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황당한 외계인 폴] - 황당하게 시작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다.

쭈니-1 2013. 6. 24. 11:56

 

 

감독 : 그렉 모톨라

주연 :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제이슨 베이트먼

 

 

웅이가 잠든 사이

 

웅이는 금요일 저녁, 학교에서 야영을 했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가족들과 떨어져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던 웅이. 그런데 올헤 4학년이 되면서 영어캠프에 이어 벌써 두번째 가족들과 떨어져 밤을 보낸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잘 땐 취침 시간을 엄수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친구들과 함께 자니,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나봅니다.

평소 주말에는 잠들기 전에는 꼭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한참동안 '자기 싫다'며 뒤척이다 어렵게 잠이 들던 웅이. 그런데 지난 토요일에는 전날을 친구들과 학교에서 야영을 했기 때문인지,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새근 새근 잠을 자더군요. 그런 웅이의 모습을 처음 보기에 구피와 저는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암튼 웅이가 일찍 잠이 든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자유 시간을 얻은 저는 늦게까지 거실에서 뒹굴거리다가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는 두편의 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못본 두편의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OCN에서 방영하는 [황당한 외계인 폴]과 또다른 하나는 채널CGV에서 방영하는 [시체가 돌아왔다]입니다. 하필 밤 10시라는 같은 시간에 두 영화가 방영했기에 저는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결국 제가 고른 영화는 [황당한 외계인 폴]이었습니다.

 

 

 

사이먼 페그의 영화

 

[황당한 외계인 폴]은 전형적인 사이먼 페그의 영화입니다. 사이먼 페그가 누구냐고요? 아마 최근 개봉했던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말 많은 괴짜 과학자 스코티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좀비 영화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시체들의 새벽]과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를 코미디로 풀어 놓은 영화입니다. 좀비 영화라고 한다면 공포, 혹은 [월드워Z]처럼 재난 영화의 형식을 띄는데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그러한 좀비물을 코미디로 만듬으로서 좀비 영화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사이먼 페그의 진가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 외에도 [뜨거운 녀석들]에서도 발휘됩니다. [뜨거운 녀석들]은 런던의 열혈 경찰이 범죄율 제로인 시골 마을로 좌천되며 벌어지는 코믹 액션 영화입니다. 양동근과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던 우리 영화 [마지막 늑대]와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을 영화입니다.

좀비 영화와, 버디 액션 영화를 황당한 코미디로 버무렸던 사이먼 페그의 영화들. 이번 [황당한 외계인 폴]에서는 SF 영화를 다시한번 사이먼 페그 식의 코미디로 풀어 놓습니다.

 

 

외계인? 뭐 별거있어! 우리와 똑같지 않을까?

 

[황당한 외계인 폴]은 미국에서 열리는 SF 코믹콘에 참가하기 위해서 여행길에 오른 영국의 괴짜 친구들 그램(사이먼 페그)과 클라이브(닉 프로스트)의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얼핏 철 없는 어른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람은 미국 정부가 외계인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의 중심을 여행하며 생의 최고의 한때를 보냅니다.

그런데 아뿔싸... 진짜 외계인을 만날 줄이야... 지구생활이 어느덧 60년인 외계인 폴(더빙 : 세스 로건)은 각종 음담패설과 욕으로 그램 일행의 여행에 끼어듭니다. 여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루스(크리스튼 위그)와 폴을 뒤쫓은 정체불명의 정부요원 로렌조(제이슨 베이트먼)까지 가세하며 그램과 클라이브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폴의 캐릭터입니다. [E.T.]로 대표되는 착한 외계인과 [에이리언]으로 대표되는 무시무시한 외계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폴은 마치 그램,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약간은 철이 없는 그냥 보통의 인간처럼 보입니다. [황당한 외계인 폴]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그러한 폴의 캐릭터에서 시작됩니다.

 

   

 

황당하게 시작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다.

 

제목 그대로 '황당한 외계인 폴'을 만나며 시작된 이상한 여행길.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폴을 대하는 클라이브의 행동입니다. 클라이브는 그램과 함께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며, SF 코믹콘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여행까지 온 SF 작가입니다.

하지만 외계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야.'를 외치던 클라이브는 막상 외계인인 폴을 만나자 기절을 하고, 기절한 후에는 폴을 공격하며 적대시합니다. 자신이 믿었던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자 오히려 그러한 존재를 부정하려 하는 클라이브.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적대심, 혹은 두려움은 외계인을 소재로한 영화 뿐만 아니라 슈퍼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황당한 외계인 폴]은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맹신적인 기독교 신자들과 승진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미국의 정부 요원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고니 위버는 [에이리언]의 여전사를 살짝 비튼 이 영화가 가진 풍자 정신의 최고 절정입니다.

하지만 [황당한 외계인 폴]은 이렇게 황당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60년전 자신을 구해준 댓가로 미치광이 소리를 들으며 삶이 통째로 망가진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황당한 외계인 폴]은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런 훈훈한 마무리가 있기에 [황당한 외계인 폴]은 제게 있어서 토요일 밤의 자유에 어울리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