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숨바꼭질] - 심리적 공포를 포기하고 식칼을 집어들다.

쭈니-1 2013. 8. 21. 11:40

 

 

감독 : 하정

주연 :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

개봉 : 2013년 8월 14일

관람 : 2013년 8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본의 아니게 반전을 듣고 말았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저는 영화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글을 쓸 정도의 내공을 쌓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제 글은 영화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스릴러 영화의 경우는 제 글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8월 16일이었습니다. 샌드위치 데이인 덕분에 구피와 저는 기대하지 않은 휴가를 얻게 되었고, 여름방학 마지막 주말을 맞이한 웅이를 위해 대학로에서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구피가 예매한 표는 단 두장뿐. 결국 한명은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가 밖에서 기다리릴께."라며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제 속셈은 구피와 웅이가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보는 동안 CGV 대학로에서 [언어의 정원]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구피와 웅이가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보러 간 사이 저는 여유롭게 CGV 대학로로 향했고, 1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언어의 정원]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1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언어의 정원]의 러닝타임은 고작 45분.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이 1시간 30분 정도 공연한다고 치면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이 끝나는 시간과 [언어의 정원]이 끝나는 시간이 얼추 맞춰질 것이라 계산했습니다.

 

CGV 대학로의 교차 상영 때문에 [언어의 정원]이 상영하는 상영관에는 [언어의 정원] 이전 회차에 다른 영화가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언어의 정원]을 기다리는 제게 상영관 안에서는 비명소리와 울부짖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렇게 살벌하냐?"라는 생각으로 어떤 영화인지 추리해보니 상영관안 비명 소리의 정체가 밝혀지더군요. 바로 [숨바꼭질]이 상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숨바꼭질]이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서운 영화라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숨바꼭질]이 끝나고 관객들이 주루룩 밖으로 나옵니다. 이제 [언어의 정원]이 상영될 차례. 상영관 안이 정리되면 들어가 [언어의 정원]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구피에게 전화가 옵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정원> 공연이 끝났다고... 하필 <오필리아의 그림자 정원>의 공연 시간은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언어의 정원] 예매를 취소해야 했습니다. 구피와 웅이에게 1시간이나 기다려달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그런데 더 큰 짜증은 [언어의 정원]을 포기한 것이 아닌 [숨바꼭질]을 보고 나온 관객들과 같은 엘레비이터를 탔다가 [숨바꼭질]의 마지막 반전을 듣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변할줄 몰랐지."라는 젊은 여성의 한마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숨바꼭질]에 출연하는 여성 캐릭터는 전미선이 연기한 민지와 문정희가 연기한 주희 뿐입니다. 결국 8월 16일은 제게 [언어의 정원]은 눈 앞에서 놓치고, [숨바꼭질]의 스포를 본의 아니게 들은 불운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집에 낯선 누군가가 살고 있다.

 

8월 20일. 혼자 [숨바꼭질]을 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 계획은 회사 근처 CGV에서 [숨바꼭질]과 [언어의 정원]을 연달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16일의 불운을 말끔히 씻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죠.

사실 [숨바꼭질]을 혼자 보러 가는 것은 겁이 많은 저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낸 결단이었습니다. [언어의 정원]을 기다리며 들은 [숨바꼭질]의 비명 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게 '무섭다'라는 인식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화의 기본 설정 부터가 섬뜩합니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 [숨바꼭질] 메인 포스터의 광고 카피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괴담이죠.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몰래 숨어 사는 노숙자의 이야기. 그런데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괴담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텅 빈 집에서 낯선 인기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볼 때 그런 상황이 연출되면 주인공이 집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집 안을 수색하다가 범인에게 당하는 것을 보며 답답해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저 역시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낯선 사람이 침입했는지, 아니면 나의 과민반응 때문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조심스럽게 집안 구석 구석을 살펴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단 한번도 집 안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인기척을 느낀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숨바꼭질]은 바로 그러한 두려움을 담아낸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나의 집에 내가 모르는 낯선 이가 숨어 산다면... 이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숨바꼭질]을 보기에 앞서 잔뜩 겁부터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막상 [숨바꼭질]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화의 소재에 의한 공포와 [언어의 정원]을 기다리며 들은 비명 소리 때문에 [숨바꼭질]의 공포를 너무 과하게 기대(?)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CGV 대학로의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들은 스포일러 때문에 마지막 반전도 충분히 예상이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날 스포일러를 듣지 않았다고 해도 마지막 반전은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코 어려운 반전이 아니었으며, 영화에서는 충분히 그에 대한 힌트를 관객에게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숨바꼭질]에 실망한 것은 다른 이유입니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던 것은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제게 오히려 더 잘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숨바꼭질]의 마지막 반전을 알게 된 것은 영화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숨바꼭질]에 기대했던 심리적 공포가 부족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영화의 완성도 부족입니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숨바꼭질]은 공포심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포는 심리적인 공포입니다. 안전하다고 믿은 나의 집이 결코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실제로 [숨바꼭질]은 그러한 심리적 공포를 영화의 중반까지 잘 이끌어옵니다. 하지만 허정 감독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식칼이 등장하면서 심리적 공포는 어느 순간부터 싸이코 스릴러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아예 대놓고 성수(손현주)의 집을 빼앗겠다며 식칼과 쇠파이프를 들고 난리를 치는 부분에서 잔뜩 겁을 먹으며 영화를 관람했던 저는 오히려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초반이 심리적 공포를 준 이유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숨바꼭질]의 초반은 분명 제 심장을 쥐어짤 정도로 효과적인 심리적 공포를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에는 성수라는 캐릭터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성수는 꽤 인상적인 캐릭터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들, 딸을 가진 중산층 가장입니다. 서울 시내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그는 무엇 하나 남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단지 지독한 결벽증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성수의 결벽증은 [숨바꼭질]이 심리적 공포를 이루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밝혀지는 성수의 충격적인 과거. 그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앓아온 성수의 결벽증이 있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입양된 성수. 하지만 입양된 가정에는 흉칙한 피부병을 가진 형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성수가 형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한 이유는... 어린 성수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형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러운 형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심. 성수의 결벽증은 무고한 형을 감옥에 보냈고, 그로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영화의 초반에 성수의 죄책감은 영화의 오프닝에 보여준 검은 헷멧을 쓴 살인마가 혼자 사는 여성을 살인하는 장면보다 더 섬뜩했습니다. 특히 그가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 중에서 안방의 천장에서 형의 환상이 등장하는 장면은 유일하게 제가 [숨바꼭질]을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을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성수가 형의 실종에 깊이 파헤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형에게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한 죄책감,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을 형이 언제 자신에게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러한 초반의 공포는 손현주의 명품 연기와 더불어 영화의 심리적 공포를 더해줍니다.

