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오덕환
주연 : 임은경, 은지원
개봉 : 2004년 12월 24일
관람 : 2004년 12월 21일
올해는 가수들이 영화배우로의 변신을 유난히도 많이 시도했었습니다. [돌려차기]의 김동완, [발레 교습소]의 윤계상, [DMZ,비무장지대]의 김정훈, 그리고 [여고생 시집가기]의 은지원까지... 아무래도 노래부르기가 본업이기에 영화 배우로의 외도를 시도한 그들의 연기력은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연예인이 가수와 연기자를 동시에 해내고 있는 홍콩과 일본의 경우처럼 만능 엔터테인먼트의 시대는 어쩔수없는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만능 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영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능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사실 그 이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그 후 만능 엔터테인먼트의 계보가 끊겼다가 90년대에 임창정이 바통을 이어나갔었죠. 그러나 임창정이 가수를 포기하고 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한후 우리나라의 만능 엔터테인먼트의 계보는 또다시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처럼 가수들의 영화배우로의 외도를 저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색한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는 것은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썸머타임]의 김지현은 심해도 너무 많이 심했었죠) 참고 기다려준다면 언젠가는 임창정의 뒤를 잇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인먼트를 만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고생 시집가기]에서 은지원의 연기는 상당히 어색하지만 참고 넘어가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지원의 연기를 참고 넘어간다하더라도 [여고생 시집가기]는 모든 면에서 도저히 좋게 평가할래야 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능력한 코미디'입니다. 코미디 영화이면서 도저히 웃기지 않는 이 무능력한 코미디 영화는 연말 극장가에 우리 영화가 부진을 면치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영화로 연말을 맞이하여 일제히 개봉되는 헐리우드의 오락 영화와 어떻게 대적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하기만 합니다.
[여고생 시집가기]의 시작은 꽤 좋은 편입니다. 우리의 옛날 옛적 이야기인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차용한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어쩌면 정말 색다른 코미디 영화 한편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불과 몇분만에 산산히 깨어지고 맙니다. 평강공주가 바보온달과 결혼하겠다며 우는 장면에서의 어색한 특수효과와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는 처음부터 절 불안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 영화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꺼내놓고는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채 시종일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로 관객들을 웃기려듭니다.
그렇담 이 영화는 애초에 뭐하러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꺼내놓았을까요? 제 생각에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단지 어린 부부를 엮어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어린 신부]의 흥행성공이후 마치 유행처럼 번져버린 어린 부부 이야기는 [여고생 시집가기]를 거쳐 [제니, 주노]에 이르기까지 점점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린 신부]는 어린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으면서도 섹스코드를 살짝 빼버림으로써 유교 사상이 뿌리깊은 우리 관객들의 비난을 살짝 피해갔습니다. 그러나 [제니, 주노]에서는 15살 커플의 임신을 소재로 택하며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아직 영화가 일반 관객에게 공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제니, 주노]가 꾸준히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막상 영화가 개봉하고나면 그 논쟁의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고생 시집가기]는 바로 어린 부부라는 유행에는 편승하면서도 논쟁은 피해가는 비겁한 방법으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방패막기로 설정한 것입니다.
안평강(임은경)은 16세 생일이 지나기전에 박온달(은지원)과 합방을 하지 않으면 죽을 운명입니다. 평강은 죽기살기로 온달을 유혹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관객들은 16세의 어린 소녀의 섹스어필을 목격하게 될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논쟁거리이지만 [여고생 시집가기]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하여 '그냥 웃고 넘기라'며 관객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평강에게 섹스 아니면 죽음이라는 운명을 짊어지게 함으로써 16세 소녀의 섹스어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린 신부]처럼 논쟁을 피해가지도 못하고, [제니, 주노]처럼 논쟁의 정가운데를 뚫고 가지도 못하는 [여고생 시집가기]의 이 비겁한 변명은 무능력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네요.
그러나 뭐 좋습니다. 어차피 코미디는 코미디일뿐... 대상이 너무 어리다고해서 이렇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코미디 영화가 웃기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래야 용서할 수 없는 무능력의 극치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오버 연기로 관객들을 웃기려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웃기는 오버 연기를 할만한 코미디 연기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배우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문제점입니다.
먼저 임은경은 연기는 최악중에서도 최악입니다. 그녀가 TTL광고의 신비소녀로 나올때부터 그녀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엄청난 재앙과도 같은 영화에서조차 임은경만은 좋았습니다. [품행제로], [인형사]를 거치며 점차 TTL의 신비소녀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녀의 연기력에는 많은 점수를 줄수는 없습니다. [인형사]에서처럼 무표정한 연기가 가장 어울리는 것은 그녀의 연기력이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고생 시집가기]는 처음부터 임은경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연기변신도 좋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변신은 그녀의 연기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웃기지도 않는데 혼자 오버 연기를 하며 관객들을 웃기려드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다못해 나중에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오덕환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캐스팅했을까요? 영화를 찍으면서 그녀의 오버 연기를 보며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하기는 했을까요? 제가 보기엔 완벽한 미스 캐스팅으로 보입니다.
그녀뿐만이 아닙니다. 은지원의 연기는 영화를 보기전부터 각오하고 있었기에 참을만 했습니다.(게다가 온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버안하는 캐릭터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은지원까지 오버하고 나섰다면 어쩌면 참지 못했을지도...) 하지만 평강의 부모역을 맡은 배우들의 안웃기는 오버 연기는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등장한 노칠수(박노식)는 기대와는 달리 X침만으로 웃기려드니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X침도 한두번이지.) 웃기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도 없으면서 웃기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관객을 우롱하는 겁니다.
영화를 보며 제가 몇번이나 웃었는지 세어보았습니다. 노칠수의 첫번째 X침 장면에서 한번 웃었고, 어디에서 웃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장면에서 두번 웃었습니다. 10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겨우 세번 웃다니... 올해 최악의 코미디 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처참한 성적입니다. 게다가 영화를 보며 내가 몇번이나 웃었는지 세어보았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했다는 증거이겠죠. 다른 곳도 아니고 극장에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니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계속 '무능력하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미디 영화이면서 관객을 웃기지 못한 영화 자체도 무능력하고,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도 무능력했으며, 이 영화가 장편 영화 데뷔작인 오덕환 감독의 연출력도 무능력했습니다. 관객의 웃음이 언제 어떻게 터져나올지 파악하지도 못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무능력했고, 유행에 편승하면서 논쟁은 피해가려고만한 기획 자체도 무능력했습니다.
무능력은 죄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키워나간다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능력이 지나치면 그건 죄입니다.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 이런 대책없이 무능력한 영화가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에 얼마나 폐를 끼치는지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무능력은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오덕환 감독님... 다음부터는 능력을 키운후 차기작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관객은 당신의 능력을 즐기기위해 존재하는것이지, 당신의 능력을 키워주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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