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최승호
주연 : 마동석, 이승연, 민지현
2011년 [도가니], 2012년 [부러진 화살], 2013년 [노리개]
2011년 9월, 충격적인 소재의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바로 [도가니]입니다.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4년 동안 청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벌어진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도가니]는 엄청난 흥행 열풍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러한 흥행은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재조사로 이어져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영화적 재미보다는 실제 사건에 대한 공분을 불러 일으킨 [도가니]의 예상하지 못한 흥행 성공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2012년 1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하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사회적 강자에 의해 사회적 약자가 희생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의 뒤를 이어 [노리개]가 2013년 4월에 개봉했습니다. [노리개]는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 장자연씨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로 개봉전부터 연예계에 만연한 성상납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소재로 삼은 탓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노리개]가 [도가니], [부러진 화살]과 비슷한 점
일단 [노리개]는 앞선 영화들... 즉 [도가니], [부러진 화살]과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은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띄고 있는 점이 그러합니다. 법이라는 것이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 법 만큼 불평등한 것도 없습니다.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자들은 능력있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의 헛점을 이용하거나, 뒷거래를 통해 죄의 댓가를 받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노리개]는 바로 그러한 불평등한 법의 실태를 관객들에게 까발리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의는 승리한다'는 영화의 논리는 이들 영화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도가니]에서도, [부러진 화살]에서도, 그리고 [노리개]에서도 힘 없고, 억울한 이들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결코 승리하지 못합니다. 정의가 패배하는 부조리함을 목격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나서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리개]가 제2의 [도가니]가 되지 못한 이유
하지만 흥행 성적만 놓고 본다면 [도가니]는 466만, [부러진 화살]은 343만을 기록한데 반에 [노리개]는 현재까지 16만명으로 거의 흥행 참패 수준입니다. 왜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보며 분노했던 관객들이 [노리개]를 외면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소재의 선정성입니다.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아이들이 희생자라는 점에서 선정적이라기 보다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자연 자살 사건은 연예계과 정재계, 언론인 사이에 뿌리 깊은 성상납 문제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리개] 측도 그러한 점을 감안했는지 장자연 자살 사건과 선을 그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장자연 자살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워낙 많기 때문에 선을 긋는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장자연 자살 사건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재의 선정성은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 시점에서 그러한 분노를 갉아먹습니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이 가지고 있는 힘이 관객이 느끼는 분노인데, [노리개]는 소재의 선정성 때문에 그러한 부분이 약했던 셈입니다.
오히려 영화적 각색이 문제
하지만 [노리개]는 분명 사회적 약자인 스타 지망생들이 사회적 강자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며 소재의 선정성을 극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적 각색 때문입니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적 각색이 크게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리개]는 처음부터 장자연 자살 사건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며 줄을 그었기 때문에 [도가니], [부러진 화살]보다는 영화적 각색에서 자유롭습니다.
영화적 각색이 자유롭다는 것은 얼마든지 영화의 재미를 위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많은 부분들을 추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성폭행을 당한 과거 때문에 정지희(민지현) 자살사건을 맡은 여검사 김미현(이승연)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으며, 1인 미디어를 지향하며 물불 안가리고 정지희 자살 사건에 매달리는 열혈 기자 이장호(마동석)도 가능해고, 죄책감 때문에 마지막 순간 재판장에 나와 김미현 검사의 히든 카드가 기꺼이 되어 주는 톱스타 고다령(이도아)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화적 각색에 의해 태어난 캐릭터들로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분들이 오히려 영화의 사실감을 훼손합니다. 사실감이 훼손되니 관객이 느낄 분노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화적 재미냐, 사실적인 각색이냐, 명확하게 선택했어야...
결국 [노리개]는 제2의 [도가니]는 되고 싶었지만, 장자연 자살 사건이라는 소재가 부담스러워 선을 그었던 것이 흥행 실패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노리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제2의 [도가니]가 되고 싶었다면 차라리 스스로 장자연 자살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밝히고, 영화의 사실적인 부분을 강화함으로서 논란에 대한 정면 돌파를 시도했어야 했습니다.
장자연 자살 사건이 부담스러웠다면 아예 그 사건이 연상되는 부분을 완벽하게 지우고 영화적 재미만을 강조하여 연예계 성상납을 소재로한 상업 영화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리개]는 이도 저도 아닙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연예계 성상납이라는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들지도 못한채, 제2의 [도가니]는 되고 싶지만, 장자연 자살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밝히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자세가 연예계 성상납이라는 분명 관객들이 분노해야할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 놓고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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