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전체 흥행 순위를 보면 부동의 1위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이고, 2위 역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입니다. 그리고 3위는 [어벤져스], 4위는 [다크 나이트]입니다. 제가 이렇게 갑자기 북미 흥행 순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북미 흥행을 이끌고 있는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 때문입니다.
[어벤져스], [다크 나이트]는 물론 7위에 기록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 14위에 기록된 [스파이더맨], 그리고 17위에 올라와 있지만 아직도 흥행 성적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아이언맨 3]까지... 모두 코믹스의 영웅들을 내세운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추세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예매율 80%를 훌쩍 넘으며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우리 영화에 한가닥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비롯한 웹툰 영화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고보니 처음 [아파트]가 개봉할 때에는 웹툰을 원작으로한 영화들이 낯설었는데, 미국의 코믹스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제는 오히려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끌고 있네요.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이 무엇이 있는지...
웹툰 영화의 선구자 강풀도 실패를 맛보다.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를 정리함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웹툰 작가인 강풀입니다. 그의 웹툰은 무려 6편이나 영화화되었으며,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영화도 여러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웹툰이 처음부터 영화화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풀의 웹툰 중에서 가장 먼저 영화화된 [아파트]가 영화화에 실패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강풀의 웹툰 <아파트>는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을 표방한 작품입니다. 홀로 아파트에 살고 있던 한 남자가 건너편의 아파트에서 같은 시간에 동시에 불이 꺼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건너편의 아파트를 감시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건너편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의 자살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그는 같은 시간에 동시에 불이 꺼지는 것과 자살 사건이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아파트>는 그저 평범한 공포 웹툰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파트라는 울타리에 갇힌 현대인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무서운 것을 싫어하면서도 <아파트>는 가슴 찡함을 느끼며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아파트>가 영화화되면서 설정이 중요 설정이 바뀌었습니다. 안병기 감독은 일단 다른 공포 영화처럼 주인공을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성을 교체하고 고소영을 캐스팅하였습니다. 그럼으로서 웹툰에 짙게 깔려 있던 멜로 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그냥 '아파트'를 무대로한 평범한 공포영화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아파트]의 흥행 실패 때문일까요? 강풀의 웹툰 중에서 두번째로 영화화된 [바보]는 상영관을 잡지 못해서 몇개월 동안 영화사 창고에 박히는 굴욕을 맛봅니다. 차태현과 하지원이라는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웹툰 소재의 영화가 낯설은 국내 배급사에게 [바보]는 흥행이 안될 영화처럼 보인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개봉한 [바보]는 그러나 잔잔한 흥행 돌풍을 일으킵니다. 코믹 배우로 익숙한 차태현의 '바보' 연기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며 창고 영화라는 굴욕을 단숨에 씻어버린 결과입니다.
동네에 한명쯤은 있을법한 바보 승룡. 하지만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동생 지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10년전 유학간 짝사랑 지호를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권 감독은 웹툰 <바보>를 영화화함에 있어서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선택합니다. 아파트가 웹툰의 설정을 상당 부분 바꾼 것에 비해, 김정권 감독은 웹툰을 최대한 고스란히 살려 영화 속에 담으려 노력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영화는 웹툰의 방대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잘 살려내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김정권 감독의 선택이 안병기 감독의 선택보다는 옳았다는 점입니다.
강풀의 웹툰 중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며 만들어진 영화... 아마도 [순정만화]일 것입니다. 강풀의 웹툰 <순정만화>는 연상 연하 커플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서른살 노총각과 여고생의 사랑, 스물아홉 여성과 스물두살 청년의 사랑이 각기 진행되면서 그들의 풋풋한 이야기가 웹툰을 읽는 제게도 훈훈하게 전해졌었습니다.
류장하 감독은 <순정만화>를 영화화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포커스를 맞춘 것은 웹툰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유지태, 이연희, 채정안, 강인이라는 황금 캐스팅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봐도 [순정만화]의 캐스팅은 웹툰 <순정만화>와 너무 잘 어울려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싱크로율이 아닙니다. 웹툰에서 보여줬던 훈훈한 기분이 영화에서는 조금 반감된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캐릭터를 조금씩 완성하는 웹툰과는 달리 시간적 제한이 있는 영화의 한계가 [순정만화]에서 드러난 것이죠.
