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토프
주연 : 할리 베리, 샤론 스톤, 벤자민 브랫
개봉 : 2004년 9월 24일
관람 : 2004년 9월 24일
KTF NA의 영화 파티에 당첨되었습니다. 장소는 삼성동 코엑스에 위치한 메가박스... [단적비연수]의 충격이후로 한번도 간적이 없는 곳이죠. 하지만 공짜 영화인데 어딘들 못가겠습니까!
저는 제가 아직 못본 영화들을 나열하며 무엇을 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리지], [맨 온 파이어], [80일간의 세계일주], [캣우먼], [꽃피는 봄이오면]등등 이중 단연 최고 기대작은 [빌리지]였습니다. 반전이라면 환장을 하는 제가 어찌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를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싸인]은 실망스러웠지만 [빌리지]는 [싸인]의 실망을 단숨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KTF NA 영화파티에 초대된 대부분의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추석연휴전날이라고 일찌감치 회사업무를 마치고 메가박스에 도착했건만 [빌리지]는 이미 매진상태였습니다.
오로지 [빌리지]를 보겠다는 생각을해서인지 [빌리지]를 제외하고 다른 영화를 선택하자니 정말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당연히 제 두번째 기대작인 [맨 온 파이어]와 구피가 좋아하는 성룡 주연의 명절용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선택하는 것이 옳았지만 자꾸 제 마음은 [캣우먼]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주전만하더라도 제겐 올여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영화 [캣우먼]. 미국에서의 흥행에 참패하고 국내에서도 개봉일을 연기하다가 썸머시즌이 다지난 추석이 되어서야 개봉되는 이 영화는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혹평과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라는 것이 믿기지않을 정도로 저조한 예매순위가 제 기대를 영화를 보기전부터 확 꺾어버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연인]을 보며 10명중 9명이 싫어하고 1명이 좋아하는 영화는 극장에서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저로써는 [캣우먼]을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획득한 기분좋은 공짜 영화 기회를 재미없는 영화를 볼땐 시끄럽게 떠들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캣우먼]인데... 그래도 할리 베리인데... 결국 전 오랜 고민과 망설임끝에 [캣우먼]을 선택했습니다.
[캣우먼]은 원래 1992년 팀 버튼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 블럭버스터 [배트맨 2]의 하나의 악당 캐릭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모두들 아시는 사실일겁니다.
미셸 파이퍼의 뇌쇄적인 매력이 돋보였던 캣우먼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대기업의 비밀을 알게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비련의 여성이며, 고양이의 신비한 힘을 빌어 환생한후 복수를 감행하는 초인적인 악당입니다. 그녀는 펭귄맨(대니 드비토)과 손을 잡고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을 궁지에 몰아넣으며 악당으로써의 역할을 철저하게 수행해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이 캣우먼을 사랑하게되듯이 관객들 역시 캣우먼을 좋아하게됩니다. 그것이 바로 팀 버튼 감독의 역량이며, [배트맨 2]가 걸작 블럭버스터라는 칭호를 얻게된 이유입니다. [배트맨 2]이후 조엘 슈마허는 [배트맨 앤 로빈]에서 포이즌 아이비(우마 서먼)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캣우먼을 흉내내보았지만 철저하게 실패하고 [배트맨] 시리즈를 수렁에 빠뜨리기도 했죠.
