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맷 리브스
주연 : 제이슨 클라크, 게리 올드만, 앤디 서키스
개봉 : 2014년 7월 10일
관람 : 2014년 7월 1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여름 휴가를 가기전, [혹성탈출]에 빠지다.
지난 일요일인 7월 13일부터 화요일인 7월 15일까지 2박3일간 제주도로의 여름휴가를 마쳤습니다. 회사에 제출한 휴가계는 수요일인 7월 16일까지이기에 오늘은 극장에서 맘껏 영화를 보며 여름 휴가의 마지막날을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장이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네요.
사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제주도로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토요일에 온 가족이 극장으로 총출동하여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제주도 여행 준비에 바쁜 구피에게 "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써야하니 건드리지마!"라는 당찬 선언까지 했었습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이렇게 여름 휴가의 마지막날 영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모든 일정을 포기해야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케이블 TV에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1968년 영화 [혹성탈출]을 방영해줬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냥 잠깐만 보고 영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혹성탈출]을 끝까지 보고야 말았습니다.
[혹성탈출]을 보고나서도 제겐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자더라도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었지만, 이번에 제 발목을 잡은 것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전편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었습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보러 가기 전에 복습을 하려고 hoppin에서 유료 다운로드를 받아 놨는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재생 가능 시간이 일요일 오전까지였습니다. 일요일에는 제주도에 도착해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결국 토요일을 넘기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를 놓치게 됩니다. 아쉬운 마음에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기 전에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앞부분만 조금 보려고 했는데, 보다가보니 또다시 영화 끝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까지 보고나니 시간은 새벽 1시. 아침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고, 쏟아지는 졸음에 영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 결국 저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제주도로 떠나기 전,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화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여름 휴가의 마지막날인 지금 극장이 아닌, 컴퓨터 앞에 앉은 이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복습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제가 여름 휴가의 마지막날을 포기하면서까지 [혹성탈출]과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본 영화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시리즈 영화들을 연결해서 봤을 때 느끼는 색다른 재미인 복습에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혹성탈출]과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그리고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으로 이어지는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69년 프랭크린 J. 샤프너 감독의 영화인 [혹성탈출]은 유인원들이 지배하는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 조지 테일러(찰톤 헤스톤)의 모험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유인원들은 야생의 동물처럼 살고 있는 인간 무리를 사냥하는데, 그러한 와중에 조지 일행도 유인원들에게 잡히고 맙니다. 조지는 자신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유인원들에게 당한 부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우연히 조지가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지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지라 박사에 의해 조지는 '반짝이는 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반짝이는 눈'이라... 조금 낯익은 이름이 아닌가요? 저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반짝이는 눈'은 윌(제임스 프랭코)에 의해 처음으로 알츠하이머 치료제 주사를 맞은 유인원의 이름입니다. 비록 '반짝이는 눈'은 실험실을 탈출하여 난동을 부리다가 사살되지만, '반짝이는 눈'은 임신 중이었고, '반짝이는 눈'이 낳은 아기가 바로 시저입니다.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2011년 영화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처음 봤을 때도 경이로운 영화였다면 다시보니 더욱 경이로운 영화더군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존 리스고)를 위해 알츠하이머 병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던 윌의 이야기입니다.
