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비포 선셋] - 세월이 지나도 추억만은 변하지 않는다.

쭈니-1 2009. 12. 8. 17:09

 



감독 : 리차드 링클래이터
주연 : 에단 호크, 줄리 델피
개봉 : 2004년 10월 22일
관람 : 2004년 10월 12일


우선 이 글을 쓰기전에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현재 [비포 선셋]의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럼 알바아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명백하게 알바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비포 선셋]의 서포터즈를 한 댓가로 그 어떤 금품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9년전 보았던 [비포 선라이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비포 선라이즈]의 그 이후 이야기인 [비포 선셋]을 막연하게 기대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서포터즈에 뽑힌 것 뿐입니다.
저는 제게 '요즘 어떤 영화가 재미있어?'라고 묻는 사람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추천해준 영화를 보고나서 '재미없었다'며 제게 따지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왠만한 영화는 친구들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영화의 서포터즈를 맡았다는 것은 제겐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비 포 선셋]의 서포터즈로 활동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이 영화 재미있다'라며 추천하는 것과 같으며 '추천해서 봤는데 재미없더라'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가장 걱정한 것은 [비포 선셋]이 만약 제게 재미없을 경우입니다. 지금까지 250여편에 달하는 영화 이야기를 쓰며 남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대한 제 느낌 그대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공식적으로 나선 [비포 선셋]이 재미없다면 전 어떤 영화 이야기를 써야할까요? 솔직하게 '이 영화 재미없다'라고 쓴다면 절 믿고 서포터즈로 뽑아준 영화 관계자들을 배신하는 일이며, 그렇다고 '재미있다'라고 쓴다면 처음으로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테니...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서포터즈를 위한 [비포 선셋]의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비록 시사회장을 못찾아(전 엄청난 길치랍니다. ^^;) 15분 정도 지각하는 바람에 [비포 선셋]을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영화에 집중하며 열심히 봤습니다. 그 결과는...


 



1. 9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일단 이 영화는 9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비포 선라이즈]가 만들어졌던 95년에 에단 호크는 전도유망한 꽃미남 배우였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늑대개], [청춘스케치]등의 흥행 성공으로 헐리우드에선 차세대 스타로 발돋음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출연한 영화가 [비포 선라이즈]입니다. 유럽을 여행중이던 젊은 미국인 청년이 우연히 기차에서 프랑스인 여성을 만나 하룻동안 짧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는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을것 같은 이 영화에서 에단 호크는 신선한 젊음 하나만으로 영화에 활기를 일으킵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에단 호크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청춘은 [비포 선라이즈]를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줄리 델피도 결코 에단 호크에 뒤지지 않습니다. [나쁜 피], [유로파 유로파], [화이트]등 유럽의 예술성 짙은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줄리 델피는 헐리우드의 여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유럽을 닮은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순수함이 묘하게 맞물리며 [비포 선라이즈]를 고품격 멜로 영화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순수했으며 그와 동시에 우아했습니다.
그런데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두배우는 변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비포 선라이즈]의 아름다운 청춘으로 기억하던 제게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돌아온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모습은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에단 호크는 9년전의 미소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쩍마른 도시생활에 지친 신경질적인 중년의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어떤 글에선 에단 호크가 우마 서먼과의 결별후 그 충격으로 외모가 그렇게 망가졌다고 하던데, 이유야 어떠하던 에단 호크에게서 이젠 미소년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줄리 델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순수한 우아함은 어느새 현실에 불만이 가득한 수다쟁이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쉴새없이 말을 늘어놓는 줄리 델피의 끝없이 쏟아지는 자막을 읽느라 지치며 [비 포 선라이즈]의 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녀가 그리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이 영화를 보며 저는 결국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9년이라는 세월이 절 변하게 했듯이 언제나 변치않은 아름다운 젊음을 간직할 것만 같았던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도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2.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모습에 처음엔 실망을 했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 겠죠. 9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만만한 세월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9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9년전 그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짧은 사랑을 추억하는 측은한 두 성인 남녀를 쓸쓸한 만남을 목격하게 될것입니다.
9년전 하룻동안의 짧은 사랑을 책으로 펴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는 말합니다. 단 한순간도 잊고 싶지 않았다고... 그처럼 잊고 싶지 않았던 추억은 소설이 되어 영원히 제시에게 남겨집니다. 단 하룻동안의 사랑이지만 그 하룻동안을 쓰는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제시의 말처럼 추억이라는 것은 그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단 하룻동안의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4년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소비해도 될만큼...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셀린에게도 그들의 하룻밤의 사랑은 소중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제시를 만나자마자 9년전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시작하는 그녀는 자신이 어긴 약속때문에 그동안 제시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만큼 그녀에게 제시와의 만남은 소중했던 겁니다. 제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일 정도로...
이제 그들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9년이라는 세월동안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내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제시와 능력있는 애인을 가져지만 사랑에 확신이 서지 않는 셀린은 서로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추억을 회상합니다. 제시와 셀린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파리의 풍경은 멋진 배경이 되어줍니다. 9년전 비엔나가 그랬듯이...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이상 사랑이라는 달콤한 환상속에 살 수 없는 성인이된 제시와 셀린은 추억의 달콤함과 현실의 쓰디씀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9년전 그들의 달콤한 사랑에 푹 빠졌던 저역시도 성인이 되어 그들의 달콤한 추억과 쓰디쓴 현실에 동감하게 되는 겁니다. 9년이라는 세월동안 제시와 셀린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지만 그러한 변화가 오히려 [비포 선셋]에 리얼리즘이라는 다른 로맨스 영화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크나큰 선물을 안겨준 겁니다. 제시와 셀린의 끊임없이 쏟아지는 대화를 듣는 동안 어느새 젊은 시절의 추억에 빠져드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추억이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내 모습도 변하고, 내 주위의 상황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지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추억은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입니다.


