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도혁
주연 : 이성재, 김현주
개봉 : 2004년 12월 30일
관람 : 2004년 12월 28일
2004년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많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몸짱', '얼짱'이었습니다. 몇달전 호기심에 접속하게된 '톱짱'이라는 사이트에서 일반인들이 자신의 몸과 얼굴을 마음껏 뽐내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죠. 예전에는 가리기 바빴던 부분들을 이제는 아주 공식적으로 노출을 시키며 오히려 자랑하는 신세대들의 당당함을 보며 저는 진정한 '몸짱', '얼짱'은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당당하게 보여주는 그들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신석기 블루스]라는 아주 촌스러운 제목의 이 영화는 징그럽게도 못생긴 추남을 영화의 정면에 내세웁니다. 모든 영화들이 얼짱, 몸짱 배우들을 캐스팅하기에 바쁜 이 시대에 이 영화는 오히려 번듯하게 생긴 이성재를 사정없이 망가뜨리며 관객들을 웃기려 듭니다.
이것이 바로 [신석기 블루스]의 가장 커다란 매력입니다. 과연 우리 영화를 통털어서 이렇게 못생긴 캐릭터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 있었습니다. 얼마전 작고하신 코미디언 이주일이 주연을 맡은 영화(제목이 기억 안납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그런 영화 제목은 없다는 군요.)가 있군요. 그렇다면 [신석기 블루스]는 20여년만에 나온 추남 로맨틱 코미디의 뒤를 잇는 영화입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의 지위를 확보합니다.
[신석기 블루스]는 얼짱에 몸짱에 능력짱, 돈짱인 변호사 신석기(이종혁)가 우연한 사고로 생년월일도, 이름도 같은 얼꽝에 몸꽝에 능력꽝, 돈꽝인 별볼일 없는 변호사 신석기(이성재)와 몸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로맨틱 코미디와 화장실 코미디를 적절하게 뒤섞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너무나도 잘난 신석기가 너무나도 못난 신석기의 몸에 들어가며 우왕좌왕하는 소동들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못난 신석기를 연기한 배우가 이성재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김도혁 감독의 절묘한 캐스팅이 능력을 발휘합니다. 잘난 신석기가 못난 신석기로 몸이 뒤바뀌듯이, 잘난 이성재가 못난 신석기라는 캐릭터로 변신함으로써, 몸이 뒤바뀐다는 말도 안되는 영화의 소재를 자연스럽게 관객이 받아들이게 유도합니다.
분명 김도혁 감독은 정말로 못생긴 배우를 캐스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괜한 분장을 위해 불필요한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외모로 따진다면 당연히 잘난 신석기가 마땅한 이성재에게 뽀글 파머와 눈에 거슬리는 뻐드렁니, 그리고 반쭉 밀어버린 눈썹을 통해 못생긴 신석기로 변신시킨 겁니다.
그럼으로써 김도혁 감독이 얻은 것은 두가지입니다. 이성재의 변신을 통한 매스컴의 관심과 자연스러운 로맨틱 코미디와 화장실 코미디의 접목입니다. [공공의 적]에서 예상치 못한 악당으로 출연한 이성재는 [신석기 블루스]에서도 절세추남으로 변신하며 우리나라의 꽃미남계 남성 배우중에서 가장 독특한 연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스컴의 관심을 받아내기에 충분했죠. 게다가 이 영화의 화장실 유머들은 이성재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존재 덕분에 로맨틱 코미디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잘 조화됩니다. 아무리 못생기게 변장을 해도 이성재는 이성재이니 그가 아무리 방귀를 끼고, 설사를 해도 관객들은 웃고 넘어갈 수 있는겁니다. 만약 정말로 못생긴 배우가 했다면 아마도 이 영화의 로맨스는 화장실 코미디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버렸을 겁니다.
김도혁 감독의 절묘한 캐스팅의 묘미는 김현주와 그밖의 조연 배우들에서도 이어집니다. 특히 김현주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분명 이성재는 모험에 가까운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한 축인 여성 캐릭터는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캐스팅으로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 캐릭터 둘다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무모하죠. 그런 의미에서 김현주의 캐스팅은 아주 딱이었습니다. 비록 영화보다는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이지만 [파란만장 미스김 10억만들기]라는 TV드라마에서 얻은 약간은 엉뚱하지만 그래서 귀엽고, 왠지 안아주고 싶은 갸날픈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펴낼수있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김현주의 이미지는 [신석기 블루스]의 서진영이라는 캐릭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김도혁 감독이 여성 캐릭터만큼은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는 반증이죠.
조연 배우들 역시 이성재와 김현주를 받쳐주기엔 적격이었습니다. 그중 신이의 연기는 역시 멋졌습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역할을 100퍼센트 이상 발휘하는 신이의 코미디 연기는 이젠 식상할만도 한데 여전히 웃기고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이성재와 김현주의 뒤를 완벽하게 받쳐주며 감초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김도혁 감독은 신인답지 않게 코미디 영화의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완벽한 캐스팅을 통해 영화의 재미를 최대한을 끌어올립니다. 대부분의 신인 감독들이 배우의 명성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김도혁 감독의 통찰력있는 캐스팅은 분명 대단한 능력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완벽한 캐스팅을 이루어냈으면서도 정작 영화는 중간 그 이상은 해내지 못합니다.
못생긴 주인공을 통한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출발과 이성재라는 배우의 변신에 의한 로맨틱 코미디와 화장실 코미디의 완벽한 조화, 게다가 김현주는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주고, 신이와 김창완은 뒤에서 완벽하게 감초역할을 해주건만 정작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평범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티격태격하는 두 주인공이 있고, 결국은 사랑에 빠질 것이며, 약간의 오해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지만 결국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이룰 것입니다. 그것은 주어진 로맨틱 코미디의 룰이죠. 아직까지 이러한 룰을 깬 영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 특이한 로맨틱 코미디를 내세운 [신석기 블루스]가 깨는 것도 좋았을뻔 했습니다.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김도혁 감독은 그 준비된 모든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은 뻔한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나가더니만 그냥 그렇게 마무리를 지어버립니다. 제가 너무 과한 기대를 한걸까요? 결국 로맨틱 코미디라는 한계가 분명한 장르를 선택한 영화였는데 완벽한 캐스팅에 취해 과한 기대를 한걸까요? 암튼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난후의 느낌은 예상했던 딱 그만큼의 재미만을 지닌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많은 영화들이 예상했던 재미마저 지니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면만 보여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예상했던 재미만이라도 지닌 이 영화는 그나마 괜찮은 영화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재미를 지닐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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