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
주연 : 세스 로건, 제이 바루첼, 제임스 프랭코, 조나 힐, 대니 맥브라이드, 크레이그 로빈슨
응답하라! 1999년 12월 31일
2013년의 마지막 날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겠다며 저희 가족은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고 ,TV를 시청했습니다. TV에서는 제야의 종소리를 현장에서 듣기위해 보신각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비춰줍니다. 구피는 "TV에서 보면 될걸, 추운데 뭐하러 저기가서 고생한대?"라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저 역시 TV속 인파들 틈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겠다며 안간힘을 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1999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새천년을 맞이하는 1999년의 마지막날. 여기저기에서 종말론 이야기가 들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서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괴담마저 떠돌았습니다.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저는 기왕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면 집에서 혼자 맞이하는 것이 아닌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맞이하겠다는 일념으로 보신각에 갔었습니다.
물론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멀쩡히 지구촌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3년의 마지막 날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니 14년전 그날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제 뇌를 스친 영화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디스 이즈 디 엔드]입니다.
종말에 대한 할리우드식 농담
제가 뜬금없이 [디스 이즈 디 엔드]라는 국내 미개봉작이며,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한 영화를 떠오른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가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종말을 소재로한 영화들은 거대한 SF, 혹은 재난 영화입니다. 하지만 [디스 이즈 디 엔드]는 화장실 코미디와 B급 SF, 블랙 코미디로 뒤덤벅이된 독특한 영화입니다.
[디스 이즈 디 엔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유명 영화배우인 제임스 프랭코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세스 로건과 제이 바루첼(이 영화의 배우들은 실명으로 출연합니다.) 떠들썩한 파티장에는 크레이그 로빈슨, 엠마 왓슨, 리한나 등이 참가하여 더욱 먹고 마시기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종말이 옵니다. 파티 중에 종말을 맞이한 사람들은 갈라진 땅 틈으로 떨어져 대부분 죽고, 제임스 프랭코, 세스 로건, 제이 바루첼, 크레이그 로빈슨, 조나 힐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대니 맥브라이드만은 제임스 프랭코의 집에서 피신하여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하지만 식량은 물론이고, 마실 물마저 떨어진 상황. 더이상 제임스 프랭코의 집은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과연 그들은 이 종말을 어떻게 해쳐나갈까요?
망가지는 배우들, 막나가는 스토리 전개.
[디스 이즈 디 엔드]는 사실 뻔한 기본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뻔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은 유명 배우들이 사정 없이 망가지는 모습입니다. 초코바 하나가지고 죽일 듯이 기싸움일 벌이기도 하고, 마실 물이 없자 자신의 오줌을 마시기도 합니다.
종말로 인하여 집에 갇힌 이들은 자신들의 출연 영화인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2]를 캠코더로 만들며 시간을 보내더니, 급기야는 서로에 대한 우정이 서서히 깨지며 분열을 일으킵니다. [디스 이즈 디 엔드]는 그러한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결국에는 악마까지 등장하더니 [엑스시스트]처럼 조나 힐이 악마가 되어 제임스 프랭코 일행을 공격하고, 그들이 장난처럼 찍었던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2]의 내용대로 대니 맥브라이드는 식인종이 되기도합니다. '도대체 이 막장극을 어떻게 끝내려고하지?'라는 생각으로 슬슬 걱정이 될때쯤에는 갑자기 하늘에서 파란 빛이 내려와 이들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저는 [디스 이즈 디 엔드]를 참 유쾌하게 봤습니다. 2012년에 봤던 [유어 하이니스]처럼, 이런 식의 병맛 코미디는 이렇게 가끔 아무 생각없이 즐길만합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생각하지 못했던 깜짝 선물도 유쾌했습니다.
깜짝 놀랄 선물들
[디스 이즈 디 엔드]가 펼친 첫번째 깜짝 선물은 엠마 왓슨입니다. 영화의 중반에 제임스 프랭코의 집으로 피신했던 그녀는 제임스 프랭코 일행이 자신을 강간할 계획을 세우는줄 착각하고 도끼로 그들을 위협해서 그들의 식량들 가로채갑니다. 그때 대니 맥브라이드는 이렇게 외칩니다. "헤르미온느가 우리 식량을 훔쳐갔어!"
영화의 후반 식인종이 된 대니 맥브라이드는 개줄을 목에 건 자신의 노예를 끌고 다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채닝 테이텀입니다. 기꺼이 이 영화에 출연한 채닝 테이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 중간엔 난데없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 나오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추억의 가수 백 스트리트 보이즈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쯤되니 심각한 일 따위는 잊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입니다. 2014년 처음으로 집에서 본 영화 [디스 이즈 디 엔드]. 가끔은 이런 병맛 코미디처럼 내 인생도 아무 생각없이 웃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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