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썸] - 스릴러로는 실패했지만 영화적 재미만은 성공했다.

쭈니-1 2009. 12. 8. 17:11

 



감독 : 장윤현
주연 : 고수, 송지효
개봉 : 2004년 10월 22일
관람 : 2004년 10월 22일


[귀신이 산다]이후 한달만에 우리 영화를 봤습니다. 그동안 [우리형]이 흥행의 돌풍을 일으켰으며, [가족]도 뒤심을 발휘하며 꾸준하게 인기를 얻어왔지만 두 영화 모두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었기에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만한 영화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드디어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제가 기대하고 있는 두편의 우리 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개봉되는 군요. [텔 미 썸딩]으로 우리나라의 스릴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장윤현 감독의 오랜만의 복귀작 [썸]과 한석규, 이은주, 엄지원, 성현아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주홍글씨]가 그것입니다. 그중 [썸]을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설레임처럼 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답니다.

1. 스릴러에 필요한 것은 풋풋함이 아니라 관록이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이 영화로 영화배우로써 데뷔를 하는 TV청춘스타 고수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에서 섬세한 영화를 보여주었던 송지효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불안합니다. 송지효는 너무 발랄해보이고, 고수는 너무 딱딱해보입니다. 왠지 이 젊은 두 배우의 조합은 스릴러 영화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스릴러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영화입니다. 사건이 있고, 범인이 있으며, 그 뒤를 쫓는 추격자가 있습니다. 그런 영화에서 밝은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장윤현 감독도 그러한 것을 스릴러 영화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는지 전작인 [텔 미 썸딩]에서는 관록의 두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를 캐스팅하였습니다. 한석규는 농익은 연기로 [텔 미 썸딩]의 어두운 분위기를 이끌어나갔으며 심은하는 이전의 밝은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는 팜므파탈 연기로 [텔 미 썸딩]을 충격적인 스릴러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런데 [썸]은 다릅니다. 마치 청춘 멜로 영화에나 어울릴것 같은 두 젊은 배우 고수와 송지효는 [썸]을 어두운 스릴러 영화가 아닌 밝은 액션 영화로 탈바꿈 시켜 놓았습니다. 송지효가 맡은 서유진의 그 발랄한 모습과 고수가 맡은 강성주의 과도한 터프 이미지는 [썸]의 정체성을 의심케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의 백미라는 차량 추격씬이 펼쳐지니 더욱 이 영화가 스릴러가 아닌 액션 영화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텔 미 썸딩]과 같은 스릴러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저로써는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2.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장윤현 감독의 통찰력.

그런데 영화의 중반부터 고수와 송지효의 스릴러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풋풋함이 점차 이 영화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유진은 자신의 위험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부터 발랄함을 벗고 위험에 빠진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속의 목격자가 되고, 강성주는 거대한 운명에 맞서야 하는 스릴러 영화다운 주인공으로 변모합니다. 영화 초반 약간 어색한듯 했던 이 젊은 두 배우의 연기가 점차 자연스러워지며(그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인지, 제가 그들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는 아직도 헷갈립니다. ^^) [썸]은 드디어 스릴러 영화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점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디카, 핸드폰, MP3, 동호회 등 새로운 젊음의 아이콘들이 이 영화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낀 바로 그 순간부터 저는 장윤현 감독이 관록있는 배우가 아닌 신인급에 가까운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장윤현 감독의 데뷔작인 [접속]은 그 당시에는 생소한 PC통신을 통한 새로운 사랑을 제시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97년 당시 컴맹이었던 저는 PC통신이라는 이 새로운 인간관계의 매개체를 보고 작은 충격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으면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단 한시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면에서 [접속]은 굉장한 선구안을 가진 영화였던 셈입니다.
[접속]이 PC통신이라는 당시로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제시했다면 [썸]은 이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새롭게 바뀐 세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디카, 핸드폰, MP3, 카폐 동호회 등은 [접속]의 PC통신처럼 제게 새로움의 충격을 안겨주지는 않았지만 스릴러 영화라는 케케묵은 장르에서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소품으로 이용하는 장윤현 감독의 통찰력은 여전합니다.
[접속]이 그 당시로는 신인급 연기자에 가까웠던 한석규(1997년 당시 그는 영화배우로써 데뷔한지 겨우 3년째 되었으며 출연작은 [닥터봉]과 [은행나무 침대]뿐이었습니다. TV탤런트로는 베테랑에 가까웠지만 영화배우로는 신인급에 가까운 신선한 얼굴이었던 겁니다.)와 이제 막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전도연(그녀의 영화 데뷔작은 [접속]입니다.)으로 PC통신아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이용한 멜로 영화를 만들었던 장윤현 감독은 [썸]에서도 고수와 송지효라는 새로운 배우들로 하여금 신세대들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자연스럽게 스릴러 영화의 소품으로 이용한 겁니다.


