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샘 펠, 크리스 버틀러
더빙 : 코디 스미스 맥피, 터커 알브리지, 안나 켄드릭, 케이시 애플렉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은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을까?
할리우드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아름다운 화면과 흥겨운 음악, 귀여운 캐릭터, 그리고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입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만큼 어쩌면 그러한 요소들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무섭게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팀 버튼 감독입니다. 일찌감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영화의 감독은 헨리 셀릭이지만 팀 버튼의 제작, 각본으로 유명합니다.)을 통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공포적 요소를 삽입시키는 실험을 했던 팀 버튼은 [유령신부], [프랑켄위니]를 통해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공포적 요소를 조화시키는 선구자 역할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애니메이션을 보며 으시시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이라는 제목의 낯선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의 감독은 다름아닌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헨리 셀릭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제게 가장 무서웠던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바로 [파라노만]을 봤기 때문입니다. 유령을 보는 소년이라는 소재를 내세운 [파라노만]. 국내에서는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잔인함(?)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여러 의미에서 제겐 꽤나 무서웠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유령을 보는 소년
사실 [파라노만]의 시작은 평범했습니다. 할머니와 거실에서 좀비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러한 오프닝은 팀 버튼 감독의 [프랑켄위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프랑켄위니]는 빅터가 직접 찍은 영화를 거실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유령을 보는 소년 노만(코디 스미스 맥피)의 일상을 뒤쫓습니다. 사실 노만과 함께 좀비 영화를 봤던 할마니 역시 유령이었던 것이죠. 유령을 보는 소년 노만의 모험. 그러한 설정 자체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습니다. 이미 [식스 센스]이후 수 많은 영화에서 그와 비슷한 설정을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파라노만]은 노만과 같은 능력을 가진 프랜더게스트(존 굿맨)의 등장을 통해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하게끔 만듭니다. 마녀의 저주, 좀비로 되살아난 시체에 대한 경고 등등 수 많은 떡밥들이 영화의 초반에 관객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유령을 보는 능력으로 인하여 괴짜 취급을 받으며 왕따를 당하는 노만이 마녀의 저주로 인하여 되살아난 좀비를 무찌르고 마을을 구함으로서 영웅이 된다는 뻔한 스토리 전개가 머리 속에 그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까지는 분명 그러한 뻔한 전개의 영화였고요. 하지만 [파라노만]은 그것이 전부인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의 무서움은 바로 뻔함을 깨부수는 후반부의 설정에서 드러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진실 (스포 포함)
뻔한 영화의 전개대로라면 마녀의 저주로 인하여 좀비들이 나타나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노만은 좀비들로 부터, 마녀의 저주로부터 마을을 구하고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점점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과연 '우리가 아는 사실은 정말 진실일까?'라고. 그러면서 영화의 전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겉과 속이 다른 진실... 그 대표적인 장면은 과거의 마녀 재판 장면입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마녀라는 존재를 그저 공포 영화속의 소재로 생각합니다.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처럼) 하지만 중세에는 마녀 재판이 실제 있었고,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끔찍한 화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과거 마녀 재판을 진행했던 재판장과 증인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땐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웠던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사람들의 두려움은 가끔 집단 광기로 발전됩니다. 마녀 재판은 중세 집단 광기의 대표적 사례인 것입니다.
[파라노만]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정확히 집어냅니다. 마녀라는 오명을 쓰고 희생된 어린 소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저주. 그렇다면 현재에 나타난 좀비들은 과연 마을 사람들을 위기로 몰고갈 괴물일까요? 좀비로 되살아난 사람들은 과거 마녀 재판을 이끌었던 사람들입니다.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한 소녀는 과거 재판을 이끌었던 사람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무섭지만 슬프다.
좀비가 마을로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각기 무기를 들고 좀비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좀비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좀비를 괴롭힌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녀의 저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에게 마녀라는 누명을 씌우고 죽인 사람들을 향한 저주인 것입니다. '너희도 똑같이 당해봐.'라는 심정인 것이죠. 단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집단 광기의 희생이 되어야 하는 아픔. 소녀의 저주는 바로 그것입니다.
결국 [파라노만]에서 진정 두려운 것은 마녀도, 좀비도 아닌, 집단 광기에 휩싸인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좀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마녀보다도, 좀비보다도 훨씬 무서웠습니다.
프랜더개스트가 노만에게 마녀의 저주를 풀기위해 남겨준 책이 있습니다. 노만은 처음은 그 책이 주술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책은 주술서가 아닌 동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였습니다. 마녀로 오인받아 죽은 소녀는 그저 평범한 어린 소녀였던 것입니다. 동화를 들으며 잠이 드는 아주 평범한 소녀. 마녀의 저주를 푸는 책이 주술서가 아닌 동화인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노만과 소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코 끝이 찡해집니다. 평범해보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게 이러한 두려움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다니... [파라노만]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무서움과 코 끝이 찡함을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아! 그런데 이 영화가 과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맞긴 한걸까요? 그러기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범상치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난 웅이는 '무서웠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던 웅이가 움찔하며 놀라는 모습을 여러번 봤습니다. 아마도 웅이에겐 생애 첫 공포 영화가 [파라노만]이 될 것 같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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