성수의 과거 비밀과 죄책감, 그리고 나의 집에서 내 가족이 위협을 받는다는 설정이 더불어져 [숨가꼭질]은 심리 공포의 좋은 출발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심리 공포에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첫번째 단서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느낄 수가 있습니다. 검은 헬멧을 쓴 괴한이 혼자 사는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숨바꼭질]이 심리 공포가 아닌 사이코 스릴러를 지향하고 있음을 대놓고 선언한 셈이 됩니다. 

그러한 [숨바꼭질]의 속내는 영화의 후반부가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더이상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갈고 있다.'라는 광고 카피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숨바꼭질]의 공포는 내 집에 낯선 이가 숨어 사는 것이 아닌 내 집을 낯선 이가 억지로 빼앗으려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부터 [숨바꼭질]의 공포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기대기 시작합니다. [연가시]에서도 느꼈던 문정희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손현주와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 공포를 장식합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심장을 쥐어 짜는 심리 공포가 사라진 자리에는 손현주와 문정희의 연기 대결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이 영화가 무섭지 않았던 이유 (본격적인 스포 시작)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잔인하게 살인하는 살인마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살인마가 거추장스러운 헬멧을 시종일관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살인마가 헬멧을 써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헬멧을 쓰지 않으면 아무리 카메라 트릭을 이용한다고해도 범인의 정체가 관객에게 들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에 부합되는 캐릭터는 단순하게 생각해도 성수의 형으로 추리하기 쉽습니다. 얼굴에 심한 피부병을 가진 그라면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필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헬멧을 쓴 살인마가 성수의 형이라면 한가지 헛점이 드러납니다. 너무 쉽다는 점입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관객을 속이기 위한 미끼 캐릭터 하나 쯤은 필수인데, 성수의 형은 그러한 역할에 너무나도 부합됩니다. 그렇다면 또다른 추리를 할수 있습니다. 범인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범인이 여성임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 헬멧은 더할나위없이 딱 좋은 소품인 것입니다.

물론 제가 영화를 보기 전에 갑작스러운 스포일러의 습격을 당했기 때문에 이러한 추리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숨바꼭질]의 반전은 그렇게 어렵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헬멧 살인마의 정체가 주희라는 것이 밝혀지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집 주인을 살해하고 남의 집을 빼앗아 살아가던 주희와 성수의 한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이 부분부터 [숨바꼭질]은 무리수를 두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은 죽여서 비닐에 꽁꽁 싸매서 옷장에 숨겨두는 치밀함을 보였던 주희는 성수에게는 그러한 치밀함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성수가 주희의 공격을 몇번이나 받고도 다시 반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갑작스러운 주희의 치밀함 결여에 의한 결과라서 영화의 긴장감은 반감됩니다.

여기에 '이쯤에서 민지가 일어나 반격하겠지.'라고 생각하면 마치 제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어김없이 민지가 주희에게 반격을 가합니다. 초반의 멋진 심리적 공포가 후반에 와서 느슨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성수와 민지의 아이들을 매개로 후반의 공포심을 이루려 했던 시도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주희의 치밀함 결여로 성수와 민지가 분명 아이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 아이들이 위기에 처해있어도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보다는 성수와 민지가 이쯤에서 아이들을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타임에 맞춰 어김없이 성수와 민지는 주희에게 반격을 가합니다.

저는 진정한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라는 설정이 섬뜩한 이유는 낯선 사람의 정체를 알수없고,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실제 숨어 살고 있기는 한건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숨바꼭질]의 후반부는 갑자기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그대로 까발려 놓고, 그 대신 식칼과 쇠파이프를 쥐어 주며 '무섭지?'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아니, 안무섭습니다. 문정희의 섬뜩한 표정은 분명 기억에 남지만 숨어 사는 이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그것은 더 이상 공포가 되지 못합니다. 

[숨바꼭질]이 마지막까지 성수의 결벽증과 죄책감을 이용하여 성수의 집에 숨어사는 이의 정체를 숨겼다가 마지막에 '짠'하고 밝혔다면 더욱 섬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극장을 나섰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 낯선 인기척을 느낀다.

잔뜩 긴장하고 집안을 살피지만 낯선 인기척은 나의 과민반응일 뿐이다.

순간 긴장감이 풀리고 만다.

[숨바꼭질]이 그러하다.

잔뜩 긴장하고 영화를 보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맥없이 긴장감이 풀리고만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