 



3. [텔 미 썸딩]보다 친절해졌다.

고수와 송지효가 스릴러 장르에서의 어색함에서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제시한 스릴러 영화에 점차 적응을 해나가는 동안 [썸]은 데자뷰 현상이라는 낯설은 소재로 점차 사건을 진행시킵니다. [텔 미 썸딩]에 철저하게 당했던 저로써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썸]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지지 않으리라라는 마음가짐과 함께...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는 정말 친절합니다. 서유진이 느끼는 데자뷰 현상을 통해 관객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보라고 장윤현 감독이 게임을 제시할것 같더니만 오히려 친절한 해설과 너무나도 쉬운 진범을 통해 게임은 시시하게 끝을 맺습니다. [텔 미 썸딩]을 보고나서도 이 영화가 이해되지 않아서 한동안 분해했던 저로써는 너무나도 친절해진 이 영화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써는 관객의 싸움에서 패배했지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서유진과 강성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가 끝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언제나 보호받거나 혹은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리는 팜므파탈의 전형으로만 여겨지던 스릴러 영화에서의 여주인공 서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데자뷰를 통해 강성주가 24시간 이후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강성주의 운명을 바꾸려는 서유진의 노력은 천편일률적인 스릴러 영화에서의 여성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꾸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스릴러 영화로는 제게 졌지만 영화적인 재미로는 제 예상을 뛰어 넘는 영화였습니다.

P.S. 1. 이 영화를 본 후 갑자기 제 핸드폰이 무서워졌습니다. '혹시 나도 추적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은 '널 뭐하러 추적하니?'라는 구피의 한마디에 안심했답니다. ^^;
P.S. 2. 이 영화를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MP3 플레이어에 그림 파일을 저장할 수도 있고, 자신의 목소리도 녹음할 수 있다는 것... 여전히 저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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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저도 재미있게 보고왔습니다. 여타 다른스릴러물과는 좀 달랐지만 그래도.. 역시 이만한 영화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생각되네요^^  2004/10/26   
쭈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상하게도 스릴러 장르에서만은 약점을 보이는 우리 영화를 생각한다면 분명 가능성은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2004/10/26   
박준호
이 <썸> 이라는 영화는 신인 배우 등장, 자동차 추격신, 데자뷰라는 독특한 소재 사용...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고, 또 그것들이 볼거리이긴 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스토리 라인에서 만큼은 관객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자동차 추격신에서 흑마왕(혀에다 피어싱한 사람)의 죽음부터 정신없이 영화에 끌려다닌 저로써는 부산 조직의 개입이나 사진 원본의 행방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썩 와닿지 않더군요...
게다가 강성진 씨 혼자서 하는 악역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항상 개성은 있지만 주연을 맡기에는 뭔가 2% 모자란 조연...<달마야 놀자><주유소 습격사건><찜>등에서 조미료 같은 역할을 잘 해낸 것은 인정하지만 단독 악역을 맡기에는 파워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5/02/22   
쭈니 그러게요. 독특한 소재로 독특한 영화로 풀어나가지 못한 것도 이 영화의 한계이고, 너무 뻔한 악역도 이 영화의 한계죠. 하지만 박준호님도 말씀하셨듯이 액션씬은 꽤 좋았답니다. 제가 알기론 장윤현감독은 [공공의 적 2]에서도 차량추격씬을 강우석 감독대신 찍었다는 군요. 그만큼 액션씬에 대해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하겠죠. ^^  200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