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좋은 친구들] -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지옥을 만들었다.

쭈니-1 2014. 7. 11. 17:02

 

 

감독 : 이도윤

주연 : 지성, 주지훈, 이광수

개봉 : 2014년 7월 10일

관람 : 2014년 7월 10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여름 휴가 이전에 최대한 많은 영화 보기

 

이번 주말...  저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갑니다. 그렇기에 이번주 내내 제8호 태풍 너구리의 경로를 주시했는데, 다행히도 제주도에는 큰 피해없이 지나갔나봅니다. 몇년 전부터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웅이의 소원이 제8호 태풍 너구리로 인하여 또 다시 무산될까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천만 다행입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갔다가 화요일 오후 비행기로 오는 2박 3일간의 일정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구피는 제주도에서의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놨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뭐 제주도에 처음가는 웅이를 위해서라도 빡빡한 일정은 어느정도 감수해야할 듯...

구피는 벌써부터 짐 싸야한다며 분주합니다. "고작 2박 3일 가는데 속옷만 챙겨가면 되지, 뭔 짐까지 싸야 하냐?"고 물었더니, "남자들은 이렇게 무심해요."라며 오히려 핀잔을 주네요. 구피가 이렇게 제주도 여행 준비로 바쁜 와중에, 저 또한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 보기입니다. 제주도 여행에 앞서 제가 영화 보기에 바짝 열을 올리는 이유는 빡빡한 일정 탓에 제주도에서는 영화를 볼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가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를 미리 챙겨볼 계획으로 이번주에만 벌써 세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신의 한수]를 봤고, 수요일에는 [더 시그널]을, 그리고 목요일에는 [좋은 친구들]을 보고 왔습니다. 제주도 여행 전날인 토요일에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볼 예정이고요. 구피는 토요일엔 제주도 여행 준비로 바빠서 영화볼 시간이 없다고 우겼지만, 제가 제주도에 가기 전에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까지는 꼭 봐야 한다고 웅이와 함께 버티는 중입니다.

암튼 어제 [좋은 친구들]을 보고 왔습니다. 벌써 여러번 이야기합니다만, 남자들의 거친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요즘 피곤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성과 주지훈, 이광수라는 캐스팅 라인이 매력적이어서 [좋은 친구들]은 꼭 극장에서 챙겨보기로 일찌감치 찜했던 영화입니다. 전날 [더 시그널]을 보고온 구피는 "난 피곤해서 오늘은 극장에 못가겠어!"라며 일찌감치 선언한 상태. 결국 혼자 [좋은 친구들]을 봐야 했습니다.

[좋은 친구들]에 대한 제 첫인상은 '앗! 이건 내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닌데?'입니다. 솔직히 저는 어머니(이휘향)를 죽음으로 내몬 화재사건을 조사하던 현태(지성)가 조사 과정에서 친구들인 인철(주지훈)과 민수(이광수)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으로 끝맺음하는 스릴러 영화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처음부터 모든 패를 전부 오픈하고나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지옥은 이미 17년 전부터 도사리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은 중학교 졸업을 앞둔 현태, 인철, 민수가 학교를 빠져나와 산에 올라가 그들만의 졸업식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러한 오프닝 장면은 현태, 인철, 민수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영화의 전체적 전개를 암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민수는 마음은 여리고 착하지만 어리버리한 사고뭉치입니다. 오프닝 장면에서도 발을 헛디뎌  낙산 사고를 당합니다. 결국 민수로 인하여 현태와 인철은 폭설이 내리는 산에 고립되어 죽을 고비를 맞이합니다. 그와는 달리 현태는 우직하고 믿음직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민수로 인하여 산에 고립되지만, 끝까지 의식을 잃은 민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직한 현태와는 달리 인철은 현실주의자입니다. 현태와 민수를 외딴 산장에 남겨두고 산악구조대를 불러온 인철의 선택 덕분에 현태와 민수는 목숨을 건집니다.

이러한 오프닝 장면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인철을 향한 현태의 인식입니다. 외딴 산장에서 잠이 들었던 현태는 깨어났을때 인철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만약 현태가 인철을 믿었다면 아마도 산장에서 인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태는 의식이 없는 민수를 업고 눈이 쌓인 밖으로 나옵니다. 그는 인철이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은 현태, 인철 그리고 민수의 캐릭터를 완성함과 동시에 그들의 관계와 앞으로 영화가 1시간 55분동안의 러닝타임을 이끌어갈 스토리 전개의 거의 모든 것을 암축시킵니다. 신인 이도윤 감독의 꽤 대담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한 시도입니다. 

 

오프닝 이후 [좋은 친구들]은 17년 후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전히 우직한 현태는 자신과 어울리는 소방관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며,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인철은 보험 설계사가 되어 폼 나는 인생을 살고자 발버둥치고, 어리버리한 민수는 여전히 납루한 인생 속에 허우적되고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완성했던 세 친구의 캐릭터가 17년 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좋은 친구들]은 자신의 패를 관객 앞에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현태의 어머니는 인철에게 거액의 화재 보험을 들게 되고, 인철에게 차라리 사업장이 불이 나서 보험금이나 타서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현태 어머니의 말을 들은 인철은 민수에게 달려가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라며 보험 사기 범죄를 모의합니다.

인철과 민수, 그리고 현태의 어머니가 함께 모의한 보험 사기는 결국 민수의 작은 실수로 인하여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 17년 전, 낙산 사고로 친구들을 죽음의 위기에 빠뜨릴 뻔했던 어리버리한 사고뭉치 민수의 캐릭터가 도박장 화재 사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 것입니다. 현실주의자인 인철은 이 비극을 현실적으로 무마시키려 하고, 우직한 현태는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려합니다.  

