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벤 제틀린
주연 : 쿠벤자네 왈리스, 드와이트 헨리
2013년 아카데미의 이변?
오는 2월 24일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이번 아카데미에는 9개의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아르고], [레미제라블], [라이프 오브 파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함께, 설명이 필요없는 할리우드 대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 2010년 아카데미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밀어내고 작품상을 수상한 할리우드의 여걸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 할리우드의 악동 혹은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쟁쟁한 감독의 영화들 속에서 단 한편의 조금은 낯선 영화가 보입니다. 바로 [비스트]입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신예 벤 제틀린 감독의 영화 [비스트]. 하지만 [비스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합니다. 제65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했고, 제28회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세계 영화제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칸영화제와 미국의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영화제가 동시에 [비스트]를 인정해준 것입니다.
이쯤되면 [비스트]를 신예 감독의 낯선 영화라고 우습게 볼 수 없을 듯보입니다. 작년 아카데미에서도 무성 흑백영화인 [아티스트]가 쟁쟁한 할리우드 대작을 물리치고 작품상을 수상했더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스트]가 쟁쟁한 대작 영화들에 맞서 아카데미의 이변을 연출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비스트]는 어떤 영화일까?
세계의 끝자락, 남쪽에 위치한 욕조라는 섬이 있습니다. 욕조섬은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수위가 높아져 땅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육지 사람들이 쌓아 올린 제방 밖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다시말해 욕조섬은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점점 바다 속에 잠기고 있는 위험한 곳이죠.
하지만 욕조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입니다. 그들은 욕조섬을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욕조섬에는 어린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가 어버지 윙크(드와이트 헨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윙크는 병에 걸려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쉬파피가 혼자 살아남을 수 있게 그녀를 강하게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속에 갇혔던 선사시대의 거대한 맹수 오록스가 깨어나고, 육지 사람들은 욕조섬의 사람들을 강제로 퇴거 조치해서 육지의 수용소에 가둡니다. 육지에서 강제로 수술을 받은 윙크는 나날이 쇠약해져만 갑니다. 과연 허쉬파피는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비스트]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입니다.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욕조섬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이 그러합니다. 마치 케빈 코스트너의 그 유명한 망작 [워터월드]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선사 시대의 괴물 오록스가 빙하가 녹으며 되살아나는 부분도 이 영화를 판타지 장르에 놓게 만듭니다. <아기공룡 둘리>도 아니고, 빙하가 녹으면서 선사 시대의 괴물이 깨어나다니... 판타지가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비스트]를 판타지라는 장르에 가둬 놓을 수 있는 영화인지는 솔직히 자신없습니다.
잘못은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하지 않았던가!
[비스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제방 안의 육지 사람들과 제방 밖의 욕조섬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제방 안의 육지 사람들은 바다의 수위가 높아져서 땅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방 안의 풍경입니다. 높은 공장의 굴뚝은 끊임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러한 공장의 굴뚝은 지구 온난화를 가져왔고, 지구 온난화는 남극의 빙하를 녹였으며, 그로 인하여 욕조섬은 바다에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욕조섬의 사람들은 마치 원시의 삶을 사는 것처럼 자연친화적입니다. 결국 잘못은 육지 사람들이 저지르고, 그로인한 피해는 욕조섬 사람들이 당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왜 육지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대책 대신, 제방을 쌓는 임시방편을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번 맛들린 편안함.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편안함이 우리 자신을 위험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들은 욕조섬 사람들의 생활을 야만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욕조섬의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허쉬파피를 가엽게 생각하고 그의 아버지인 윙크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난해야할 것은 욕조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아닌, 편안함을 포기못하고 지구 온난화라는 멸망의 길을 스스로 걷고 있는 육지 사람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아직도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원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며 야만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요?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며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문명인들이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허쉬파피의 모험... 솔직히 어려웠다.
[비스트]는 제방 안의 육지 사람들과 제방 밖의 욕조섬 사람들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우리 현대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화석 연료를 쓰고 있고,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그로 인하여 서서히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섬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간단한 이분법 만으로 [비스트]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허쉬파피가 육지에서 탈출해서 욕조섬으로 돌아온 이후의 모험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를 찾아 떠난 허쉬파피. 그리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해줬다는 악어튀김 요리를 윙크에게 가져다줍니다. 과연 그녀는 정말 허쉬파피의 어머니였을까요? 그녀는 왜 허쉬파피를 떠났을까요?
게다가 오록스와 함께 등장하는 허쉬파피의 모습은 더욱 이해불능입니다. 오록스를 인간이 넘어설 수없는 자연의 위대함이라 이해한다면 오록스와 함께 욕조섬에 돌아온 허쉬파피의 모습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허쉬파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비스트]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이유는 영화 후반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입니다. 중반까지 문명과 야만, 제방 안의 사람들과 제방 밖의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독특한 현실 비판을 가했던 영화가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어려운 영화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스트]를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문명의 삶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며,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허쉬파피 역의 쿠벤자네 왈리스의 연기 덕분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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