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시걸
주연 : 실베스타 스탤론, 로버트 드니로, 킴 베이싱어, 존 번탈, 케빈 하트, 알란 아킨
그들의 리즈 시절에는 권투가 대세였다.
[그루지 매치]라는 생소한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복수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루지 매치]는 비록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못하고 곧장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했으며, 북미 개봉 당시에도 4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고작 2천9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친 흥행 실패작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실베스타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권투 소재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70년대 후반과 80년대 [록키] 시리즈와 [람보]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빅스타 자리에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특히 1976년작 [록키]는 무명의 그를 스타로 만들어줬으며, [록키 2], [록키 3], [록키 4], [록키 발보아]는 그가 직접 연출까지 할 정도로 각별하게 애정을 쏟은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로버트 드니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입니다. 70년대 중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2]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성난황소] (국내 개봉명은 [분노의 주먹])으로 세계적인 명배우로 발돋음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루지 매치]는 '록키 VS 성난황소'의 맞짱 영화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감독은 [너티 프로페서 2], [성질 죽이기], [첫 키스만 50번째], [롱기스트 야드], [겟 스마트]를 연출하며 코미디 전문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피터 시걸. [그루지 매치]를 보기 전, 저는 이 영화가 왜 북미 흥행에 실패했는지, 왜 국내 개봉이 무산되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세월도 그들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영화들은 전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그루지 매치]의 경우는 '록키 VS 성난황소'의 맞대결이라는 이슈 외에는 결국 아무 것도 없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실베스타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는 이제 예전의 명성이 무색한 한물간 배우들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실베스타 스탤론은 최근 왕년의 액션 스타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익스펜더블] 시리즈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왕년의 액션 명감독 월터 힐을 불러들인 [볼릿 투 더 헤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투톱 주연을 맡은 [이스케이프 플랜]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로버트 드니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명성을 날린 그였지만 최근에는 다작 배우로 활동하며 '너무 돈만 밝히는 배우'라는 안좋은 소문까지 들리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루지 매치]에는 1983년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으로 당대 섹시심볼인 본드걸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나인 하프 위크], [LA 컨피덴셜], [배트맨]으로 80년대 최고의 섹시스타로 군림했지만 최근에는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킴 베이싱어까지 출연하여 한물간 배우들의 집합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그루지 매치]가 '록키 VS 성난황소'의 맞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이슈를 흥행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은 그러한 메인 이슈를 뒷받침해줄 그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실베스타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 그리고 킴 베이싱어만으로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니... 그들 입장으로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만도 합니다.
가볍게 본다면 의외로 재미있는 코미디.
하지만 [록키], [성난황소]와 같은 권투 소재 영화의 걸출한 명작을 기대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면 [그루지 매치]는 꽤 즐길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30년 전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빌리 '더 키드' 맥도넌(로버트 드니로)과 레이저 샤프(실베스타 스탤론). 그들의 첫 맞대결에서 키드가 15라운드 혈투 끝에 힘겹게 승리했고, 두번째 맞대결에서는 샤프가 의외로 손쉽게 키드를 때려 눕혔습니다. 상대 전적 1승 1패. 하지만 샤프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키드의 복수전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그루지 매치]는 30년후 키드와 샤프가 각자 다른 이유로 마지막 맞대결이 성사되며 벌어지는 코미디입니다. 사실 샤프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은 키드가 샤프의 연인인 샐리(킴 베이싱어)와 함께 잠자리를 가졌고, 그로인하여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샤프 입장에서는 키드를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권투 경기의 흥행을 위해서는 키드와 샤프가 서로 힘을 합쳐 경기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키드에겐 샐리와 키드 사이에서 태어난 B.J.(존 번탈)이 갑자기 나타나고, 샤프에겐 다시 샐리와 재결합 분위기가 솔솔 풍기며 그들에겐 서로 이겨야할 명분이 생깁니다.
처음엔 그들도 돈 때문에 시작했고, 주변에서는 60세가 넘은 이 노장의 경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화제를 불러 일으키자 이들의 복수전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샤프와 키드도 이젠 돈 때문이 아닌 예전의 명성과 명예, 그리고 현재의 소중한 사람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합니다.
승패를 초월한 결말은 좋았다.
[그루지 매치]를 전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잔잔한 스포츠 코미디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실베스타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라는 노장 배우를 내세운 조용한 코미디는 케빈 하트라는 요즘 뜨고 있는 코미디 배우를 투입하여 시끌벅적하게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노장 배우들의 잔잔한 코미디와 케빈 하트의 시끄러운 코미디가 조금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샤프의 트레이너로 출연한 알란 아킨의 야한 농담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지만, 영화의 중반 한국인 스트립퍼에 대한 농담은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더군요. 이럴바엔 차라리 코미디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진중한 드라마로 나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제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그루지 매치]에서는 코미디보다는 진중한 드라마가 더 낫다고 판단한 이유는 이 영화의 결말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60세가 넘은 나이. 이제는 그까짓 승패에 목매달지 않고, 소중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선의 승리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암튼 [그루지 매치]는 잠시나마 로버트 드니로와 실베스타 스탤론, 그리고 킴 베이싱어의 리즈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영화였으며, 잔잔한 코미디는 그다지 별로였지만 노장의 속 깊은 마지막 메시지도 꽤 좋았던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P.S. [그루지 매치]는 코미디 영화로서는 미지근한 영화이지만 그래도 최고로 웃긴 장면을 손꼽으라면 키드와 샤프가 미국국가를 부르는 장면, 그리고 엔딩 크레딧 도중에 핵이빨 사건으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과 에반더 홀리필드의 출연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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