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J.C. 챈더
주연 : 케빈 스페이시, 잭커리 퀸토, 폴 베타니, 스탠리 투치, 데미 무어, 제레미 아이언스
2008년에 무슨 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딱 두 해만 고르라고 한다면 하나는 우리나라에 IMF가 몰아닥친 1998년이과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의 경제가 휘청였던 2008년을 선택할 것입니다. 대학 졸업과 함께 겪었던 IMF는 그래도 제가 아직은 젊은 시절이라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지만, 2008년에 겪은 금융위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었습니다.
1998년 IMF 시절에는 제겐 책임질 가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때 저는 웅이와 구피를 책임져야할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치솟는 환율로 인하여 수입회사인 저희 회사는 큰 타격을 받았고, 정리해고로 인하여 각 부서의 동료 직원들이 퇴사를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에서 살아남은 직원들도 직급에 따라 연봉이 삭감되었는데, 제 경우는 20%의 연봉이 삭감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당장 연봉이 삭감되자 저희 집의 살림살이가 팍팍해 졌고, 결국 신경이 날카로워진 저와 구피는 결혼 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은 제게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한 해였습니다. [마진 콜]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인 리먼 사태의 하루 전 상황을 그린 영화입니다.
세계 금융을 움켜쥔 그들
영화는 갑작스러운 인원 감축으로 퇴직 통보를 받는 어느 월스크리트의 거대 금융사의 상황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퇴직 통보를 받은 리스크관리 팀장 에릭 데일(스탠리 투치). 그는 회사를 나가기 전 부하 직원인 피터 설리반(재커리 퀸토)에게 의문의 USB를 건네줍니다. '조심하라'는 경고와 함께...
에릭 데일이 건네준 USB의 자료들을 검토하던 피터 설리반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파생 상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상사인 월 에머슨(폴 베타니)에게 보고 합니다. 그리고 월 에머슨은 다시 자신의 상사인 샘 로저스(케빈 스페이시)에게 보고되고, 결국 그로 인하여 중역진들의 긴급 회의가 소집됩니다.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 하는 이들이 모인 긴급 회의. 과연 그들의 모임에서 이 심각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회사의 회장인 존 털드(제레미 아이언스)는 문제의 파생 상품을 모조리 팔아치우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로 인하여 세계 금융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임을 잘 알지만 그는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실화를 다룬 영화는 아닙니다. 단지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인 리먼 사태 하루 전의 상황을 J.C 챈더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영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실제로 저랬을 것 같습니다. 이 심각한 문제의 원흉들인 그들이 남들은 어찌되었건 자기들만 살자고 내린 결정. 그로 인하여 저와 같은 소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나날들. 영화를 보다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모럴해저드? 그런데 당신이라면?
분명 [마진 콜]은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힘 있는 자들의 모럴해저드를 조용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실수로 인한 문제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텐데 존 털드를 비롯한 이들은 오히려 세계 금융이 박살이 나건 말건, 자신들만 잘 살면 된다는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습니다.
처음엔 '그럴 수 없다.'라며 양심적인 모습을 보이던 샘 로저스도, 월 에머슨과 피터 설리반, 심지어는 에릭 데일까지, 그러한 존 털드의 결정에 따릅니다. 그들은 잠시 그러한 상황에 대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존 털드에게 반항하지는 않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도덕적 해이. 그로 인하여 항상 피해를 보는 것은 저와 같은 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제가 저 위치에 있다면, 그래서 저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나의 선택은 어땠을까? 만약 나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저지른 실수이니 내가 책임지겠소.'라는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과연 여러분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저는 그런 도덕군자가 아닙니다. 가진 것이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은 위치라면 더더욱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싶은 것은 보통 인간이라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마진 콜]을 보며 우리들이 진정 분노해야 하는 대상은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못해 전 세계를 금융위기에 빠뜨린 존 털드가 아닙니다. 존 털드에게 그러한 힘을 준 제도입니다. 기껏 거대 금융회사의 CEO에 불과한 존 털드에게 전 세계의 금융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힘을 준 자들과 제도에게 분노를 퍼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 시장 경제? 개한테나 줘버려라.
애덤 스미스라는 아주 유명한 경제학자는 시장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가 시장 경제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아도 시장 경제 스스로가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기업들은 자꾸 몸집을 불려 나가며 시장을 장악해 나갑니다. 몸집을 불리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에게는 자정 능력 따위는 애초부터 불필요한 단어였습니다. 그들은 골목 시장을 파고들며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먹어치웁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경쟁이 될만한 소기업을 없애며 독점 형태를 유지하고 비슷한 힘을 가진 기업 끼리는 단합을 해서 가격을 자기네 맘대로 결정합니다. 거대 기업에게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 따위는 두렵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대기업이 몸집을 키워나가면 나갈수록 그러한 몇 개의 대기업에 의해 우리나라의 경제는 좌지우지될 것이며 [마진 콜]처럼 어느 한 대기업 총수의 욕심에 의한 선택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시장 경제는 모래성처럼 부숴질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법에 의한 규제 뿐이고, 그러한 규제를 만드는 것은 정치인이 해야할 일입니다.
[마진 콜]을 보며 거대 금융회사 총수의 모럴해저드에 대해서 분노만 한다면 그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 털드의 입장이라면 존 털드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우리들은 존 털드를 욕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존 털드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한 존 털드의 선택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진 취약한 세계 경제의 문제점입니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꼭 봐야할 영화
[마진 콜]은 너무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조용히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한 극적인 장면 몇 개정도는 넣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마진 콜]은 그저 어느 거대 금융회사의 너무나도 은밀한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들의 그러한 조용하지만 치열했던 하룻밤이 전 세계 경제에 어떠한 거대한 폭풍을 몰고 왔는지... 그들은 마치 '별 일 아니야.'라는 식으로 회의 석상에서 결정한 하나의 안건이 머나먼 이국땅의 우리 소시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래서 [마진 콜]은 굉장히 조용한 영화이지만 그들의 결정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에 영화를 보는 저는 서늘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내 일상이 저런 이들의 말 한마디에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마진 콜]은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무서움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영화를 이룬 명배우들의 명연기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들은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울부짖지 않아도,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한 긴장감을 내게 안겨줬습니다. 거대한 몇몇 대기업이 경제를 장악한 우리나라에서 [마진 콜]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서늘한 스릴러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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