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로봇 앤 프랭크] - 늙는다는 것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우화

쭈니-1 2013. 2. 14. 10:56

 

 

감독 : 제이크 슈레이어

주연 : 프랭크 란젤라, 제임스 마스던, 리브 타일러, 수잔 서랜든

 

 

고집불통 노인 프랭크, 로봇을 만나다.

 

프랭크(프랭크 란젤라)는 한때 잘 나가는(?) 금고털이범이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집에서 쓸쓸히 홀로 지내는 노인에 불과합니다. 아내가 떠난지는 30년이 흘렀고, 딸인 매디슨(리브 타일러)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전화 통화만 가능합니다. 그나마 아들 헌터(제임스 마스던)가 매주 그를 찾아와주지만, 어느날 로봇 하나를 데려와 로봇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요양원에 보내겠다는 날벼락같은 선언을 하고 맙니다.

알츠하이머 증상이 있는 프랭크. 그는 헌터가 보내준 로봇이 영 껄끄럽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건강에 좋다며 늦잠도 자지 못하게 하고, 시리얼은 몸에 안좋은 성분이 많다며 과일을 내옵니다. 게다가 일을 해야 건강해진다고 정원 정리까지 강요합니다. 혼자서도 그런대로 잘 살아왔던 프랭크. 그는 과연 이 귀찮은 로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SF영화는 아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영화 자체가 최첨단 특수효과로 빚어낸 호화찬란한 SF영화는 아닙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가 현재의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다른 것은 인공지능 로봇 VGC-60L 뿐입니다. 그나마도 VGC-60L의 외형은 몇 년전 로봇 전시회에서 봤던 우리나라 최초의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인간형 로봇 '휴보'의 외형과 비슷합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영화는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로봇 앤 프랭크]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SF의 장르를 취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미래를 의미하는 로봇 VGC-60L과 과거를 의미하는 프랭크의 우정을 통해 우리들에게 늙는 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저는 가끔 제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달하는 최첨단 IT 기기들에 당혹스러워합니다. 스마트폰은 매번 새로운 기능을 탑재해서 신제품이 출시되고,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TV, 집전화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 속의 거의 모든 것이 IT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내 자신이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랭크가 그러합니다. 그는 빠르게 로봇화되는 세상을 부정합니다. 특히 그가 다니는 시내 도서관이 IT화된다는 소식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도서관의 사서인 제니퍼(수잔 서랜든)가 보여준 <돈키호테>의 오래된 원서는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구시대 유물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에 보관 중인 <돈키호테> 원서를 훔치려 계획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랭크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로봇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입니다. 과거를 지키기 위해 미래의 도움을 청해야 하는 셈이죠. 이 시점에서 미래의 변화를 부정하던 프랭크는 로봇과의 우정을 통해 미래와의 소통을 시작합니다.

 

기억의 소멸에 대한 슬픈 우화

 

프랭크는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합니다. 과거 악명 높은 금고털이범이었던 프랭크. 그는 도서관에 물래 침입하면서 과거 자신의 전성시대에 대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도서관에서 훔친 것은 세르반테스의 그 유명한 풍자 소설 <돈키호테>라는 점입니다. <돈키호테>는 과거 기사도에 집착하는 '돈 키호테'라는 미치광이의 모험담을 그렸습니다. 어쩌면 프랭크의 상황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소설인 셈입니다.

로봇의 도움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맛보았던 프랭크의 짜릿한 범죄. 하지만 [로봇 앤 프랭크]는 결코 밝은 분위기의 영화는 아닙니다. 그것은 영화의 후반부에 드러난 기억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슬프게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프랭크는 알츠하이머 증상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흥미롭게도 과거보다는 현재의 일을 먼저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최근의 기억을 점차 잃으며 자꾸 과거로 회귀하려는 병이 알츠하이머인 셈입니다.

 

늙음을 받아들이는 프랭크의 쓸쓸한 뒷모습.

 

어쩌면 로봇화, IT화 되어가는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프랭크에게 알츠하이머는 축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로봇과의 우정을 쌓으면서 프랭크에게도 현재는 지우기 싫은 소중한 추억이 됩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하여 자꾸 기억을 잃어가는 프랭크처럼 프랭크의 유일한 친구였던 로봇 역시 기억을 지워야 합니다. 로봇의 메모리에는 프랭크의 범죄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죠.

[로봇 앤 프랭크]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프랭크와 로봇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늙는다는 것에 대한 아름답지만 쓸쓸한 우화를 만들어냅니다.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던 프랭크. 그는 로봇과의 우정을 통해 현재와의 소통에 성공하지만, 결코 그는 현재라는 시간에 융합되지는 못합니다. 결국 자신의 늙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프랭크의 마지막 모습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