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알렉산더] - 영웅의 숙명을 타고 났으나, 인간의 길을 선택한 영화.

쭈니-1 2009. 12. 8. 17:42

 



감독 : 올리버 스톤
주연 : 콜린 파렐,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안소니 홉킨스
개봉 : 2004년 12월 30일
관람 : 2004년 12월 31일


언제부터인지 한해의 마지막을 영화로 마무리짓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한해도 빠지지 않고 마지막 날에 영화를 보기는 참 어려운 일이죠.
2001년 12월 31일을 마무리지어준 영화는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였습니다. 2002년엔 [품행제로], 2003년은 [더 캣]이었죠. 모두 한결같이 재미있었던 영화였지만 그래도 2001년에 본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한해를 마무리해준 영화였습니다. 그 잊혀지지 않는 스펙타클, 그리고 2편과 3편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여서 잠못이루던 그 멋진 마지막 밤. 아마 평생 잊지못할 기억입니다.
그리고 어느해보다도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던 2004년의 마지막 날. 행운도 따라줬는지 KTF이벤트에 당첨되어 삼성동 메가박스의 영화 관람권을 획득한 저는 어떤 영화로 2004년을 마무리지을지 고르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새로 개봉된 [알렉산더]와 [내셔널 트레져]도 보고 싶었고, 언제나 영화 고를때엔 빠지지않고 그 목록에 올랐으나 신작에 밀려 번번히 볼 수 없었던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지난주에 그토록 보고 싶었으나 결국 보지 못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폴라 익스프레스]까지... 무려 5편의 영화가 절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결국 선택한 영화는 [알렉산더]입니다. 그 이유는 2001년의 그 완벽했던 밤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억 4천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갔다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알렉산더]. 그 천문학적인 제작비만큼이나 스펙타클은 굉장할 것이며, 올리버 스톤이라는 믿음직한 이름도 [알렉산더]를 선택하는데 한몫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의 재앙과도 같았던 흥행 실패와 국내 네티즌들의 악평들이 절 머뭇거리게 했지만 전 제 선택을 믿었습니다. 분명 [알렉산더]는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그랬던것처럼 2004년의 마지막 밤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줄 것이라고... 그리고 [알렉산더]는 그러한 제 믿음에 보답해줬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더].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리오, 2004년을.


 



