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설효로
주연 : 탕웨이, 오수파
웅이가 없는 주말 보내기
웅이는 1박2일로 과학캠프에 갔습니다. 주말이면 항상 웅이 위주로 스케쥴을 짰었는데 이렇게 웅이가 없는 주말이라니, 구피와 제겐 분명 낯설었습니다.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겠다는 구피와는 달리 저는 주말 내내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번 주말에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전혀 없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비록 극장에서 볼 영화는 없지만, 집에서라도 영화를 보며 웅이가 없는 주말을 보내겠다는 다짐아래 열심히 영화를 봤습니다. 토요일엔 [할리우드 폭로전]을 봤고, 일요일엔 [시절인연]을 봤습니다. 좀 더 많은 영화를 볼 계획이었지만 극장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니 아무래도 영화에 집중이 잘 안되서 고작 두편의 영화로 주말을 보내고 말았네요.
아기를 낳기 위해 시애틀에 온 여자.
[시절인연]은 며칠 전 김태용 감독과의 결혼 발표로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탕웨이 주연의 중국 로맨스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北京遇上西雅圖'로 직역을 하자면 '베이징이 시애틀을 만났을 때.'입니다. 너무 직설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시절인연]은 출산을 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을 찾은 쟈쟈(탕웨이)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미국 시민권 획득을 위한 원정 출산 이야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법도 하지만 쟈쟈의 사연을 듣고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쟈쟈는 중국에서 푸드매거진 편집자였던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이자 유부남인 종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기를 임신하면서 기구한 운명에 처합니다. 종은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결혼을 안한 쟈쟈는 국가로부터 출산 허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중국은 국가의 출산 허가를 받지 못하면 아기의 출생 등록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쟈쟈의 시애틀행은 자신의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시애틀에 온 남자.
쟈쟈는 시애틀에서 운전기사인 프랭크(오수파)를 만납니다. 대책없이 착하기만한 이 남자... 그런데 이 남자도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잘 나가던 심장 전문의 의사였습니다. 대학동기엔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아내는 병원을 그만두고 글로벌 거대 기업에 지사장이 되었습니다. 딸은 중국인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고 때마침 아내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는 바람에 프랭크는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옵니다.
의사라는 직업도 포기하고 돈을 잘 버는 아내 대신 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운전기사 일을 시작한 프랭크. 하지만 아내는 프랭크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미국의 잘나가는 사업가와 재혼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쟈쟈와 프랭크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고,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을 받은 것까지...
영화의 초반에는 돈 많은 싸가지 쟈쟈의 횡포에 대책없이 착한 프랭크가 그저 답답하게 당하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종이 사기 혐의로 중국에서 체포되면서 쟈쟈도 갑자기 빈털털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쟈쟈는 이전의 싸가지 없던 철없는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억척스러운 생활력 강한 여성으로 변신하며 쟈쟈와 프랭크의 관계도 점점 뜨거워집니다.
베이징이 시애틀을 만났을 때...
사실 저는 중국의 멜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중국 영화 특유의 과장된 연기가 멜로 영화의 아련한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시절인연]은 처음엔 다른 중국의 멜로 영화처럼 과장된 연기가 난무하는 영화로 보였습니다. 영화 초반 쟈쟈의 싸가지 없는 행동들이 딱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쟈쟈가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는 초반의 과장된 연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탕웨이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연기가 되살아나 저를 영화 속에 흠뻑 빠지게 했습니다. 특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연상하게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나 로맨틱했는데, 이 영화의 원제인 '베이징이 시애틀을 만났을 때'의 진면목을 보여준 명장면이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쟈쟈의 안하무인격의 행동들에 눈쌀을 찌푸리다가, 영화의 후반 명품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쟈쟈의 당찬 선언에 흐뭇해진... 쟈쟈가 프랭크의 딸과 함께 극장에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며 "저건 사랑의 환영이야. 그냥 각본가가 지어낸 얘기지. 어린 여자애들을 꾀어내려고..."라고 말합니다. 저도 [시절인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달달한 사랑 영화를 보면 돈보다는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믿고 싶어지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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