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매든
주연 : 주디 덴치, 빌 나이, 톰 윌킨스, 매기 스미스
태풍이 온다고 해서 모든 계획을 취소하다.
금요일 저녁. 구피가 호들갑을 떨며 말합니다.
"뉴스에서 이번 주말에는 강한 태풍이 오니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래."
그렇지않아도 15호 태풍 볼라벤이 북상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웅이와의 외출 계획은 물론이고, 극장갈 계획까지 모두 취소했습니다.
그렇게 숨 죽이며 시작된 지난 주말, 하지만 하늘을 먹구름이 조금 끼긴 했지만 너무나도 맑았습니다. 우려했던 볼라벤은 월료일(27일)이 되어서야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네요. 제가 구피한테 낚인 것인지, 구피가 뉴스에 낚인 것인지...
암튼 오랜만에 집에서 뒹굴거리며, 낮잠도 자고 TV 를 보면서 보냈던 지난 주말. 제 머리 속에는 '[이웃사람]를 보러 가야하는데...'라고 수 없이 외쳐댔지만 기왕 집에서 뒹굴거리기로 했기에 영화도 집에서 뒹굴거리며 봤습니다.
그들은 늙었다.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그렇게 조금은 흐트러진 자세로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본 영화입니다. 예전에 시사회에 초대된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고, 극장 개봉 후에도 극장 시간대가 맞지 않아 놓친 영화였기에, 너무 늦게 이 영화를 본 것에 대한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영화 감상을 시작했습니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영화 속 주인공들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에블린(주디 덴치)은 무기력함에 빠져 있습니다. 은퇴를 앞둔 판사, 그레이엄(톰 윌킨스)과 퇴직금을 딸의 사업자금으로 모두 날린 더글라스(닐 나이) 부부, 늙었지만 마음 만은 생생하게 젊은 마지와 노먼,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인 뮤리엘(매기 스미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늙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늙음으로 인하여 무기력에 빠져 있다는 것이죠. 뭔가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필요한 상황. 그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인도의 낡은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 모입니다.
낯선 환경에서 그들이 적응하는 방법
서로의 상황은 엇비슷하지만 낯선 인도의 낡은 호텔에 모여든 그들의 적응 방법은 각기 달랐습니다. 에블린은 적극적으로 홀로서기를 위한 직장 구하기에 나서고, 그레이엄은 어린 시절의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마지와 노먼 역시 새로운 짝 찾기에 적극적이고, 관절 수술을 위해 원치 않은 인도행을 반강제적으로 선택당한 뮤리엘마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갑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부부인 더글라스와 진이 인도에서 적응하는 방법입니다. 더글라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인도에서의 나날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진은 불평불만만 늘어 놓고 호텔에 처박혀 영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같은 처지에, 같은 곳에 있지만 서로 생각하는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더글라스는 인도라는 낯선 환경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행복한 공간이 되지만 진에게는 탈출해야만 하는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이렇듯 인도라는 공간이 행복이 넘치는 공간이 될수도 있고, 빠져 나가야할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과 부정의 자세 차이일 것입니다.
그것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얻었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호텔을 찾은 이들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호텔의 지배인인 소니(데브 파텔)와 수내나의 사랑 이야기로 영화적 재미를 구축합니다. 처음엔 인도라는 낯선 공간에 당황하던 이들이 점차 적응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는 과정이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그려집니다.
그 중에서 그레이엄의 사연은 가슴이 아팠고, 나머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가 되면서 감동과 함께 기분좋은 긍정의 에너지를 제게 안겨줬습니다. 아니 그레이엄 역시 행복했을 것입니다.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덜어냈으니...
우리는 모두 늙은 이후를 걱정합니다. 예전처럼 자식들이 부양하는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은퇴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보험 등이 요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만 살던 내가 과연 낯선 이국땅에 적응해야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물론 두려울 것입니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홍콩에 며칠 다녀온 것이 전부인 제겐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의 테두리에서 무기력한 삶을 사는 것보다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것도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늙었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P.S. 구피는 '그래도 인도는 싫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노후도 우리나라에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실컷 못보잖아요. 외국영화도 한글 자막없이 봐야하고. (제 영어 실력으로는 무리) 저는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는 그 순간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며 보낼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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