지금은 강풀 시대... 강풀 웹툰의 영화화 성공
이대로 강풀 웹툰의 영화화가 스쳐지나가는 유행의 바람이 될 뻔한 것을 구한 것은 다름아닌 [그대를 사랑합니다]입니다. 노년의 사랑을 담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개봉 당시 흥행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고, 결국 흥행 대박이라는 선물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고집불통 노인 김만석(이순재)와 동네에서 폐지를 주우며 근근히 살아가는 송이뿐(윤소정), 그리고 치매에 걸린 아내(김수미)를 돌보며 사는 장군봉(송재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들이 펼치는 노년의 가슴 아픈 사랑은 당시 극장을 눈물 바다로 만들 만큼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노년의 사랑이라는 소재 때문에 흥행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라면 [이웃사람]은 청소년관람불가라는 등급의 핸디캡을 딛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서울의 강산맨션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죽음. 살인마는 두번째 희생양을 찾고,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이웃사람'들의 활약이 스릴 넘치게 그려집니다. 김휘 감독은 강풀의 원작 웹툰 <이웃사람>을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캐릭터 묘사에 중점을 뒀습니다. 강풀 웹툰의 특징이라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의 향연인데,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흥행 성공 이후 그러한 캐릭터의 진가를 김휘 감독이 눈치챈 것이죠.
그러한 강풀 웹툰의 진가는 [26년]에서도 발휘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의 주범인 전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26년]은 민감한 소재 탓에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근현 감독을 주축으로 진구, 한헤진, 임슬옹 등 주연배우들과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모은 일반인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개봉한 [26년]은 전국 300만이 조금 안되는 흥행성적을 올렸습니다. 이는 강풀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입니다. 이제 강풀의 웹툰은 영화 소재의 블루칩으로 평가되고 잇으며, 변영주 감독이 <조명가게>를 영화화하고 있으며, 좀비를 소재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당신의 모든 순간>도 영화로 기획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강우석 감독은 지금 웹툰과 사랑 중
강풀은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선구자의 역할을 한다면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가지고 있는 흥행의 마술사 강우석 감독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시작으로 90년대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2000년대에는 [공공의 적], [실미도] 등 수 많은 흥행작을 연출했던 그는 [이끼]를 시작으로 웹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윤태호의 웹툰을 박해일, 정재영 주연의 영화로 옮긴 강우석 감독은 웹툰이 가지고 있는 잔혹 스릴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면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코믹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섞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끼]는 마을의 절대 권력인 천용덕 이장을 연기하기 위해 노인 분장을 한 정재영의 변신과 원작 웹툰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박해일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약간 바꾸는 과정에서 웹툰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이영지(유선)가 왜곡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풀의 웹툰에서 느끼지는 사람의 정과는 다른,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웹툰의 영화화를 강풀에서 다른 작가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셈입니다.
[이끼]를 통해 웹툰의 매력을 느낀 강우석 감독은 [글로브]로 잠시 숨을 고른 이후 [전설의 주먹]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종규의 글과 이윤균의 그림의 협작으로 완성된 웹툰 <전설의 주먹>은 사상 최고의 싸움꾼을 가리기 위한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소재로 남자들의 거친 세계를 보여줬습니다.
그러한 <전설의 주먹>을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강우석 감독은 주인공인 임덕규(황정민), 이상훈(유준상), 신재석(윤제문)의 학창 시절에 포커스를 맞추며 그들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전설의 주먹]을 연출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연출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외의 웹툰 소재 영화들
이 외에도 2011년 6월에 개봉한 [프리스트]는 형민우 작가의 웹툰 <프리스트>를 할리우드에서 SF 공포영화로 만든 경우입니다. 하지만 웹툰과 영화의 내용이 거의 달라서 국내 흥행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이끼]의 원작자인 윤태호의 웹툰 <미생>도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 캐스팅을 마치고 촬영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바둑 프로기사를 꿈꾸던 주인공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한 뒤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황미나 작가의 <보톡스>,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 등이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하니 한동안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의 돌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그외이야기들 > 생각에 꼬리를 무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의 공룡박사를 위한 공룡 영화들 (0) | 2013.06.19 |
---|---|
[백악관 최후의 날]의 개봉으로 생각해본 미국 영화 속의 북한 (0) | 2013.06.12 |
최신 핸드폰으로 바꾼 기념으로 엮어본 전화 소재의 영화들 (0) | 2013.06.05 |
류현진의 완봉 역투로 생각해본 야구 영화들 (0) | 2013.05.30 |
[유어 하이니스] 조회 폭주로 알아본 '포브스'의 경제적 가치가 높은 배우들 (0) | 2013.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