영화 [캣우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조엘 슈마허 감독으로인하여 철저하게 망가진 배트맨을 대신하여 [배트맨 2]에서 배트맨보다 더 큰 인기를 얻은 캣우먼을 새로운 영웅으로 내세운 겁니다. [미이라 2]에서 인기를 얻은 스콜피온킹(더락)을 개별적인 영웅 캐릭터로 발전시켜 영화화한 [스콜피온 킹]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문제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스콜피온 킹]은 [미이라 2]의 외전 형식을 띠며 [미이라 2]에 등장한 스콜피온 킹이라는 캐릭터의 유래를 뒤따라갑니다. 다시말해 [스콜피온 킹]은 [미이라 2]와는 전혀 다른 영화이면서도 [미이라 2]에 등장한 캐릭터인 스콜피온 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화를 만들어낸 겁니다. [미이라 2]에서 스콜피온 킹을 연기한 더락이 영화 [스콜피온 킹]에서도 여전히 스콜피온 킹을 연기한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캣우먼]은 가장 먼저 [배트맨 2]와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피토프 감독은 캣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영웅화하기위해선 [배트맨 2]의 그늘을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배트맨 2]에서 캣우먼을 연기한 미셸 파이퍼가 [캣우먼]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은 12년이라는 세월의 간극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셀리나라는 백인 여성이었던 캣우먼을 페이션스라는 흑인 여성으로 둔갑시킨 것만 보더라도 피토프 감독이 얼마나 [배트맨 2]와의 단절을 간절하게 원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캣우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배트맨 2]에서부터 탄생하여 인기를 얻었다면 [배트맨 2]에 살짝 엊혀서 가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그랬다면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을 멋진 영화로 기억하고 있는 나와 같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배트맨 2]와의 사소한 연결만으로도 멋진 영화적 재미를 주었을텐데... [배트맨 2]의 열렬한 팬인 저로써는 그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캣우먼]이 [배트맨 2]와의 단절을 위해 한 일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이 영화는 캣우먼에게서 배트맨을 떼어놓고 평범한 형사 톰 론(벤자민 브랫)과 짝을 지워줍니다. 게다가 고담시라는 상상의 도시 출신인 그녀를 현실의 도시에 떨어뜨려 놓았고, 캣우먼의 적도 같은 여성으로 설정합니다. [배트맨 2]의 캣우먼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캣우먼]을 새로운 블럭버스터 시리즈로 만들려면 [배트맨 2]와의 단절이 어쩔수없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캣우먼 2], [캣우먼 3](지금 현재로썬 미국에서의 흥행 실패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희박하지만...)로 이어질려면 언젠가는 [배트맨 2]의 그늘에서 벗어나야할테니 아예 시리즈의 처음부터 [배트맨 2]와의 단절을 전제로 시작하는 것도 아쉽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곧바로 이 영화는 또다른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것은 캣우먼이라는 캐릭터의 잘못된 이중성입니다.
캣우먼은 [배트맨 2]에서부터 이중성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소심한 여성이었다가 억울한 죽음이후 복수심에 불타는 초인적인 악당으로 재탄생한 배경 덕분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표독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캣우먼은 고양이라는 동물의 이미지와 맞물려 더욱 신비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영화 [캣우먼]에서도 캣우먼은 이중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캣우먼]에서의 이중성은 [배트맨 2]와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캣우먼을 영웅으로 포장하기위해 캣우먼에게 잘못된 이중성을 부여한 겁니다.
[캣우먼]에서 캣우먼의 이중성은 여성의 약함과 고양이의 강함입니다. 페이션스가 죽음을 당하고 캣우먼으로 거듭나도 이 영화는 약한 여성인 페이션스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마치 캣우먼을 슈퍼맨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클락이라는 소심해보이는 신문가자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면 초인적인 영웅이 되듯이 이 영화도 페이션스라는 소심하고 착한 여성으로 지내다가 어느순간 캣우먼이라는 초인적인 영웅으로 변신합니다. 글쎄 그러한 면이 코믹스적인 영웅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 구태의연합니다. 페이션스가 캣우먼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페이션스가 죽고 캣우먼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망각합니다. 그러한 망각은 캣우먼에게 복수는하되 살인자는 아닌 밋밋한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명을 써놓고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페이션스의 모습을 보며 [배트맨 2]에서의 그 당당한 캣우먼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더군요.
그나마 이 영화의 유일한 위안은 할리 베리의 섹시한 몸매와 샤론 스톤의 재발견입니다. 어쩌면 섹시한 가죽옷을 입은 할리 베리를 기대하며 영화를 봤기에 캣우먼이라는 캐릭터가 실망스러워도 할리 베리의 섹시함만으로도 만족해야할지도 모릅니다.
할리 베리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흑진주라는 칭호가 아깝지않을 정도입니다. 그 날렵한 동작과 보는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하는 몸매, 그리고 아카데미가 인정한 연기력까지... 캣우먼의 의상이 너무 노출이 심해 이 영화가 캣우먼이라는 영웅을 영화화한 영화인지, 아니면 할리 베리의 몸매를 상품화한 영화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암튼 캣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잊고 할리 베리만을 본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군'이라는 말이 나올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면 역시 샤론 스톤입니다. 할리 베리야 처음부터 충분히 기대를 하며 영화를 봤기때문에 기대를 충족시켰다라고 말하겠지만 샤론 스톤의 색다른 변신은 기대 이상이라는 말이 나올만 합니다.