어쩌면 지옥에 빠진 것은 친구를 의심한 현태가 아닌 본의아니게 친구의 어머니를 죽인 인철과 민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옥은 17년 전부터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리버리한 사고뭉치 민수와 얍삽한 현실주의자 인철. 17년 전에도 그랬듯이 현태는 인철을 믿지 못했고, 17년 전과는 달리 이번엔 비극으로 그들의 우정은 산산조각납니다.

 

 

모든 패를 보여주며 이 영화가 노린 것은?

 

앞서 제가  이건 내가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인철과 민수의 범죄가 초반에 고스란히 관객에게 공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제가 예상한 것은 현태가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 조금씩 다가서고, 그러면서 인철과 민수가 어머니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혼란을 겪게 되며 친구를 믿어야될지, 의심해야할지 괴로워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현태 어머니의 죽음이 고스란히 관객 앞에 공개되며 인철은 "그래, 내가 범인이다. 어쩔래!"라며 당당하게 관객 앞에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 순간 제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도대체 이 영화가 그 어떤 영화적 재미로 중반 이후를 꾸려나가려고 이러는 거지?'라는 의문입니다. [좋은 친구들]을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한 저는 마지막 반전을 영화의 초반에 배치한 이 영화의 전개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우려와는 달리 [좋은 친구들]은 일단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그렇기에 마지막 반전 따위도 없습니다. 그 대신 [좋은 친구들]은 탄탄한 스토리 전개의 짜임새를 보여줍니다. 현태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불법 도박장 화재 사건에 얽힌 경찰, 조폭, 보험 조사관, 술집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너무나도 완벽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현태는 사건의 진실을 경찰에 맡길 수가 없었고, 오히려 조폭의 도움으로 직접 범인 잡기에 나섭니다. 그러한 과정이 너무나도 촘촘하게 이어져 있어서 저는 전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의 제작 노트를 읽어보니 이 영화를 범죄 스릴러가 아닌 범죄 드라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들]은 너무나도 완벽한 범죄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반전 따위가 아닌 현태가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의 짜임새와 그로인하여 파국을 맞이하는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입니다.

친구들에 의해 어머니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진실 앞에 현태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민수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무너지며, 인철은 어떻게든 이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17년 전에 묘사된 이들의 캐릭터와 교묘하게 겹쳐지며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립니다. 

애초에 [좋은 친구들]을 기대하게 했던 지성, 주지훈, 이광수의 앙상블도 역시나 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분명 스타급 배우이지만, 아직 대표작이라 할만한 영화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지성, 주지훈, 이광수의 대표작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외에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보험 조사관  이수(최진호)와 현태가 범인 잡기에 직접 나서도록 부추기는 조폭 두목 재규(최병모), 그리고 긴박감 넘치는 이 영화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안겨준("오빠, 우리 앞으로 못 보는 거지?" 라는 뻔뻔한 대사를 날리고 사라진) 술집 아가씨 지향(장희진) 등... [좋은 친구들]을 이루는 주, 조연 배우들 모두가 전부 인상 깊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좋은 친구들]을 보고나니 한때 떠들썩했던 쥐식빵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2010년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23일에 벌어진 쥐식빵 사건은 죽은 쥐를 식빵에 넣어 사진을 찍은 후 유명 제과업체의 빵집에서 식빵에 쥐가 나왔다는 허위 글을 올렸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건입니다. 그의 범행 동기는 아내가 운영하는 빵집이 어려움을 겪자 아내를 위해 경쟁 빵집을 문닫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쥐식빵 사건의 범인은 전과가 있는 30대 중반의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참 어리석죠? 아내를 위해서라는 선한 동기가 끔찍한 자작극이라는 악한 범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의 범행으로 인하여 그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거액의 손해 배상금을 물게 되었으며,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지켜주고 싶었던 아내의 행복마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인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민수를 범행에 끌어 들일때 "이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야."라고 설명합니다. 현태 어머니의 불법 도박장에 불이 나면 현태 어머니는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되고, 불법 도박장 운영도 그만둬서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기국서)의 병간호도 할 수 있고, 그러면 현태도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인철은 말합니다. 결국 민수가 인철의 범행에 가담한 것은 그러한 선한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현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쓰러지자 현태의 집에 몰래 들어와 자신의 손녀를 납치했었습니다. 그 아이가 없으면 현태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결국 인철도, 현태의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밖에 살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인 것이죠.

 

인철이 진정 현태와 현태 어머니를 화해시키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현태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액의 화재 보험금이 아닌 불법 도박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떼고 현태와 화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법 대신 불법적인 범행을 선택했고, 결국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비극에 빠뜨렸습니다.

쥐식빵 사건의 범인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가 아내를 이전보다 더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인철은 현태와 현태 어머니를 화해시키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가 현태와 현태 어머니를 영영 갈라놓아 버립니다. 그들의 사는 방법이 좋은 의도를 최악의 비극으로 만든 것이죠.

자칭 주지훈의 팬이라는 구피는 (그러면서 주지훈의 주연 영화는 안보는...) "영화 재미있었어?"라고 묻습니다. 그러한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나는 앞으로 좀 더 올바르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입니다. 그렇습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이 좋은 의도마저도 비극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난 좀 더 올바른 방법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어떻게든 현태와의 우정을 지키고 싶었던 인철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현태, 인철, 민수는 진정 '좋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 때문에 그들의 우정은 최악의 비극이 되었습니다. 인철도 아마 민수의 편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인철의 마지막 표정에서 그의 후회가 느껴져 더욱 가슴아팠던 영화입니다.

 

나의 살아가는 방법은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지키고 싶다면, 자신의 살아가는 방법은 어땠는지 뒤돌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