윌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약은 유인원들에겐 획기적인 지능의 발달을 안겨주지만 인간들에겐 치명적인 죽음의 바이러스가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뉴스 화면을 통해 유인 화성 탐사선 발사 소식을 관객에게 전하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신문의 일면기사를 통해 유인 화성 탐사선이 우주 미아가 되었다는 정보를 노출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유인 화성 탐사선은 바로 [혹성탈출]에서 지구를 떠난지 2천년 후, 유인원들이 지배하는 행성에 불시착한 조지 일행인 것입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윌의 옆집에 사는 남성이 비행기 조종사인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가 전세계에 바이러스를 퍼트린 장본인이죠. 이렇게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에 의해 꼼꼼하게 채워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중간에 보다가 중단하는 것은 제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혹성탈출]의 그 유명한 마지막 부분(충격적인 자유의 여신상 장면)으로 유추해보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다음 이야기도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유인원의 공격을 받았다는 드레퓌스(게리 올드만)의 무전을 들은 인간의 군대는 유인원과의 전쟁을 위해 핵 폭탄을 이용할 것이며, 그로인하여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혹성탈출]에서 조지 테일러가 마지막에 "그들이 결국 터트려 버렸어."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짙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고, 문제인 것은 증오이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혹성탈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으로 이어지는 '혹성탈출'의 이 매력적인 세계관은 제 개인적으로 팀 버튼 감독 최악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혹성탈출]도 다시 보고 싶게끔 만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흥분을 가라 앉히고, 무려 4일 전에 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되새김질하며 뒤늦게 영화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윌이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그로부터 10년 후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저(앤디 서키스)가 이끄는 유인원들은 금문교에서 인간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고 거대한 침엽수 레드우드가 치솟은 뮤어 우즈 국립공원에 삶의 터전을 마련합니다. 영화의 오프닝,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들이 사슴 사냥에 나서는 장면은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오프닝에서 유인원들이 인간들에게 사냥을 당하는 장면과 묘하게 겹쳐져 이제는 바뀐 유인원들의 위상을 느끼게끔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유인원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극소수만 남은 인간. 그들은 분명 유인원과 싸울 기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우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인원의 2인자인 코바는 "인간들이 힘을 되찾으면 분명 우릴 공격할 것이다."라며 끊임없이 인간을 경계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바로 신뢰와 증오입니다. 코바는 끊임없이 인간을 경계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할 수는 없습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코바는 인간들에 의해 온갖 연구를 당하며 몸과 마음을 다쳤던 유인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코바가 인간을 증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와는 달리 시저는 운이 좋게도 연구소가 아닌 윌의 집에서 자라났고, 윌과 좋은 추억을 쌓아 갔습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에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과의 유일한 연결점은 시저와 윌의 추억입니다. 윌과의 추억이 있기에 시저는 코바와는 달리 모든 인간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말콤(제이슨 클락)을 신뢰하여 인간이 전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합니다.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꾼 시저와 인간에 대한 증오에 눈이 멀어서 시저를 배신하고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코바. 어쩌면 이러한 전개는 조금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부터 차곡 차곡 쌓아 올려진 치밀한 전개인 셈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만든 바이러스로 멸종 위기를 맞이한 인간. 그러한 인간을 사이에 두고 의견 대립을 겪는 시저와 코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부터 이어진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놀라운 점은 처음부터 신뢰와 증오의 대립을 염두에 두고 시리즈를 진행해 나갔다는 점입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지는 전쟁이다.
어쩌면 모든 전쟁은 증오와 두려움, 그리고 욕심이라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저를 거역하고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한 코바는 인간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었고, 말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탄의 스위치를 눌러 버리는 드레퓌스는 유인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제 욕심입니다.
다시 앞선 질문을 다시 해보죠. 과연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은 가능할까요? 아뇨,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록 코바가 인간과의 전쟁을 앞당겼지만, 지능을 가진 유인원의 존재를 안 이상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신체적 열등함을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지능으로 메꿔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고, 결국 지구상에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멸종시키며, 인간의 영역을 늘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같은, 아니 오히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는 최악의 존재인 그들을 어떻게든 멸종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지구에서 살아남았으니까요.
시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인간에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인간들이 안 이상 인간들의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저는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평화를 원했던 시저의 바람은 슬프게도 더이상 이뤄질 수 없는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혹성탈출]의 프리퀼은 3부작으로 기획이 되었다고 합니다. 1부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이 어떻게 지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밝혀지는 초기 단계라면, 2부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의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중기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제작될 것이 분명한 3부는 유인원과 인간의 종족의 생존을 건 마지막 전쟁이 담겨질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핵폭탄을 사용할 것입니다. 핵폭탄은 인간들에게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장 지구의 지배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눌러서는 안될 스위치를 눌러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혹성탈출]에서 유인원의 지배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인간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남은 것은 파멸 뿐이라고... [혹성탈출]을 보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은폐하려는 그들의 행위에 조지를 응원했지만,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보고나니 무턱대고 인간을 응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혹성탈출] 프리퀼의 마지막 3부작에서 저는 어쩌면 인간이 아닌 시저를 응원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 역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시저를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것이 바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과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놀라운 점이며, 마지막 3부가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요즘 국내 영화가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개봉일 변경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고, 문제인 것은 두려움과 욕심, 그리고 증오이다.
거대 배급사와 중소 배급사의 공존.
그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시저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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