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움] - 숨막히게 적막하다.

쭈니-1 2012. 9. 3. 09:00

 

 

감독 : 베네딕 플리고프

주연 : 에바 그린, 맷 스미스

 

 

어느 여자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레베카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외딴 바닷가 마을로 오게 된 그녀는 외로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토미라는 소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토미와의 즐거운 한때도 잠시. 그녀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일본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녀가 떠나던 날, 배웅을 나가겠다던 토미는 나타나지 않고 레베카는 그렇게 토미와의 작별을 했어야 했습니다.

12년 후 성인이 된 레베카(에바 그린)는 토미를 찾아 다시 마을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열성적인 환경운동가가 되어 있는 토미(맷 스미스)를 만나게 되고 12년 전의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 납니다. 하지만 역시 신은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토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다시 레베카만 남겨집니다.

레베카는 결심합니다. 토미를 유전자 복제 기술로 살려 내기로... 죽은 토미의 유전자 조직을 채취하여 자신의 자궁을 빌려 토미를 잉태한 레베카. 그렇게라도 해서 레베카는 토미와의 만남을 지속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무 적막해서 더욱 아름다웠던 순수한 사랑

 

[움]은 적막함으로 시작합니다. 오프닝부터 음악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이 영화는 마을의 적막한 분위기 그대로 어린 레베카와 토미의 사랑을 담아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적막함은 영화의 초반에 오히려 큰 힘을 불어 넣습니다. 아역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가 덧붙여져 외로운 소녀 레베카의 순수한 사랑이 영화 속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이별은 영화를 가슴이 아팠습니다. 레베카가 떠나는 날 배웅을 나오겠다는 토미가 나타나지 않으며 뭔가 가슴아픈 사연이 있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면서 영화를 봐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고 토미를 만나기 위해 다시 마을을 찾은 레베카. 마을의 적막함은 그대로였습니다. 레베카와 토미가 12년 만에 재회하는 그 순간에도 적막함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하려 합니다. 12년 전의 순수했던 사랑을 기반으로 12년 후의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려 합니다.

 

복제인간이라는 충격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움]은 참 이상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적막하기만 합니다. 영화 초반의 적막함은 레베카와 토미의 순수한 사랑을 뒷받침해줍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 토미가 교통 사고로 죽고, 레베카가 토미의 복제인간을 만들 결심을 하는 그 순간에도 적막함은 지속됩니다.

순수한 사랑을 표현할 때의 적막함은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렸지만 중반 이후 토미가 죽고 레베카가 토미의 복제인간을 만들 결심을 하는 그 충격적인 장면에서도 적막함이 이어지니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적막함은 영화의 후반까지 이어지는데 충격적인 소재와 어울리지 못하는 적막함에 숨이 막히기까지 합니다.

성인이 된 복제인간 토미가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오고, 그녀를 바라보는 레베카의 눈빛에서 미묘한 질투심이 느껴지는 장면 등, 영화의 후반부는 무언가가 터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 플로고프 감독은 적막함을 고집합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킬 만한 장치를 사용해도 될 법한데 그는 영화 초반부터 고집스럽게 이어나간 적막함을 끝내 버리지 않습니다.

 

복제인간, 근친상간... 이 모든 것을 어우르는 숨막히는 적막함.

 

결국 레베카의 집착과도 같은 사랑은 파국에 치닫습니다. 자신의 비밀을 알게된 토미는 레베카를 향해 부르짓습니다. 왜 그랬냐고... 그러한 부르짓음이 이 영화의 적막함을 깨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움]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인간 복제라는 해서는 안될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소재는 SF적이고, 영화의 결론은 충격적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적막함을 잃지 않았기에 영화 자체는 결코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좀 더 충격을 안겨줄까? 고심하는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점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적막함은 오로지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점으로만 사용된 것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적막함은 저를 숨막히게 했고, 결국 결코 넘어서는 안될 신의 영역에 도전한 레베카의 마지막 모습에서 이 숨막힘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집착이 낳은 인간의 위험한 이기심. 레베카를 애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토미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강렬했습니다.

 

감정 이입에는 서툴렀다.

 

솔직히 [움]은 짧은 러닝타임 동안 레베카의 토미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데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레베카가 토미를 복제한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가 그렇게 토미를 사랑했던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에 토미가 자신의 비밀을 안 이후 표출하는 분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고 걷잡을 수 없이 분노하는 토미의 모습을 보며 그의 폭주가 조금은 느닷없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적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캐릭터들이 느꼈을 사랑, 분노는 결코 적막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며 이 두 요소의 충돌이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영화 속 캐릭터와의 감정 이입이 서툴렀다는 것은 [움]이 지닌 단점입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재를 적막함 속에 표현한 그 독특한 분위기는 분명 저를 영화에 압도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영화는 되지 못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 레베카와 토미의 마지막 모습 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