알렉산더... 20세의 나이에 그리스의 왕위에 오른후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지기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이름을 떨친 그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작업임에 분명합니다. 이 엄청난 작업에 헐리우드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도전을 했습니다. 그는 2억 4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기원전 300년경 유럽을 완벽하게 재현했으며, 알렉산더의 8년간의 대장정을 170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완벽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보는 순간 모두들 스펙타클에 대한 기대감에 빠져들것입니다. [반지의 제왕]보다 위대하고, [트로이]보다 거대한 완벽한 스펙타클을... 분명 [알렉산더]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습니다. 환타지의 세계를 그렸던 [반지의 제왕]과 호머의 일리아드라는 신화를 원작으로 했던 [트로이]와는 달리 기원전 356년에서 323년까지 실존했던 인물인 알렉산더를 영화화함으로써 허구에 의존하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스펙타클을 갖출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스펙타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대신 이 영화는 알렉산더의 인간적인 고뇌에 모든것을 맞춤으로써 스펙타클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던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펙터클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것은 영웅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스펙타클보다 더욱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원작에 충실함으로써 환타지속의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했으며, [트로이]가 원작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헐리우드적인 영웅상을 보여줬다면, [알렉산더]는 '과연 알렉산더는 위대한 영웅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내면을 잡아내며 영웅의 진정한 모습에 집착을 합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반지의 제왕], [트로이]의 재미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군과 페르시아군의 거대한 전쟁씬은 스펙타클이 펼쳐지기도 전에 흐지부지 끝나버립니다. 4만7천의 병력으로 20만 대군의 페르시아군을 대파했다는 이 전설과도 같은 대전투를 올리버 스톤을 정교하게 표현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것입니다. 알렉산더의 8년간에 걸친 정복 전쟁 역시 스펙타클한 장면들보다는 점차 파멸되어가는 인간 알렉산더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모든 것을 맞춰집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으로는 정말 대단한 도전을 한셈입니다. 2억 4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가지고 흥행에 도움이 될만한 스펙타클을 포기하다니... 그로인해 이 영화의 제작사는 엄청난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겠지만 관객의 입장으로는 그저 위대한 정복자인줄만 알았던 알렉산더의 진정한 내면을 보는 값진 선물을 얻었으니 최소한 제겐 행복한 도전이었던 셈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 카네모리 요시노리 감독의 1997년 애니메이션 [알렉산더]를 보았었습니다. 한국계 애니메이터인 피터 정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국내에서도 비디오로 소개된 이 애니메이션은 신화와 SF적인 요소의 교묘한 조화로 인하여 정말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카네모리 요시노리 감독의 [알렉산더]와 맞물려 있습니다. 카네모리 요시노리 감독의 [알렉산더]를 보며 애니메이션으로써의 상상력에 감탄을 했던 저는 그 상상력이 거대한 블럭버스터인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로 완벽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음란한 밀교의 여교주처럼 표현되었던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는 영화로 다시 태어나며 안젤리나 졸리를 만남으로써 완벽한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캐릭터로 변신하였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그 비중이 작아 실망스러웠던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왕은 발 킬머와 함께 아들의 위대한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는 불운의 영웅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으나 언제나 아버지의 견제만을 받았고, 너무나도 큰 야망에 불타있던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간 알렉산더가 콜린 파렐에 의해서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니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적인 상상력과 캐릭터를 완벽하게 실사 영화로 옮겨놓은 셈입니다. 물론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알렉산더]를 만들기전에 카네모리 요시노리 감독의 [알렉산더]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카네모리 요시노리 감독의 [알렉산더]를 먼저보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를 본 저로써는 이 완벽한 두 영화사이의 연결고리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 알렉산더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그려냅니다.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로스(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스의 사촌동생으로 나옵니다.)의 관계는 알렉산더와 헤파이선의 동성애적인 관계에 효과적으로 사용되며, 헤라클레스의 비운했던 최후는(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만을 봤던 저로써는 헤라클레스가 그토록 비운의 영웅인줄 몰랐습니다.) 알렉산더의 최후와 맞물립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을 했던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필립왕에게 견제당하고 올림피아의 그늘에 평생 괴로워했던 알렉산더의 가족관계를 암시하며, 신들에게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중벌을 받았던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영웅이라는 숙명으로 평생 불안과 괴로움에 살아야했던 알렉산더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신화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렉산더라는 캐릭터의 재해석으로 사용된 이 영화는 그럼으로써 좀 더 풍부한 상상력의 성찬을 관객에게 선물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력의 성찬을 만끽하기위해선 관객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버려야하며,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로써의 재미마저 포기해야합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분명 [반지의 제왕]을 넘어설 수 있는 영화적인 소재와 자본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인간 알렉산더의 재발견에 쏟아붓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올리버 스톤 감독이 그토록 이야기하고 싶었던 알렉산더는 어떤 인물일까요? 아버지에겐 사랑보다는 질투와 견제만을 당했으며, 어머니에겐 너무 과한 사랑과 함께 어머니의 권력욕에 이용되어야했던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해야했던 가녀린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도피와 아버지의 못다이룬 야망을 이뤄내겠다는 욕심에 시작된 원정이 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뤄지며 누군가 자신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세상의 그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고 싶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힌 불안정한 인간이었습니다. 헤파이선을 사랑하지만 동성애라는 사회적인 시선에 그 사랑을 자신만만하게 정복하지 못하며(전 세계를 정복했을지도 모르는 알렉산더이지만 사회적인 편견만은 정복할 수 없었나봅니다.)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괴로워했던 나약했던 남자였습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발견해낸 알렉산더는 이처럼 위대한 정복자가 아닌 철저하게 불쌍한 인간이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이 의외의 전개에 당혹스러웠으면서도 전혀 예상치못한 새로운 영웅의 단면을 지켜보는 재미로 인하여 3시간이라는 시간이 언제갔는지도 모르게 영화속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섰지만 한동안 이 영화의 모든것이 쉽게 잊혀지지않았습니다. 영웅으로써의 당당함보다는 가녀린 인간으로써의 불안한 모습을 더 자주 보여줬던 콜린 파렐의 그 섬세한 연기, 기원전 300년경의 그리스 여성의 의상을 입고 있으나 결코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안젤리나 졸리의 그 당당한 연기. 그리고 한동안 잊혀졌던 발 킬머의 그 이중적인 연기까지...(단 역사책 읽어주듯이 영화의 상황을 설명해주던 안소니 홉킨스의 나래이션은 영화의 대한 집중을 자꾸만 방해했었습니다.) 이 완벽한 연기와 새로운 역사의 재해석은 헐리우드의 거대한 자본력이 최근에 들어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흥행적인 효과가 아닌)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P.S.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처럼 3부작으로 만들어졌으면 더욱 완벽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부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2부는 페르시아 정복후 동방 정복에 나서기까지의 이야기를, 3부는 알렉산더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제가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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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하루
본 사람들이 대부분 재미없다고 하길래 역시 그렇군요. 스펙타클이 없어서 그랬나보군요 ㅎㅎ 하지만 전 올리버스톤 감독이라면,, 하는 생각을 해왔기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쭈니님의 글을 보니 더 보고 싶어지네요.  2005/01/04   
쭈니 분명 대중적인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의 악평은 조금 수긍이 안되네요. 제가 보기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마음을 열고 본다면 분명 알렉산더라는 가여운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는데... ^^  200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