펼쳐집니다. 그 중에서도 12개 과업 중의 하나인 네메아의 사자,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레르나의 독사 히드라를 퇴치하는 장면은 짧지만 꽤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려는 '허큘리스'의 작전입니다. '허큘리스'는 신중의 신 제우스의 아들이고, 여신 헤라조차도 죽일 수 없었던 영웅이라는 점을 적들에게 각인시켜 싸움이 시작되기전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죠. 그렇게 기선을 제압한 '허큘리스'는 동료들과 함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적을 손쉽게 제압합니다.
그러한 [허큘리스]의 설정은 굉장히 영리합니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도 그러했지만 [허큘리스] 역시 '허큘리스'와 신화를 분리시킴으로써 [허큘리스]를 신화를 바탕으로한 판타지 영화가 아닌, 액션 시대극으로의 재미를 극대화시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가 신화적 부분을 그냥 포기한 것과는 달리 [허큘리스]는 신화적 부분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허큘리스'가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허큘리스'와 영화 속의 '허큘리스'를 어느정도 동일시화시킵니다.
사실 신화 속의 '허큘리스'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영웅 중에서 '허큘리스'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그의 삶이 영웅적인 활약과 비극적인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12개 과업은 '허큘리스'의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헤라의 저주로 인한 광기에 휩싸여 아내인 메가라와 세 아이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그를 더욱 극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포기하고 '허큘리스'라는 캐릭터만 가져왔습니다. 그러한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의 선택은 제게 왜 굳이 '허큘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적으로 악수였습니다. '허큘리스'의 캐릭터적 매력을 포기하고 캐릭터만 가져왔으니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허큘리스'의 영화가 아닌 그저 영웅적인 검투사의 이야기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허큘리스]는 신화 속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고 영리하게 영화 속에 이용합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허큘리스'의 조카인 이올라우스가 적들에게 들려주는 12개 과업의 이야기는 '허큘리스'를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영화와 신화의 접점을 유지시킵니다. 게다가 허큘리스의 아내 메가라(이리나 샤크)와 세 아이가 의문의 죽음과 그에 대한 '허큘리스'의 내면적 고통은 신화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면서도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현실의 세계에 들어온 '허큘리스'와 그의 동료들.
[허큘리스]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허큘리스'를 신화의 세계에서 빼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와의 접점을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신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 '허큘리스'의 매력과 새로운 '허큘리스'의 매력을 잘 조화시켰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좋았던 점은 '허큘리스'가 단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활약을 한다는 점입니다. '허큘리스'에게 동료를 안겨줌으로써 [허큘리스]의 영화적 재미는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허큘리스'의 동료들은 '허큘리스'의 오랜 동료인 아우톨리코스(루퍼스 스웰)와 예언자 암피아라오스(이안 맥쉐인), 그리고 여전사 아탈란타(잉그리드 볼소 베르달)와 전쟁터에서 태어난 짐승남 피네우스(존 앤더슨)입니다. 이들의 캐릭터는 각자의 개성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한 개성으로 영화의 재미를 살려냅니다. 예를 들어서 암피아라오스는 신의 계시를 통해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도 예언을 통해 알고 있는데, 그러한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암피아라오스의 행동은 영화에서 의외의 웃음을 전해줍니다.
'허큘리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영화의 후반, 동료들을 외면하고 혼자 제 갈길을 떠나버리는 아우톨리코스, [반지의 제왕]의 궁수 레골라스 뺨치는 활쏘기 신공을 발휘하는 아탈란타 등은 자칫 '허큘리스'에 올인될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피네우스입니다. 피네우스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짐승적인 면이 강한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아우톨리코스조차도 피네우스를 멀리하려합니다. 하지만 '허큘리스'는 용병 생활을 청산하고 한적한 곳에서 혼자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피네우스만큼은 데려가겠다고 말합니다. '허큘리스'에게 피네우스는 지켜줘야할 가족과도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허큘리스'는 그토록 피네우스를 다른 동료들보다 더 애틋하게 대할까요? 바로 '허큘리스'와 피네우스는 서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태어난 피네우스는 밤이면 악몽을 꾸며 짐승처럼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허큘리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메가라와 세 아이의 죽음과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그들의 시체를 물어뜯는 악몽이 '허큘리스'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허큘리스'는 어쩌면 피네우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봤을 것입니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허큘리스'의 동료들은 영화 후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허큘리스'의 힘자랑으로 싱겁게 끝나버린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피네우스의 숭고한 희생은 그렇기에 더욱더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개연성약한 악당들 (스포 포함)
여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후반 이후 '허큘리스'를 위기에 빠뜨린 악당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부터 [허큘리스]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버립니다.
[허큘리스]는 영화의 초반, 레소스를 악당으로 내세웁니다. 레소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허큘리스'의 아내인 데이아네이라의 미모에 빠져 그녀를 납치하려 했으나 오히려 '허큘리스'에게 죽음을 당한 켄타우르스입니다. 네소스는 죽으며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를 받아두었다가 '허큘리스'가 바람을 피울 때 그의 옷에 발라서 입게 만들면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순진한 데이아네이라는 그 말을 믿어서 옷에 네소스의 피를 묻혀 '허큘리스'가 입게 만듭니다. 결국 '허큘리스'는 네소스 독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워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기에 레소스를 악당으로 내세운 [허큘리스]의 선택은 합당해보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허큘리스'의 진짜 적은 레소스가 아닌 '허큘리스'에게 레소스를 무찔러 달라고 요청하는 코티스(존 허트)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코티스의 정체보다도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의 동기입니다. 그가 자신의 친딸인 에르지니아((레베카 퍼거슨)을 죽이려하면까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것이 기껏 제국의 제왕이라는 점은 너무 허무했습니다. 물론 권력욕이라는 것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하지만 젊은 야망가가 아닌 노령의 코티스가 선택하는 길이라고 하기엔 개연성이 약했습니다.
또다른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에우리스테우스(조셉 파인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영웅 '허큘리스'에 대해 질투심과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의 가족을 죽여 '허큘리스'에게 누명을 씌워놓고 정작 '허큘리스'를 처형하지 않고 살려줬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힘을 합쳐 '허큘리스'와 그의 동료들을 생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죽이지 않고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악행을 떠드는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과시형 악당이 대세였습니다. 악당이 자신의 악행을 고백함으로써 영화의 반전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떠벌이 악당은 영화를 유치하게 만듭니다. 실제 에우리스테우스는 자신이 '허큘리스'의 가족을 죽였다고 자랑을 늘어놓다가 '허큘리스'를 각성하게 만들어놓고 허무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허큘리스]는 '허큘리스'의 신화적인 부분을 버러지 않으면서도 판타지가 아닌 액션 시대극으로 완성을 해냈습니다. 분명 그러한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하지만 중반까지 잘 이끌어오던 영화가 후반, 악당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갑자기 유치해져버렸습니다. 후반부에 이렇게 갑자기 망가지는 영화도 참 드물듯합니다. 결국 [허큘리스]는 초반의 전설을 영화에서 잘 활용하지만, 후반엔 진실 때문에 영화적 재미를 망쳐버린 그런 아쉬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그리스, 로마 신화를 충실하게 옮긴 '허큘리스' 영화가 나오면 안될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와 [허큘리스]의 흥행 실패를 보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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