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구파도
주연 : 가진동, 진연희
남자들에게 첫사랑이란?
지난 3월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의 우리 영화가 흥행에서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기 배우인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가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 중에서 흥행력을 인정받은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성 중심의 멜로 영화라서 과연 남성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런지 미지수였습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남자들의 첫사랑 이야기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여성분들이라면 '남자들의 첫사랑? 뭐 대단한거 있어?'라고 물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남성인 제 입장에서 [건축학 개론]은 마치 내 이야기같았고,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의 기억 때문에 아련하게 아팠던 영화입니다.(제 첫사랑 이야기는 [건축학개론] 영화이야기에서... ^^) 남자들의 첫사랑이 왜 대단하냐고요? 그건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미숙한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육체적 성장은 여성보다 빠르지만 정신적 성장은 여성보다 느리다고 합니다. 아마도 남성의 첫사랑이 미숙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정신적인 성장이 채 완성되기 이전의 사랑. 그래서 더욱 아쉽고,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한 이별 때문에 미안함이 남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 제 주위의 친구들도 그랬으며,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제훈)도 그랬습니다.
대만판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일까요? 대만의 [건축학개론]이라며 홍보에 들어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제목의 대만 영화가 지난 8월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정신적 성장이 미숙했던 17살 소년들의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초반 부분에 눈쌀을 찌푸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17살 소년들의 이야기가 제가 보기엔 너무 과장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나 발기 상태에 있는 쉬보춘이라는 캐릭터와 커징텅(가진동)이 수업 시간에 자위 행위를 하다가 걸리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이 남자들의 순수한 첫사랑인지, 아니면 [아메리칸 파이] 식의 섹스 코미디인지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초반, 저는 삐딱한 심정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저 역시 사춘기를 보냈고, 제 사춘기 역시 남들 못지 않게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과장해서 우스꽝스럽게 그런 영화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먼저 들더라고요.
볼 수록 빠져든다.
하지만 커징텅과 션쟈이(진연희)의 풋풋한 사랑이 진행되면서 제 삐딱한 시선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말썽쟁이 커징텅과 공부벌레 션쟈이의 사랑은 노골적이지 않습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허세를 부리면서 남 몰래 바라보는... 내 첫사랑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특히 션쟈이가 머리를 뒤로 묶고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진연희라는 배우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솔직히 영화의 초반만 하더라도 진연희라는 배우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녀의 매력은 점점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얼핏 강헤정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떨땐 제가 좋아하던 홍콩 배우 양채니의 순수함이 보이기도 하고, 왕조현 분위기도 얼핏 풍깁니다.
가진동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처음 수업 시간에 자위 행위를 하는 장면에서는 '뭐 저런 놈이 다 있어'라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풋풋한 매력을 풍기며 첫사랑의 순수함을 완성시킵니다. 볼 수록 빠져든다... 아마 이 영화와 진연희, 가진동이라는 배우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이룰 수 없기에 첫사랑은 아련하다.
사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특별한 스토리 라인이 없습니다. 저는 션쟈이가 대입시험을 보며 안색이 안좋길래 무슨 불치병이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을 했습니다. 뭔가 극적인 장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이 그러했듯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역시 커징텅과 션쟈이의 풋풋한 첫사랑만으로 영화를 진행해 나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초반 사춘기 소년들의 과장된 에피소드가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러한 부분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중반 커징텅과 션쟈이가 서로에게 서서히 사랑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 서두르지 않고 잘 표현되었으며, 후반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별까지 하게된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토록 짝사랑했던 제 첫사랑과 결국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녀는 제 마음 속에 이렇게 아련하게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들의 첫사랑이 특별한 이유? 바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의 아련함을 가슴 깊숙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나도 저런 풋풋한 첫사랑이 있었지.'라며 회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저는 결국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커징텅에게도, 그리고 그의 친구들에게도 션쟈이는 영원히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건 최고의 해피엔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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