샤론 스톤을 이야기하기위해선 [원초적 본능]을 빼놓을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원초적 본능]은 [배트맨 2]와 같은 1992년에 만들어졌더군요. 배트맨이 최고의 영웅으로 슈퍼맨을 밀어내고 활약했던 그때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 한편의 영화로 최고의 섹시심벌로 자리매김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12년전입니다. 12년이라는 세월동안 샤론 스톤도 많이 늙어버렸습니다. 이제 섹시하고는 거리가 먼 배우가 되고 말았죠. 그런 지금 현재의 샤론 스톤의 이미지와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때문에 악당이 되어버린 로렐의 이미지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배트맨 2]에서 캣우먼을 연기했던 미셸 파이퍼가 로렐을 연기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고 영화를 보기전에 생각했었습니다. 그렇다면 12년전 캣우먼 미셸 파이퍼와 새로운 캣우먼 할리 베리의 대결이라는 흥미를 이끌어낼수 있었을텐데... 미셸 파이퍼가 출연을 거절해서 성사가 되지 않은건지 아니면 [배트맨 2]와의 단절을 위해 의도적으로 미셸 파이퍼를 캐스팅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어쩔수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샤론 스톤도 상당히 어울리더군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때문에 괴물이 되어 버린 로렐의 모습을 보며 영화를 보던 많은 여성들이 동감하는 눈치였습니다. (실제로 구피는 영화를 보고나오며 로렐이 불쌍하다며 동정하더군요. 그러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잘못된 욕망은 모두 남자들때문이라며 절 비난하더군요. ^^;) 샤론 스톤은 이제 [원초적 본능]에서와 같은 섹시 스타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직 배우로써의 카리스마와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도 많이 하냐고... 맞습니다. [캣우먼]과 같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캣우먼의 비현실적인 활약을 즐기면 그만인 거죠.
하지만 전 아직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그립습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가 팀 버튼의 [배트맨]을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배트맨 2]에서의 매력적인 캐릭터 캣우먼의 영화화는 제겐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그 이상의 재미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 이상은 없습니다.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딱 그 수준입니다.
낯선 이름인 피토프 감독은 [비독]을 만든 감독이더군요. 예전에 [비독]의 시사회 기회가 있었지만 [비독]을 포기하고 [디 아더스]를 봤던 저는 최근에야 TV에서 [비독]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독]은 프랑스 영화답지않은 깔끔한 특수효과와 꽤 긴장감있는 스릴러 구조, 그리고 흥미로운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비독]의 성공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한 피토프 감독의 첫번째 헐리우드 영화 [캣우먼]은 그러나 [비독]과 비교해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영화입니다. 최소한 [비독]을 만들었던 감독이라면 엄청난 자금과 기술을 지원받은 [캣우먼]은 [비독]보다 더 잘만들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렇지못하군요. 자국에서의 성공으로 헐리우드에 진출한 감독들은 왜 한결같이 이전 영화보다 실망스러운 영화를 만들어낼까요? 암튼 피토프 감독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캣우먼의 홀로서기에도 실패 판정을 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캣우먼 2]에서도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이상의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2005년 개봉 예정으로 새로 만들어지고있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스]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캣우먼]으로 팀 버튼의 [배트맨]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을줄 알았는데 아직 1년을 더 기다려야 하겠군요.
'영화이야기 > 200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텝포드 와이프] - 당신도 완벽한 아내를 원하는가? (0) | 2009.12.08 |
---|---|
[빌리지] - 사랑은 반전보다 위대하다. (0) | 2009.12.08 |
[귀신이 산다] - 김상진 감독의 유머 감각은 전부 어디로 가버렸는가? (0) | 2009.12.08 |
[슈퍼스타 감사용] - 우리가 기억해야할 아름다운 꼴등 이야기. (0) | 2009.12.08 |
[연인] - 즐길 생각이 없다면 보지를 마라! (0) | 2009.12.08 |