 



3. 이 영화는 지루하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는 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이 영화는 지루합니다. 그 흔한([비포 선라이즈]에서조차도 나왔던...) 베드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화를 이끌어나갈 재미난 상황과 사건도 없으며, 눈물시린 아픈 사랑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9년전 짧지만 강렬하게 사랑을 나눈 제시와 셀린은 9년이 지나며 사랑하는 사이이기 보다는 오랜 친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헐리우드의 멜로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9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게끔 만드는 리차드 링클래이터 감독의 연출력은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찬란했던 젊은 날의 사랑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실망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저처럼 지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30대의 직장인에겐 잠시나마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게끔 만듭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거죠.
영화를 보고 밤거리를 걸으며 자꾸만 서글퍼집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하지만 미국이라는 현실보다는 셀린과 함께 파리라는 추억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하는 제시의 모습처럼 저도 저와 함께 추억을 공유하며 잠시라도 현실의 세계에서 동떨어진 곳에서 추억속으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추억을 공유해줄 사람이 제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제시와 셀린은 행복한 편이지도 모릅니다. 9년전 그들은 다시 만나지 않았기에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이렇게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때 다시 만났다면 그들은 현실속의 동반자 아니면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남남이 되어 버렸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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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우스
오옷!! 비 포 선라이즈 먼저봐야겠군요 ^^bb

제가 고딩때 나왔던 영화였는데 아직도 못봤답니다 ^^;;

즐거운 하루되세요 ^^bb
 2004/10/15   
쭈니 오랜만입니다. 오기우스님. ^^
확실히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선셋]보다는 영화적 재미는 좋습니다.
풋풋한 젊음의 향기도 느껴지고...
한번 보세요. 전 재미있었습니다.
[비포 선라이즈]를 보시고 [비포 선셋]을 보시면 영화적 재미가 배가 된답니다. ^^
 2004/10/15   
아랑
비포선라이즈 기억이 안나요~ ㅋㅋㅋ
 2004/10/21   
쭈니 [비포 선라이즈]가 개봉했을땐 아랑님은 너무 어리지 않으셨나요? 전 그때 한참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20대 초반이었거든요. ^^  2004/10/22   
올리브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볼때보다 쭈니님의 글을 읽으니 더 가슴이 떨립니다.
저두 비포 선라이즈 팬이거든요. 이영화 개봉하자마자 봤는데 제가 외국에 있는 관계로다 자막없이 볼려니까 힘들었어요..
이 영화를 보고나니까 비포선라이즈가 더 보고싶어지네요.
저는 그때 사랑만을 더 간직하고 싶나봐요..
 2004/10/23   
쭈니 이 영화를 자막없이요? 허걱~ 대단한 영어 실력자이신가 보군요. ^^ 전 대사가 워낙 많이 자막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 힘이 들었었는데... 암튼 올리브님 반갑습니다. ^^  2004/10/23   
진진
이십대 중반,, 24,,
비포 선라이즈의 재미가 감해질려나요..?ㅋㅋ
 2004/11/11   
쭈니 진진님은 지금 현재 24세이신가요? 한창 좋은 나이군요. ^^
그렇담 아직 [비포 선라이즈]를 보지 않으셨다면 한번 보세요.
아마 당장 유럽으로 배낭여행가고 싶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젊을때가 아니면 갈 기회가 없죠.
젊었을때 저질러보는 것은 멋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
 2004/11/12   
진위
선라이즈의 강렬함을 선셋은 감당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힘과 좀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이야기 하고있는 점에대해 추천  2007/04/25   
쭈니 네 저도 추천... ^^  200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