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제영
주연 : 천정명, 김민정
지친 나의 일요일 밤을 채워준 것은?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웅이를 스카웃에서 주최하는 스키캠프에 보내고 왔습니다. 웅이가 없는 일요일. 여유롭게 보낼만도 하지만 어머니께서 설날이 오기 전에 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하셔서 서둘러 준비하고 산소로 향했습니다.
아버지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가족끼리 점심을 먹으로 갔습니다. 누나가 가까운 곳에 해물 짬뽕을 맛있게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믿고 따라갔는데, 아버지 산소에서 무려 30분 가량 차를 몰고 송추IC까지 가더군요. 짬뽕 한그릇을 먹으러 그곳까지 가다니... 누나한테 또 속았습니다.
송추IC에서 해물짬뽕을 먹은 후 이번엔 신림동으로 차를 몰아 [캡틴 하록]을 보고 왔습니다. 꼭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상영하는 곳이 몇군데 되지 않아서 서울 시내의 모든 멀티플렉스 상영 시간표를 뒤진 끝에 롯데시네마 신림점을 찾아낸 것이죠. 영화 상영시작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저와 구피가 극장 안에 들어선 시간은 정확히 오후 3시 40분. 그렇게 [캡틴 하록]까지 보고나니 일요일 하루가 가고 있습니다.
정말 폭풍같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이 쇼파에 널부러졌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황금같은 휴일날 영화를 [캡틴 하록]만 보다니... 원래 계획은 [올드보이]도 보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보기 위해 또 밖으로 나가기엔 힘이 너무 빠졌고 해서 이런 날을 위해 hoppin에서 다운로드 받아 놓은 영화 [밤의 여왕]으로 일요일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김민정이 좋다.
사실 [밤의 여왕]은 2013년 10월에 개봉해서 관객을 25만명 동원에 그친 흥행 실패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은근히 [밤의 여왕]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너무 빨리 극장간판이 내려지는 바람에 극장에서는 놓쳤지만 다운로드 시장에 나온 이후로는 호시탐탐 이 영화를 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밤의 여왕]을 기대한 이유는 바로 김민정 때문입니다. 김민정은 아역배우로 시작해서 2001년 [버스, 정류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 배우에 뛰어 들었지만 [음란서생]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흥행 성공작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민정이 좋습니다.
제가 김민정을 눈여겨본 것은 2004년에 방영했던 <아일랜드>라는 제목의 TV 미니시리즈에서부터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이나영과 현빈, 그리고 김민준과 김민정이 주연을 맡았고,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 작가가 극본을 맡은 드라마입니다. <아일랜드>에서 김민정은 아역 배우 출신이지만 배우로서 살아남기 위해 에로 배우가 된 한시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아역 배우 출신인 김민정과 묘하게 겹치는 캐릭터입니다.
<아일랜드>를 보며 저는 에로 배우인 한시연의 섹시함과 아역 배우 출신으로서의 순수함을 동시에 봤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김민정의 매력은 [음란서생]은 물론이고 [밤의 여왕]에서도 발휘되는데, 한때 강남 클럽을 주름잡던 '밤의 여왕' 렉시의 섹시함과 영수(천정명)의 정숙한 아내 희주(김민정)의 순수함이 김민정이라는 배우에 의해 완벽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정숙했던 아내의 과거는?
[밤의 여왕]은 찌질이 기질이 다분한 소심남 영수가 너무나도 완벽한 희주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국 결혼까지 성공하며 시작됩니다. 살림잘하고, 알뜰하고, 자상하기까지한 완벽한 아내 희주. 그렇게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영수는 어느날 희주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희주를 자랑할겸 오랜만에 참석한 동창회장에서 시어머니에게 선물할 김치 냉장고를 타기 위해 희주가 섹시댄스를 춘 것이죠.
희주의 섹시 댄스는 SNS를 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과거 강남 클럽의 전설 렉시가 아니냐며 댓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영수는 우연히 화장실 변기 뒤에 희주가 숨겨 놓은 과거 사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희주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져가고, 급기야 영수는 강남 클럽을 돌며 희주에 대한 뒷조사를 하게 됩니다.
사실 [밤의 여왕]은 상당히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수가 희주의 과거 뒷조사를 하고, 그로 인하여 희주를 의심하고, 희주와 결별을 하게 되지만 희주가 진정한 사랑임을 알고 용서를 빌며 다시 재결합하는 해피엔딩 스토리를 고스란히 따라간 것이죠. 여기에 '아내의 과거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구태의연한 질문 따위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천정명의 어리버리 연기와 김민정의 순수와 섹시를 오고가는 매력을 감상하면 그만입니다.
불법 사찰에 대한 우화?
그런데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밤의 여왕]에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바로 민간인 불법 사찰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정부 기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를 [밤의 여왕]은 아내의 과거를 의심한 영수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수는 거래처의 악덕 사장의 부탁으로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연일 악덕 사장은 물러가라는 노조의 데모가 계속되는 가운데 영수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수가 아내의 뒷조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밤의 여왕]은 사장이 사원들을 불법 사찰하는 것과 영수가 희주의 과거를 캐내며 다니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아무리 사장이고, 남편이라해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자격은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밤의 여왕]의 주제 의식은 영수와 희주의 뻔한 로맨틱 코미디식 스토리 전개에 묻혀 버립니다. [밤의 여왕]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잘만 다듬으면 우리 사회의 불법 사찰 문제와 로맨틱 코미디를 잘 버무린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결국 그러지 못하고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신인 김세영 감독은 좀 더 과감했어야 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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