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조조 : 황제의 반란] - 거대한 스케일로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다.

쭈니-1 2013. 1. 17. 10:18

 

 

감독 : 조림산

주연 : 주윤발, 유역비, 소유봉, 타마시 히로시

 

 

[마이 리틀 히어로]가 날 외면했다.

 

수요일, 외근을 끝마치고 저는 서둘러 극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볼 계획이 없었지만 제 블로그 이웃들이 추천해준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외근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예매도 하지 못한 상황. 빨리 극장으로 가서 표를 끊어야 했던 저는 평일 오후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안절부절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며 극장 도착. [마이 리틀 히어로]가 시작한지 5분 정도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의 경우는 10분정도 광고를 하니, 서두르면 늦지 않게 상영관에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서 저는 극장 매표소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볼 수 없었습니다. 매표소 직원이 이미 영화가 시작해서 표를 끊어 줄 수 없이니 2시간 30분 이후에 시작하는 다음 시간대 표를 끊으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광고 시간대이니 괜찮지 않냐고 말했지만... 시스템상 안된다고 하네요.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보기 위해 2시간 30분을 가디릴 수 없었던 저는 그냥 뒤돌아서야 했습니다.

겨우 5분 늦었는데... 매몰차게 저를 외면한 [마이 리틀 히어로]가 미웠습니다. 물론 [마이 리틀 히어로]가 아닌, 예매도 하지 않고 5분 늦게 도착한 제 잘못이지만,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던 제 기분은 한 순간 엄청난 실망감과 함께 분노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렇게 혼자 차 안에서 화를 내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영화로 인한 화는 영화로 푼다.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보기 위해 외근을 서둘러 마친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습니다. 머리 속에는 '겨우 5분 늦었는데...'라는 아쉬움이 계속 머리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마이 리틀 히어로]에 대한 아쉬움을 다른 영화로 잠재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조조 : 황제의 반란]입니다.

[조조 : 황제의 반란] 역시 제가 극장에서 보려고 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 아쉽게 늫친 영화입니다. 아쉽게 놓친 [마이 리틀 히어로]의 아쉬움을 역시 아쉽게 놓친 [조조 : 황제의 반란]을 보면 푼 셈이죠.

[조조 : 황제의 반란]은 제목 그대로 우리에겐 <삼국지>로 더 잘 알려진 조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은 제게 남아 있는 조조의 이미지는 악당이었습니다. <삼국지>는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 위주로 서술되어 있고, 그 반대편의 위나라의 조조가 있었습니다. 결국 촉나라가 망하고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장면에서 저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조조는 <삼국지>에 나타난 것처럼 악당이었을까요? 촉나라도, 위나라도, 그리고 오나라도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의지는 같았을텐데, 왜 촉나라는 착한 편이고, 위나라는 나쁜 편일까요? [조조 : 황제의 반란]은 바로 그러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조조는 충신? 아니면 역신?

 

[조조 : 황제의 반란]은 명목만 황제인 한나라의 마지막 왕 헌제(소유봉)와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조조(주윤발)의 대립으로 시작합니다. 네개의 별이 하나가 되면 지금의 왕조가 몰락하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다는 점괘로 인하여 헌제는 조조의 역심을 의심하고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의 화자이기도 한 영저(유역비)는 조조를 암살하기 위해 키워진 아이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함께한 목순(타마키 히로시)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영저와 목순은 조조를 암살하기 전에는 자유로울 수 없는 몸입니다.

조조 암살이라는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영저. 그녀는 조조의 총애를 얻어내 그의 애첩이 되면서 가까이에서 조조를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왜 그를 죽여야 하는가? 그를 죽이면 내가 그토록 원했던 목순과의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영저의 눈에 비친 조조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임과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에 괴로워하는 보통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야망은 천하를 통일해서 더이상 전쟁이 없는 중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조의 야망은 영저가 원하는 소망과도 이어집니다. 삼국의 대립하고 전쟁을 벌임으로서 결국 고통받는 것은 힘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조조의 아들 조비와 조조의 신하들은 헌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라고 충언합니다. 헌제 역시 조조가 역심을 품었다는 것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조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황제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주저합니다.

 

결국 조조는 황제가 되지 못했다.

 

[조조 : 황제의 반란]은 바로 그러한 조조의 주저함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잡아냅니다. 조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황제가 될 수 있고, 그의 주위 사람들도 그러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황제가 되길 포기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한쪽으로 기운 듯 보이는 헌제와 조조의 대결을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조조의 알 수 없는 의중을 바탕으로 팽팽하게 이어나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결코 조조는 황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헌제의 암살 계획으로 인하여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헌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헌제를 몰아내고 스스로 위나라의 황제가 된 것도 조조가 아닌 그의 아들 조비이며,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한 것 역시 조조가 아닌 조비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조조를 재평가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황제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황제가 되기를 거부한 조조. 결국 조비로 인하여 태조 무황제로 추존되었지만 어쩌면 그는 황제의 꿈을 꾼 야심가가 아닌 헌제를 지키고자 했던 충신이고, 촉나라와 오나라를 무너뜨려 더이상 전쟁이 없는 중국을 꿈꿨던 이상가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조 : 황제의 반란]은 압도적인 주윤발의 카리스마로 인하여 조조를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역신 조조가 아닌 충신 조조를 그려내는 결말을 선택합니다. 솔직히 그러한 결말이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가 알던 조조의 모습이 아니기에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화자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던 영저의 슬픈 사랑 이야기 역시 영화를 보는 제 감정선을 과도하게 건드리려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영저를 연기한 유역비가 충분히 아름다워서 눈은 호강했습니다. [조조 : 황제의 반란]은 색다른 조조의 모습과 주윤발의 카리스마, 유역비의 아름다움 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 재미를 채운 어찌보면 소소한 재미를 추구한 중국 블록버스터 사극인 셈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