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에픽 : 숲속의 전설] - 압도적인 영상미만으로도 만족

쭈니-1 2013. 8. 19. 11:20

 

 

감독 : 크리스 웨지

더빙 : 아만다 사이프리드(한승연), 조쉬 허처슨(정진운), 콜린 파렐, 크리스토퍼 왈츠

개봉 : 2013년 8월 7일

관람 : 2013년 8월 15일

등급 : 전체 관람가

 

 

하마터면 웅이의 첫번째 징크스가 될 뻔하다.

 

웅이와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에픽 : 숲속의 전설]의 국내 개봉일은 8월 7일. 때마침 저는 8월 8일 웅이와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을 보기 위해 연차휴가를 낸 상태였기에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을 본 후 극장으로 달려가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의 관람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기 위해서는 웅이가 학원을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어쩔수없이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주말에 보기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말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구피가 미리 예약한 이천 세라피아로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왔습니다. 결국 웅이와 약속한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러 갈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 뿐. 저는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전날의 피로로 인해 웅이에게 감기 기운이 보여서 또다시 영화 관람을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게는 한때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흥행 대박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못한다는 참 이상한 징크스였죠. 실제로 저는 2000년대 초반 흥행 대박 영화들인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실미도] 등을 어찌어찌하여 극장에서 놓치곤 했습니다. 그러한 징크스를 깨기 위해 저는 안되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영화, 특히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징크수라는 것이 사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징크스를 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상황이 자꾸 꼬여서 징크스를 만들고,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징크스는 결국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에픽 : 숲속의 전설]은 보지 못하는거예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웅이. 개봉한지 일주일이 지나자 [에픽 : 숲속의 전설]의 상영시간대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연휴 기간인 15일부터 17일 동안 저희 가족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웅이의 아쉬운 표정과 [에픽 : 숲속의 전설]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웅이에게 징크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없는 시간을 짜내서 온 가족이 함께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러 갔습니다.

 

 

무리한 일정을 잊게 만드는 환상적인 영상미

 

사실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러 극장에 간 것은 무리였습니다. 방학 막바지게 접어들은 웅이를 위해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8월이 되자마자 시작된 웅이의 감기는 무리한 일정을 짜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본 8월 15일에는 이화여대에서 <신나는 음악여행 4 :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공연을 보고 오는 길이었고, 푹푹 찌는 날씨에 구피도, 웅이도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음날에는 대학로에서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보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강원도 삼척으로 환성굴을 보러 가기로 일정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웅이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 쉬어야한다는 구피의 항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고 싶어요. 감기 다 나았어요."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웅이 앞에 구피도 결국 승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해서 우여곡절 끝에 극장에 앉아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와 웅이는 당연히 영화 속에 푹 빠져 버렸고,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구피 마저도 "이 영화는 큰 상영관에서 3D로 봤으면 정말 재미있었겠다."라며 아쉬워했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기 전에 이미 이 영화의 영상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함께쓰기를 하고 계신 Park님께서 '제대로된 걸작'이라며 이 영화에 호평을 해주셨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제 눈으로 확인한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상상 이상으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맨드레이크 일당에게 쫓기는 노드(정진운)의 모습은 3D로 봤으면 더욱 실감나게 재미있었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이 영화의 영상미는 근래 봤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뛰어났습니다. [아이스 에이지]를 통해 어린이들을 위한 코믹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었던 블루 스카이가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좋아할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시종일관 압도적인 영상미를 보여주는데,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어쩔수 없이 극장을 찾은 어른 관객들이 영화의 초반엔 느슨한 자세로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중반 쯤에는 몸을 빳빳이 곧추세우고 영화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였습니다.

 

 

영상미에 비해 스토리 라인은 아쉽다.

 

하지만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영상미에 비해 스토리 라인이 아쉽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게된 MK(한승연)가 우연히 비밀스러운 숲속의 세계에서의 모험에 빠져 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기본 설정은 뤽 베송의 애니메이션 [아더와 미니모이]에서 이미 선보인바 있습니다. 2006년에 만들어진 [아더와 미니모이]는 호기심 많은 10살 소년 아더(프레디 하이모어)가 실종된 할아버지의 비밀 지도를 따라 몸이 작아져 숲 속에 사는 미니모이 왕국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국내에선 2009년에 개봉되었고, 2010년에는 2편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에픽 : 숲속의 전설]과 [아더와 미니모이]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그런 만큼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영화 설정 자체에서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아더와 미니모이]와 겹치는 설정으로 인하여 떨어진 신선도를 색다른 영화의 전개로 극복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에픽 : 숲속의 전설]에는 그러한 색다른 영화 전개는 없었습니다. 선과 악의 대결, 반항아 노드의 성정, MK와 어버지의 화해 등등. 영화의 초반부터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영화의 전개는 멈추고 맙니다.

 

블루 스카이의 히트작인 [아이스 에이지]에 비해 어린이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줄어든 것도 아쉬움입니다. 

[에픽 : 숲속의 전설]은 달팽이 듀오 멉과 그럽을 내세워 영화의 코믹한 요소를 강조하지만, 사실 멈과 그럽은 [아이스 에이지]의 다람쥐 시크랫, 나무 늘보 시드(존 레귀자모)에 비해 코믹성이 떨어집니다. 저는 꽃봉오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님갈루의 등장에 기대를 걸었지만 님갈루 역시 제 기대감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한 코믹 캐릭터의 부재는 [에픽 : 숲속의 전설]이 어린이 관객의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실제로 [에픽 : 숲속의 전설]은 북미 흥행에서 1억 달러가 조금 넘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이는 블루 스카이가 지금까지 만든 여덟편의 영화 중에서 흥행 성적이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아무래도 어린이 관객에게 [에픽 : 숲속의 전설]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영상미는 제대로 어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1차 적으로 귀여운 캐릭터와 신나는 웃음을 먼저 느끼는 어린이 관객에게 [에픽 : 숲속의 전설]은 아무래도 재미있게 즐기는데 부족한 애니메이션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압도적인 영상미만으로도 나는 만족

 

분명 [에픽 : 숲속의 전설]은 100% 만족스러운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가 아쉽고, 어린이 관객이 즐길만한 요소가 부족한 것 역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단점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저희 가족은 [에픽 : 숲속의 전설]에 대만족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화면은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영상미만으도 저는 1시간 40분 동안 영화 속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타라 여왕이 말하던 숲의 균형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영화 속의 숲은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실제 숲은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있다면 그 속에는 죽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맨드레이크 일당의 지금까지 숲에서 해왔던 것처럼 부패됨으로서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균형이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도 있는 법이니까요. 영화에서 맨드레이크를 무조건적인 악이 아닌 숲의 균형을 위한 일원으로서의 시선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에픽 : 숲속의 전설]의 아름다운 영상미에 합격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음 영화에서는 좀더 완벽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블루 스카이의 다음 애니메이션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보고나서 웅이는 일기장에

"우리나라의 기술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라고 썼다.

아마 더빙 버전을 봤기에 웅이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인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에픽 : 숲속의 전설]을 따라오려면 아직은 멀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